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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제작사 양쪽에 치이는 독립PD들… "이젠 바뀌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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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사·제작사 양쪽에 치이는 독립PD들… "이젠 바뀌어야죠"

    [노컷 인터뷰] 故 김광일 PD 아내 오영미 씨

    故 김광일 PD의 영정 사진.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들이 놓여져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남편은 술을 좋아했다. 맡은 프로그램의 처음과 끝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모든 제작자들의 몫이었지만, 근로계약서 하나 쓰지 못한 채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독립PD'의 경우는 일이 더 고됐다. 터무니없는 수준의 제작비가 내려왔고, 일하는 환경은 열악했다. 무리해서 1인 다역을 해 내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술은 깊은 잠을 자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가까이 촬영과 제작에 매달려야 했기에 집에는 자주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니까 집에 오는 날에는 꼭 옆에 있어달라고. 속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던 아내는, 남편이 집에 있을 때 늘 곁을 지켰다. 그러나 촬영차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던 남편은, 뜻밖에 주검으로 돌아왔다.

    박환성·김광일 PD가 오는 10월 EBS에서 방송 예정이었던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를 찍으러 남아공으로 갔다가 14일 밤(현지시각)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지난달 20일 전해졌다. 두 사람은 운전기사도 고용하지 않은 채 직접 운전하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오후, 故 김광일 PD의 아내 오영미 씨를 자택에서 만났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 소식을 듣고, 유해를 안전히 모시기 위해 지난달 23일 남아공으로 떠났던 그는 한국독립PD협회가 마련한 약식 기자회견 자리에는 불참했다. 자신의 존재가 드러남으로써 8살, 10살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아버지 없는 애들'이라는 가십거리가 될까봐 염려돼서였다.

    지난달 27일 귀국 자리에서 유가족으로서 취재진 앞에 선 것 외에는 언론 노출을 자제해 왔던 오 씨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이 '비극'이 너무 빨리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좋은 방송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고, 독립PD들의 환경도 달라지길 바라왔던 고인의 뜻을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자꾸만 집에 오고 싶다고 했던 남편, 주검으로 돌아오다

    왼쪽부터 故 김광일·박환성 PD (사진=한국독립PD협회)
    故 김광일 PD와 故 박환성 PD는 독립PD 시상식을 통해 안면을 트게 됐다. 故 박 PD는 상 받는 자리에서 자주 보는 故 김 PD를 좋게 봤고, '휴먼 다큐'을 좋아해 주로 인간을 찍어 왔던 故 김 PD는 '동물'에 천착해 온 故 박 PD를 동경했다. 그러다 '야수의 방주' 제작을 위해 힘을 합쳤고, 지난달 8일부터 31일까지 3주 넘는 일정을 함께할 예정이었다.

    오 씨가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건 사고가 일어난 지 5일 뒤였던 19일(한국시간) 오전이었다. 한국독립PD협회 송규학 회장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해외 촬영 중이니 연락할 상황이 안 되겠거니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날 남편에게 '시사 간다'는 문자까지 보내 놓은 상태였는데, 엄청난 일이 벌어져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어요.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일은 있어서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됐고, 계속 울면서도 실감이 전혀 안 났어요."

    15년차 베테랑 PD로 시사·교양·예능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두루 맡았고 해외 촬영에도 익숙했던 고인은 이상하게도 이번 출국 전후에 더 힘든 내색을 했다.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눈치였다고. 고인이 14일 오 씨와 나눈 메신저 대화에는 "이번엔 정말 집에 가고 싶다",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현지에서 마주한 고인의 모습 역시 생생하다. 에어백이 터져 보호된 얼굴을 빼고는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차체가 몸을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 씨를 씁쓸하게 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에 끼워져 있던 결혼반지와, 출국 3일 전 새로 장만한 휴대폰은 보조 배터리까지 사라져 있었다.

    하루아침에 커다란 빈자리가 생겼고, 큰 충격을 받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 씨는 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오 씨는 장례식을 치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쉴 틈이 있으면, 고인의 생전 사진과 영상을 본다. 많은 것들을 찍었지만 정작 자신의 흔적은 별로 남기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고.

