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제공)
경제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선고가 연기된 가운데 노사도 해법 마련을 놓고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기아자동차 노동자 2만 7431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소송에 대해 지난 8일 "17일 선고가 예정됐지만 이날 오후 1시 40분 특별기일을 한 번 더 열겠다"고 밝히며 선고를 미뤘다.
재판부는 원고 명단이 정확하지 않는 등 소송 절차상의 문제가 있을 뿐 법적인 판단은 끝났다고 밝혔다.
다만 원고 당사자가 동일성이 있다는 걸 입증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다 만약 지연이자 등을 놓고 다시 다툼의 여지가 발생한다면 경우 동계 휴정기간 이후인 내년 1월에 선고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기아차 노조는 이번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노동자에게 정기적,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일급, 주급, 월급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 즉 통상임금이라는 이름 그대로 통상적으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을 말하는데, 연장근무 등 각종 가산수당 등에 대한 산정 기준이 된다.
만약 노조가 승소하면 기아차는 밀린 3년 간의 통상임금 및 수당 등 인건비 소급분과 지연이자까지 총 3조 1천억여원을 노동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처럼 대규모 소송전이 빚어진 근본 원인은 정부에 있다. 고용노동부는 1988년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통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도록 행정해석을 내렸고, 노사도 이에 따라 단체협약을 맺어 통상임금 범위를 결정해 임금 및 수당을 계산했다.
하지만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 노동자 및 퇴직자 296명이 낸 통상임금 소송 사건 상고심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을 가리는 요건으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등 3가지를 제시했다. 즉 정기적으로(정기성) 일정한 조건·기준에 달한 모든 노동자에게(일률성) 근무성적 등에 관계없이 확정적으로(고정성) 지급되는 임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는데, 정기상여금이 이에 포함된다고 확정한 셈이다.
문제는 대법원이 통상임금을 잘못 적용한 노사합의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무효 처리되더라도 추가임금을 청구하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존립이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경우에는 추가임금 청구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작 밀린 소급임금 지급 여부를 놓고 해석이 모호한 '기업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에 따라 판결하도록 한 바람에 비슷한 사건, 심지어 같은 사건조차 심급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며 혼란이 커지고 있다.
결국 정부의 잘못된 지침과 법원의 불분명한 판결 탓에 사측으로서는 갑자기 목돈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노측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억울함을 떠안게 된 셈이다.
특히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사상 최대 규모의 소송전으로 중요한 판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아 전 산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모으고 있다.
다만 사측은 1심에서 패소할 경우 항소하더라도 판결 즉시 충당금 적립의무가 발생해 회계상 지급해야 할 금액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하는데, 소송금액이 워낙 커서 유동성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기아차 관계자는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소송금액과 소송인원 모두 최대규모라 향후 통상임금 판결의 시금석 역할을 할 것"이라며 "완성차 업계의 경영악화가 부품사의 동반위기를 초래해 부품업체의 유동성 위기, 노사간 소송 분쟁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기아차 노조는 법정 다툼 대신 노사합의로 미지급된 통상임금을 정규직 전환기금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기아차 노조가 속한 금속노조는 통상임금 소송에 등에서 승소할 것으로 예상하며 현대차 계열사 17곳의 정규직 노동자 임금을 개인이 모두 지급받는 대신 2500억원을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에 사용하고, 사측도 같은 금액을 보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활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것이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측이 일거에 수조원의 소급임금을 새로 준비하기 어렵다면 어차피 새 정부 지침에 따라 준비해야 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으로 이를 돌려 정규직 노조가 연대 차원에서 협조하는 '노사 윈-윈(win-win) 전략'을 세우자는 얘기다.
이에 대해 사측은 소송에서 전 그룹사 노조가 모두 승소해야 조합원이 받을 가상의 돈을 전제로 해 현실성이 낮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하지만 금속노조 송보석 대변인은 "소송 기간이 길어질수록 임금 채권도 늘어나고, 소송비용도 노사 양측을 합해 100억원에 육박한다"며 "노사 갈등 등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노사 합의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