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기도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장준하 선생 42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장준하 서거 42주기를 맞는 오늘 이 자리가 조국의 광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신명을 바친 선생의 위업을 받들고, 고귀한 정신을 계승해 국민통합을 이루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추모공원.
문재인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광복군으로 활동하고 해방 이후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고(故) 장준하 선생의 추모식에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으로 추도사를 보냈다.
추도사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했다.
문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42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고, 민주주의는 독재의 어둠 속에 숨죽여 울어야 했다"며 "장준하 선생은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두에게 꺾을 수 없는 자긍심이자 지표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은 장준하와 함께 승리했다"며 친일과 독재 세력이 그토록 감추고 없애려 했던 평화와 정의, 민주주의를 향한 선생의 의지와 충정은 87년 6월 항쟁의 함성으로, 2016년 촛불혁명의 불꽃으로 기어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다.
17일 경기도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42주기 추모식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장준하 선생 죽음의 진상 규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에겐 선생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며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선생이 꿈꿨던 평화로운 나라,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오직 국민을 위한 나라, 남과 북이 평화롭게 화합하는 한반도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선생의 후손으로서 감당해야 할 소명임을 깊이 되새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선생께서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밝혀 주시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지혜와 용기를 주시리라 믿는다"며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치며,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추도사를 마쳤다.
피 보훈처장의 대독이 끝나자 추모객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추모공연으로는 통기타 가수 손병휘 씨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쿠바를 떠나며', '나란히 가지 않아도' 등 3곡을 추모객들과 함께 열창했다.
피 보훈처장은 추모공연이 끝나자 다음 일정 때문에 조문객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한 뒤 유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떠났다.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을 대표해 장남인 장호권 씨도 문 대통령의 추도사에 화답했다.
장호권 씨는 "문 대통령의 추도사 중 해방 이후 친일과 군사독재에 의해 왜곡하고 점유해온 애국의 가치를 재정립하시겠다는 말과 남과 북이 평화로이 화합돼서 통일 한반도를 이룩해야겠다는 추도사를 넣어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곧 장준하 선생의 생전에 항상 마음에 품고 있던 뜻과 같은 것"이라며 "이러한 역사 인식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안도해도 되겠다는 기대와 감사하는 마음을 같고 있다"고 덧붙였다.
17일 경기도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42주기 추모식에서 유광언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유광언 장준하기념사업회 회장도 앞서 인사말에서 추모사를 보낸 문 대통령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의 활동을 다짐했다.
유 회장은 "우리는 선생님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에 여러 관련 단체와 힘을 모아 나설 것"이라며 "이번 민주정부에서 반드시 끝을 내겠다는 다짐을 한다"며 "반드시 진실을 밝혀 선생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달래 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모객 임순화(77.여) 씨는 "장준하 선생을 평소부터 존경했고 그 전부터 오고 싶었다"면서 "이제 애국심 있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추도식은 중국 대륙을 누비던 장준하 선생의 항일독립 정신을 기리며 독립군가 제창과 추모객들의 분향과 참배로 1시간 가량 만에 끝났다.
추도식에는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들, 피 보훈처장, 더불어민주당 김해영·김홍걸·박정 의원을 비롯한 각계 인사, 기념사업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정의당 이정미 대표,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 등은 조화를 보내 추도식 참석을 대신했다.
한편,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일제 강점기 광복군·임시정부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해방 뒤에는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1975년 8월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검찰은 '등산 중 실족에 의한 추락사'라고 사인을 발표했다.
과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4년 타살 의혹을 조사했으나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지었다.
하지만 유족은 지난 2012년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 뒤쪽에 지름 5∼6㎝의 구멍과 금이 간 흔적이 발견됐다며 타살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