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보도국 취재기자들이 11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제작거부에 동참한 한 기자가 "김장겸 뉴스 제작·김장겸 체제 업무를 중단한다!"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저는 오늘부터 더 좋은 뉴스 하자는 MBC 기자들의 행동에 함께합니다. 때문에 시청자 여러분, 당분간 못 뵐 것 같습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조명하는 그런 뉴스 할 수 있는 날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_ 11일 MBC '뉴스투데이' 박재훈 앵커 클로징
MBC 보도국 취재기자 81명이 사회적 흉기로 전락한 MBC뉴스의 마이크를 잡지 않겠다며 오늘(11일) 오전 8시부터 제작거부에 나섰다. 2012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의 170일 파업의 시발점이 된 MBC기자협회의 제작거부 이후 5년 7개월 만이다.
이들은 11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거부에 나선 배경을 밝혔다. 앞서 제작거부를 시작한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경영진의 '부당한 보도 개입'이 그 이유였다.
◇ 세월호 보도는 줄이고, 태극기 집회는 키우고평일 오후 4시에 방송되는 '뉴스M'을 담당하는 주간뉴스부 윤효정 기자는 기자들을 대표해 지금까지 MBC에서 벌어진 보도 관련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를 공개했다.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월호 참사 보도 시 정부 비판 내용 모두 삭제 지시, 실종자 가족·유가족의 눈물 영상 불허, 김영오 씨 단식 비판 보도 지시△삼일절 당시 태극기가 정치도구화 되었다는 비판적 리포트는 태극기 집회를 부각하는 리포트로 둔갑, 촛불 국면에서 촛불집회보다 태극기 집회가 먼저 나간 최초 사례(지상파 3사 가운데), 태극기 집회 소식에 톱부터 4꼭지 할애△태극기 집회 보도 시 '유모차·박사모 아닌 일반인·젊은층 많이 나왔다'는 내용 지시, 촛불집회에는 민주노총·성소수자 등의 단어를 넣어 특정 집단이 주도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리포트 내용 수정△촛불집회 보도 시 아이템 수 줄이고 나중에는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아이템 수 1:1로 맞춤△2015년 국정교과서 발표 당시 확정고시된 10월 15일부터 약 3주 간 반대 여론 전하는 리포트 한 건도 없음, 각계각층에서 나오는 반론 다루려는 발제 무시, 정부가 제안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명칭 씀△출연자를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로 구분해 진보 성향이거나 관련 이력이 있는 사람들의 출연을 불허한 반면 보도국 간부와 친분 있는 인사들은 자주 출연△8월 10일 '뉴스M'에 인터넷뉴스 '엠빅뉴스'에 나간 'MBC 블랙리스트 논란' 보도될 예정이었으나 보도국 간부들이 뉴스센터 감시하면서 해당 제작물 송출 막고 방송시간도 5분 줄어듦
11일 오전 8시부터 제작거부를 시작한 MBC 기자들이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이한형 기자)
왕종명 MBC기자협회장은 "과거 MBC 기자들은 '보도국 전면 제작중단'이라는 타이틀로 (제작거부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81명이라는 사람수를 넣었다. 이는 이미 MBC 보도국이 김장겸 체제에 장악돼 있고, 그 안에서 81명의 양심 있는 기자들이 MBC뉴스의 숨통을 트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 내 제작거부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우리 요구에 귀 기울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이들을 일자리로 되돌려 보낼까 고민해야 할 경영진은 (이를) 하지 않고 있으며 그럴 능력도 안 된다. 인사권을 다시 발휘해서 대체인력을 채용할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의 제작중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와 동시에 MBC뉴스를 (제대로) 가동할 준비를 하겠다. 저희의 싸움에 국민 여러분들이 많이 관심 가져 주시고 적극 지지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MBC 아침뉴스 '뉴스투데이'의 앵커이자 지난 5월 MBC 대선 개표방송 '선택2017'의 진행을 맡았던 박재훈 앵커도 방송에서 제작거부 사실을 알렸다. 박 앵커는 오늘(11일) 방송에서 "더 좋은 뉴스 하자는 MBC 기자들의 행동에 함께 한다"며 '권력 감시'와 '약자 조명' 뉴스를 할 수 있는 날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11일 아침뉴스 MBC '뉴스투데이'의 박재훈 앵커는 클로징 멘트를 통해 제작거부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스투데이' 캡처)
◇ 낮·심야뉴스 결방 예정… 사측, 경력기자 채용 '맞불'앞서 MBC 보도국 기자들은 10일 오후 긴급 비상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보도국 소속 기자 250명 중 취재기자 81명, 영상기자 37명 총 118명(47%)이 참여했다.
지난 2012년 MBC기자협회장으로서 제작거부를 주도했다가 뉴스 앵커에서 하차하고 해고된 박성호 기자는 SNS에 글을 올려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를 독려했다.
박 기자는 "왕종명 기자협회장을 비롯한 MBC 기자들의 이번 결행이 2012년에는 갖지 못했던 승리를 거머쥐었으면 좋겠다. 김민식 PD의 절규와 PD수첩의 제작중단이 물꼬를 틈으로써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사실상 준 파업과 같은 형세를 보면, 정말로 이번에는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이번 제작거부는 5년 전과 다르다. 보도국 제작거부 참여자를 보면 80명에 불과하다. 다수의 기자들이 비 보도, 비 상암으로 유배 가 있어서 그렇다. 거부할 제작이 없는 기자들이 더 많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까지, 그리고 거부할 업무조차 없는 해직자들까지 가세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12년에는 모든 공권력이 눈 부릅뜨고 억압했던 MB 정권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잔당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촛불 시민의 이름으로 방송 정상화가 추진되고 있다. 주저할 게 없다. 모두가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MBC 정상화는 생각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독려했다.
MBC는 지난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 170일 파업 당시 대체인력을 대거 채용했고, 시용·경력기자가 보도국의 다수를 이루고 있기에 참여율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81명이 제작일선에서 빠지는 만큼, '뉴스M' 결방, '이브닝뉴스' 30분으로 축소, '뉴스24' 결방 등 방송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MBC는 경력기자 채용 공고를 냈다. MBC는 10일 공고를 올려 뉴스 및 시사프로그램 제작 관련 취재를 맡는 취재기자(정규직)를 뽑는다고 밝혔다. 지원자격은 주요 언론사 취재 업무 경력 만 3년 이상인 자로 두었고, "향후 회사의 필요에 따라 해당 분야 외 직무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알렸다. 원서 접수 기간은 오는 25일까지다.
10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MBC 경력기자 채용 공고 (사진=MBC 채용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