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 취임 약 한 달이 지난 6월 7일 서울 용산소방서. 문 대통령은 올해 3월 서울 용문동 다가구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투입돼 온몸으로 불길을 막아서며 주민들을 탈출시키다가 허리를 다친 최길수(36) 대원, 손에 3도 화상을 입은 김성수(43) 대원과 눈을 맞췄다. 문 대통령은 두 대원에게 "지금도 재활 치료 받고 계시냐? 두 분의 모습을 보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병문안이라도 가보고 싶었는데 대선을 앞두고 못갔다"고 미안해 했다. 특히 부상 때문에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최 대원을 향해서는 "대통령으로서 명령을 내리는 데 적절한 시기에 신혼여행 가셔야한다"며 곁에 있던 최송섭(60) 용산서장에게 "(최 대원이 신혼여행을) 갈 수 있도록 휴가를 내어달라"고 요청했다. 소방서 곳곳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최 서장 역시 흐르는 눈문을 연신 닦으며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당시는 정부가 11조 2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을 국회에 제출하고, 문 대통령은 경찰과 소방 공무원 등 '긴급한 현장에서 국가를 대신 할' 공공부문 인력 확충에 심혈을 기울일 때였다. 전체 1만2000명 규모의 공공일자리 추가 채용과 특히 올해 안에 1500명의 소방인력을 채용하겠다는 백마디 말보다 "명령인데 신혼여행을 가야한다"는 대통령의 권고 한 마디는 깊은 울림을 줬고, 화재현장 출동과 비상 대기로 제대로 가정을 살필 겨를도 없었던 소방대원들을 울렸다.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 초청행사든, 외부 일정이든 국민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과 눈높이를 맞춘다. 지난 5월 15일 노후화력발전소 셧다운(일시 중단) 정책을 발표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은정초등학교를 찾았을 때도 한 초등학생이 사인을 해달라며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기 위해 뒤척거리자 한참 동안 옆에 쪼그려앉아 초등학생을 기다려줬다. 언젠가는 외부 행사 참석을 위해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청와대 견학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초등학생들이 뛰어노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내려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인솔교사의 셀카로 외부에 알려졌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 행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서 촉발된 "이게 나라냐"라는 의문과 맥을 같이 한다. 세월호 침몰 당시 '잃어버린 7시간'이 대변하듯, 국가적 안보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평소 문 대통령이 국민 개개인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는 비단 사회적 약자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일부 층에 한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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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28일 양일간 청와대 상춘재에서 진행된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초청된 기업총수들의 개인사와 회사 상황을 미리 꼼꼼이 챙기는 '맞춤형 인사말'도 준비했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게는 "'피자 CEO'라는 별명이 있지요? 직원들의 단합과 사기를 높이는 효과가 있겠네요"라며, 구 부회장이 평소 직원들에게 피자를 돌리는 격려 방식을 치하했다. 또 LG화학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배터리 분야를 언급하며 "우리도 그동안 차세대 자동차하면 수소차 쪽에 비중을 뒀는데 전기차에 (역량을) 집중하면 빠르게 배터리 기술을 따라 잡을 것"이라고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에게는 "요즘 미국 철강 수출 때문에 조금 걱정하시지요"라고 물었고,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에게는 "양궁협회 회장을 오랫동안 하셨는데, 다음 올림픽 때도 전종목 금메달이 자신 있습니까"라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에게는 "야구 선수를 좀 하셨다고 하던데 저도 동네 야구는 좀 했습니다. 두산베어스가 2년 연속 우승을 했는데 올해는 성적이 어떻습니까"라고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100일 동안 전 정부에서 중단됐던 외교 복원과 북핵 위기관리, 국회와의 협치, 초기 내각 구성 등 일부에서는 잡음도 없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는 70%를 웃도는 국정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향후 개혁 정책 추진에도 적잖은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41.1%의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탈권위와 소통 행보 하나하나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사실 문 대통령의 탈권위·소통 행보는 지난 5월 10일 취임 첫날부터 빛을 발했다. 정권인수위가 없는 새 정부 출범이라지만 과거 외국 정상들을 초청해 수천 명 앞에서 진행한 화려한 취임식을 생략하고, 대신 국회 로비에서 '작은 취임식'을 하면서 권위주의적 대통령 문화 청산을 예고했다.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에 첫 입성하는 과정에서도 방탄차에서 내려 시민들에게 다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하고, 학생들의 셀카 요청에도 일일이 응했다.