    ◇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독립PD들, '대비'가 안 되는 생활

    9일 오후, 故 김광일 PD의 아내 오영미 씨가 자택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한형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6 방송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중 SBS는 외주제작 비율은 69.4%, MBC(서울)는 60.1%, KBS는 50.1%, EBS는 35.2%였다. 외주제작 프로그램은 이처럼 방송사 편성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막상 작품을 만드는 독립PD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제작사에 의뢰하면, 제작사가 적합한 사람에게 일감을 나눠주는 방식이기에 독립PD들은 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KBS1 '걸어서 세계 속으로', KBS2 '여유만만', '생생정보통', SBS '접속 무비월드', '괜찮아U', '진한맛'(진짜 한국의 맛), MBN '아시아 헌터', tvN '리얼스토리 묘', EBS '다문화 사랑', '다문화 고부열전', '다문화 휴먼다큐 가족' 등이 고인의 손을 거쳐 시청자와 만났다. 이처럼 방대한 제작 기록을 보면, 그는 비교적 많은 선택을 받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청률과 화제성, 작품성 면에서 호평을 받는다 해도 그게 곧바로 다음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공백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더 큰 문제는 그 공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백은 거의 대부분 PD들이 비슷한 것 같아요. 주변에서 같이 하자고 연락 오면 보고 결정하고, 인맥이 없으면 계속 쉬면서 촬영 알바라도 하는 거죠. 대부분의 방송사는 연차가 적은 사람을 많이 찾습니다. 페이(임금) 때문에 연차가 높을수록 잘 안 쓰죠. 연차를 최대한 줄여서 이력서에 쓰기도 하고 그래요.

    (남편은) 작년 10월부터 계속 일도 제대로 못하고, 그 전에 일하던 제작사에서는 '한 달 휴가 줄 테니 다녀와라'라고 하더니 결국엔 '일이 없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취업 사이트나 PD들 단톡방을 보면 (독립)PD들은 계속 구하고 있었고… 이 사람은 그래도 기다렸거든요. 급할 때 프로그램 땜질하려고 한 번 부르고 (남아공) 가기 전까지 연락이 없더라고요. 3년 이상 몸담은 회사였는데도 그렇게 버려지는 거죠.

    짧게는 한두 달에서 거의 6개월까지 쉰 적도 있어요. 촬영 알바하면서 보냈었고요. 그렇게 프로그램이 끝나면 끝나는 거죠. 언제까지 쉴지 모르고. (이런 사정을 모르니) 가족들조차 왜 돈을 못 모았느냐고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방송 일은 너무 지친다. 이제 미련이 없으니 그만하고 싶다'고 했어요."

    ◇ 근로계약서 한 장 없어… 갑을병정 중 '정'

    故 김광일 PD가 EBS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 촬영을 위해 남아공에 갔을 때 챙겨간 짐 (사진=이한형 기자)
    '적은 제작비'도 고질적 문제였다. 방송사가 제작사에게 주는 제작비 자체가 작은데, 제작사는 그 와중에 수익을 남겨야 했다. 일정은 촉박했고 촬영은 길어졌으며 자연히 쉴 틈은 줄었다.

    "(제작사는) 지출을 어떻게 해서든지 줄이려고 했어요. 그래도 그 사람은 아끼고 아껴서 남겨 왔고요. (제작비를 적게 쓰라는 압박은) 본사도 하지만 외주제작사도 심해요. 흔히 '갑을관계'라고 하는데 독립PD는 갑을병정이라면 '정'이에요. 제일 밑바닥이요."

    고인은 근처에 편의점도 없는 지방으로 촬영을 갈 때면 숙소에 소주 한 병, 과자 한 봉지를 사다 놓고 끼니를 때웠다. 해외 촬영 때에는 아침만 챙겨먹었다. 그날 촬영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어, 아침을 거르면 하루 종일 굶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은 전적으로 프로그램 진행 속도에 맞춰져 있었다. 고인은 하루를 꼬박 새며 25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오늘이 내일인지, 내일이 오늘인지 구분 못 할 정도로 편집을 했다. 하루에 한두 시간 졸다 깨고 다시 일하기를 반복하는 나날들에, 스트레스는 커져 갔다. 초인적인 고강도 노동의 무게에 고인은 오 씨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최근에 일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지 저한테 하지 말아야 될 말도 했었어요. '너무너무 힘들다. 이대로 자다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제 심정은 오죽하겠어요. 죽는다는 말 쉽게 하는 사람 아니었거든요."

