(사진=자료사진)
정부는 통신비 절감 대책 핵심인 '선택약정 25% 요금할인'을 예정대로 오는 9월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기존 20% 요금할인 가입자는 제외하고 신규 가입자에 한해 우선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25% 요금할인에 대한 통신 3사의 의견서 제출 시한인 9일, 사상 초유의 통신업계와 통신 당국의 소송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신 3사는 요금할인율 상향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수익 구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25% 요금할인은 어렵다'는 내용을 의견서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약정 가입자 우선 적용 등의 순차적 문제가 아니라 요금할인율 인상안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통신사들이 정부 결정에 반대해 결국 법정 다툼까지 간다면 연내 시행은 물 건너간다. 최대 5년이 걸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한 달 넘도록 평행선 '요금할인율↑'…법정 다툼시 최대 5년 걸릴 가능성도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8일 통신 3사에 '단말기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의 할인 비율을 현행 20%에서 25%로 높이려는 통신비 절감 대책에 관한 의견서를 이날까지 보내 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시행 전 통신 3사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의견서를 검토한 뒤 고시 개정을 통해 할인율을 25%로 올리는 내용의 확정 공문을 이통 3사에 보낼 예정이다.
정부는 예정했던 대로 다음달부터 이를 시행할 방침이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신규 가입자를 우선해 25% 요금할인을 적용토록 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적용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기존 가입자에 일괄적으로 요금할인율 인상을 적용하는 것은 고객과 민간 기업인 통신사 간의 약정 계약을 변경해야 하는 만큼 정부가 강제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과기정통부는 의견 접수 전날인 8일 "요금할인율 상향과 관련해 할인 적용대상 등에 관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향후 이통사와 더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신 3사는 이에 대해 "정부 방침이 신규 가입자만 적용하든, 기존 가입자 일괄 적용이든, 이번 사안은 순차적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당근책 등 역할분담 방안을 내놓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강행하면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 등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외 주주들로부터 회사의 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배임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는 데다 25% 요금할인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통신사들은 이미 주주들로부터 우려가 담긴 이메일이 쏟아지고 있다. 외국 투자사들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의견서를 보내고 과기정통부의 최종 시행 안을 확인한 뒤 소송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3사 모두 이미 각각 대형 로펌에 의뢰해 법적 자문도 마쳤다. 통신사들은 "(정부와) 법적으로 다퉈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장관이 100분의 5 범위 내에서 요금할인율을 가감할 수 있다고 정한 규정을 인상 근거로 들지만, 100분의 5 범위가 5%포인트가 아닌 할인율의 5%로 봐야 한다는 게 이통사들의 주장이다.
통신사 계산으로라면 현행 할인율 20%의 5%는 1%이기 때문에 정부의 조정 가능한 범위는 19∼21%가 된다. 일부 로펌은 "해당 고시가 할인율의 5%로 해석할 수 있다"는 답변을 통신사에 전하기도 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위배 여부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통사들은 요금할인율을 25%로 올리게 되면 지원금을 받는 구매자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어 단통법이 금지하는 소비자 차별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통신 3사가 정부에 보내는 의견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통신 3사가 이에 반대해 결국 법정 다툼까지 간다면 최대 5년이 걸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정부 '기본료 폐지 대안, 양보 못해"…업계 "정부 역시 고통 분담해야"정부는 업계가 반발하더라도 25% 요금할인을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의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기본료 폐지의 대안인 만큼 정부 입장에서 양보하기 쉽지 않다.
정부는 이통사의 소송 승소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25% 요금할인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이통사에 급격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앞서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통신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잇달아 만나면서 통신비 절감 대책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각 사 CEO 모두 수익성 악화, 통신 품질 저하 등 통신비 인하에 따른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사는 더이상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역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사를 압박만 할 게 아니라 통신비 인하의 부담을 덜어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통신사들이 제조사, 유통업체 등 다른 통신시장 관계자에게도 영향이 큰 단말기 완전 자급제, 분리공시제 등을 대안으로 거론하는 이유도 고통 분담의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근 통신사들은 실적발표 뒤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공개적으로 정부의 독단적인 통신비인하 정책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KT 신광석 전무는 "통신사뿐만 아니라 정부, 제조사, 포털 등 이해관계자들이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며 "주파수 대가와 전파 사용료 등 각종 기금이 결국 통신비로 충당되기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 이혁주 부사장도 컨퍼런스콜에서 "정부 당국에서 합리적인 중재안으로 일이 추진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신규 가입자 적용, 충격↓" 정권초 소송 부담…기존 가입자 등 소비자 반발 거셀듯통신사들은 일단 정부의 행정처분이 나오면 추가 검토를 거쳐 법적 대응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통신사들은 법리 검토까지 마친 만큼 소송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권 초기부터 정부에 찍히면서까지 위험 부담을 떠안을 필요까진 없다는 의견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비 인하를 요구하는 여론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신규 가입자 우선 적용'은 일괄 적용되는 것보다 약정할인의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존 가입자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 즉각적 매출 감소분은 훨씬 줄어든다. 통신사로서는 기존 가입자가 별도로 신청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체결된 약정 계약이 있어 반드시 인상된 할인율을 적용할 의무는 없다. 주택 거래를 이미 끝났는데 시세가 올랐다고 거래 조건을 바꾸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가 업계를 달래기 위해 신규 가입자부터 요금할인율 인상을 적용한다면, 사실상 기본료 폐지가 무산된 상황에 그나마 2~3000원의 요금할인을 기대해온 대다수 소비자의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기존 약정할인 가입자들이 현 정부 정책을 적용받지 못하면 혜택을 누릴 대상은 대폭
줄어드는 셈이다. 더 큰 요율을 적용받기 위해 해지한다면, 공시지원금 해지 시보다 더 큰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ICT정책국장은 "소송 리스크 등을 고려하면 정부와 이통사가 기존 가입자 적용 보류 등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이렇게 되면
통신비 인하 의미가 퇴색하는 만큼 기존 가입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