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후기에 일본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급 고려 불경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중국미술연구소는 일본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을 최근 국내에 들여왔다고 15일 밝혔다.
이번에 환수된 묘법연화경은 크기가 가로 12.7㎝, 세로 34.5㎝이며,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절첩본(折帖本)이다.
이 책은 금니와 은니로 그린 표지에 금니로 완성한 변상도(變相圖, 불교 경전 내용을 소재로 한 그림)가 붙어 있다. 변상도에 이어 경전 목판본이 연결됐는데, 한 면이 아니라 양면에 인출(印出)한 점이 특징이다.
'법화경'으로도 불리는 묘법연화경은 천태종의 근본 경전이다.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설파한 책으로, 모두 7권으로 구성된다.
한국에 돌아온 묘법연화경은 앞서 국내에서 보물 692호(권7), 962호(권6∼7), 977호(권7)로 각각 지정된 책과 같은 판본으로 추정된다. 이 책들은 고려 무신정권의 실력자였던 최우(?∼1249, 훗날 최이로 개명)의 명령에 따라 1240년에 새긴 목판으로 찍은 것이다.
책을 살펴본 송일기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며 "사경 표지에 변상도, 양면 인출본으로 구성된 불교 전적은 국내에 한두 점만 있을 정도로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앞면과 뒷면에 인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종이를 두껍게 만든 것 같다"며 "목판을 새긴 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찍은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이의 재질로 봤을 때 변상도와 목판 인출본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며 "최상급 종이에 최고 품질의 인쇄를 한 것으로 보아 학습용은 아니고 공덕용으로 제작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서문에 각수의 이름인 존식(存植)이 남아 있다"며 "재미있는 사실은 변상도 오른쪽 공간에 제목을 써넣지 않았다는 점인데, 실수로 빠뜨린 것 같다"고 부연했다.
그는 수백 년이 흘렀음에도 책이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 책이 고려 말에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고려 후기에 왜구가 한반도에 자주 드나들었다"며 "불교보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에 책이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잘 보존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려불화를 전공한 정우택 동국대 박물관장은 본존 주변에 문수, 보현보살, 사리불, 아사세왕, 일궁천자, 제석, 아수라, 가루라왕, 용왕, 천왕 등을 표현한 변상도에 주목했다.
그는 "현존하는 고려 사경 변상도 가운데 가장 크다"며 "화면 구성이 치밀하고, 각 존상(尊像)의 형상에 이지러짐이 없으며 묘선이 활달하다"고 강조했다.
정 관장은 "이러한 도상은 중국 송대의 소자본(小字本) 법화경 권두 판화에서 비롯했는데, 소자본 도상을 고려 사경화 체제와 양식에 따라 재해석한 사례로 완성도가 높은 수작"이라고 평가한 뒤 "변상도 테두리에 있는 금강저(불교 용구)와 문양은 호림박물관의 화엄경과 다소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전윤수 중국미술연구소 대표는 "묘법연화경을 시작으로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가 더 많이 돌아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