    독립PD들은 '노동'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지만 지금껏 제대로 '노동자'로서 대우받은 적이 없다. 옷가지 챙길 때만 집에 간신히 들어올 만큼 빡빡한 일정 속에서, 아이템 회의·촬영·편집·더빙·종합편집·시사·수정·납품까지 도맡는데도.

    '근로계약서의 부재'는 독립PD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고인 역시 15년 동안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대부분이 구두로 이루어졌다.

    고인은 무척 꼼꼼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조연출부터 시작해 15년 동안 만든 작품의 기획안, 큐시트, 영수증까지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간직하고 있었다. 혹시나 나중에 쓰임이 있을지 모른다며. (사진=이한형 기자)
    "지인 소개로 제작사에 가더라도 입맛에 안 맞으면 자르기도 했고, 본사(방송사)에서 마음에 안 든다고 PD 바꾸라고 하기도 했어요. 아는 작가가 소개해 준 프로그램에서는 (방송사) 시사를 6번, 많게는 9번까지 했다고 들었어요. 말 그대로 '죽어나는' 거죠. 말할 때마다 편집을 다시 해야 하니까. 그러다 쓰러져 병원도 가고 약도 먹고 쉬었죠.

    제작사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도 있었어요. 서브PD가 있다더니 없었고, 조연출도 구했다더니 없어서 이 사람이 다 구했고 해외촬영은 혼자 갔었어요. 오전 9시 35분에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오후 3시 20분에 내려서 밤 9시까지 경유하는 일정에, (제작사에서) 기내식 신청을 안 해서 계속 굶고 있다고 전화 받은 적도 있었고요.

    항상 이야기하지만 독립PD는 노동자도 근로자도 아닙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독립PD는) 해외촬영 가면 국제거지라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그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그 책임은 오롯이 독립PD가 부담해야 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성추행·판매 사기 등 사회고발성 아이템을 다뤄 당사자들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을 때 고인은 기댈 곳이 전혀 없었다. 방송사도 제작사도 '그건 네 일이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 "우리 후배들도 언젠가는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날이 오겠죠?"

    (사진=한국독립PD협회)
    고인은 '방송이 좀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방송 내용은 물론이고, 방송을 만드는 이들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랐다.

    "연출 없이 정확하게 찍고, 세상을 바꿀 만한 좋은 면을 비춰 것으로 해서 방송으로 내보내고 싶다고 했었어요. 갑을병정 중 '정'이어서 방송은 본사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은 약간의 시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선후배들에게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제작사 대표들에게는 본인이 경험했던 잘못된 관행을 계속 이야기했어요. 다들 그게 옳다는 걸 알면서도 동참하지 않아 (문제제기가) 금방 묻히긴 했지만… 본사 시사 때도 억지스러운 연출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하거나 제작비 문제 등을 어필했다고 하더라고요."

    故 박환성·김광일 PD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독립PD들의 노동환경 문제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왔으며, 故 박환성 PD가 문제제기한 방송사의 제작비 일부 환수 관행도 재조명되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이번 사건을 언급하며 방송통신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공정거래위원회에 방송계 내부의 불공정거래 실마리를 풀 시정방안을 마련·시행하라고 당부한 지 9일 만에, 방통위와 문체부는 발 빠르게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외주제작시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공동 추진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지상파(KBS·MBC·SBS·EBS)와 종편(TV조선·JTBC·채널A·MBN), CJ E&M,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등에 소속된 외주제작사로,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제작비 지급 △저작권 등 수익 배분 △표준계약서 사용 등 외주제작시장의 거래 관행과 함께, 외주제작인력의 근로여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한국독립PD협회도 지난 8일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출범했다. EBS의 제작지원금 간접비 환수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공정위 차원의 조사를 촉구하겠다는 설명이다.

    오 씨도 자신의 방식으로 두 사람을 기억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故 박환성·김광일 PD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환경에서 일했는지를 담은 책을 쓸 계획이라고. 최대한 빨리 내는 것이 목표다. 두 사람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잊히기 전에.

    "남편이 언젠가 선배 PD에게 '우리 후배들도 언젠가는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날이 오겠죠?'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 이번 사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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