청와대 경호원들은 초기에 문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에 매우 당황했다. 이후 문 대통령의 지시로 주영훈 경호처장의 '열린 경호' 지침이 내려오면서 더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이 전통시장을 방문할 때면 대통령과 시민들과의 간격을 좁히면서도 경호 임무는 포기할 수 없어 시장 상인으로 변신하는가 하면, 대통령이 사전 동선(動線)에서 벗어날 것을 확신하고 제2, 제3의 동선을 미리 점검하는 등 업무강도는 더 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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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양산 사저에서 하루짜리 휴가를 보내던 문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이 방탄차량과 수 대의 특수 경호차량을 대동한 것과 달리 참모들 몇몇과 미니버스 한 대에 몸을 싣고 부산에 있는 모친을 만나러 다녀오기도 했다. 경호 차량을 제외하고 수십대의 경찰차가 겹겹이 에워싸던 과거 모습에 익숙했던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는 단순히 시민들과 기업총수들을 만나는데 국한되지 않고 국가기념일 행사장까지 이어졌다. 현충일 추념식에서 통상 4부 요인이 자리했던 대통령 옆자리에는 지난해 지뢰 사고로 우측 발목을 잃은 공상군경인 김경렬씨와 2년 전 북한의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도발로 다친 김정원·하정원 국가 유공자가 앉았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에도 국민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난 김소형씨는 아버지가 자신의 출생 소식을 듣고 타지역에서 부리나케 달려오다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졌고 자신 때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내용의 추모글을 읽다가 울음을 터트리자, 문 대통령도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함께 울었다.
김씨가 추모사를 마치자 문 대통령은 예정에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대 뒤로 퇴장하려던 김씨를 돌려세워 감싸 안으며 어깨를 토닥여줬다. '각본에도 없던' 이 한 장면에 5·18 기념식 생중계를 시청하던 많은 국민들은 국가 기념식 중계를 보다가 눈물을 흘릴 줄은 미처 몰랐다며 또다른 의미의 "이게 나라냐"를 되뇌이며 같이 울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문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는 화제가 됐다. 취임 직후 수석·보좌관 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제 판단이 잘못됐다면 언제든지 격의없이 바로잡아 달라"며 대통령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뒀다. 문 대통령이 회의장에 도착하자 겉옷을 받기 위해 손을 내민 경호관에게는 "이 정도는 제가 직접 할 수 있어요"라고 만류했고, 직접 커피를 타 마셨다.
참모들과 오찬을 함께 하고 경내에서 노타이 셔츠 차림에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대면보고 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의 불통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사진=청와대 제공)
청와대 직원식당에서는 기술직 직원들과 3000원짜리 점심식사를 격의없이 함께했고, 대통령과의 점심식사 자리가 예정돼 있다는 말에 한 직원이 "거짓말하지 마라"고 한 시간 이상 믿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는 청와대 참모진들을 즐겁게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식권을 내고 배식대에 줄을 서 식판에 음식을 직접 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숙소를 겸한 관저에서 집무를 보며 본관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문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소통을 위해 취임 사흘째부터 집무실을 본관에서 비서실장과 참모들이 사용하는 여민관으로 옮겼다. 지난 6월 26일부터는 1968년 1·21 사태를 계기로 막혔던 청와대 앞길을 50년 만에 전면 개방해 국민의 품으로 돌려줬다. 청와대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 차단막을 모두 철거하고 청와대 외부에서 본관 사진촬영도 허용하는 등 좀더 국민들에가 가까이 다가섰다.
또 이례적으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에 세 차례 들러 직접 인사 발표를 하는 등 언론과의 소통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 역시 연두 기자회견을 제외하고 기자들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의 사례와 비교됐다. 특히 지난 5월 19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지명을 직접 발표한 문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라고 물어, 질문답변 시간이 예정돼 있지 않다고 사전에 예고한 청와대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장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때는 당사자에게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배우자까지 함께 초청해 직접 꽃다발을 건네는 세심함도 보였다. 이와 함께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 경비를 대폭 삭감해 일자리 창출 재원으로 돌리고, 대통령 가족의 식비와 치약·칫솔 등 생활비품을 사비로 처리하기로 선언한 것도 예전 대통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탈권위 행보와 소통 노력은 잇달은 인사 파문 속에서도 국정지지율 70~80%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다만 전 정권 국정농단 사건으로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로하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안보과 경제 문제에 있어 정책적인 면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자칫 이미지 정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충고는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문 대통령의 낮은 행보를 소통이 아닌 '쇼통'(Show通)이라며 공세를 펼쳐도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타격을 받고 있지 않지만,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일부 미숙함과 무능력이 도드라지면 탈권위 행보 자체가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이미지 정치였다고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