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살충제 계란 참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부와 산란계 사육농장, 계란 유통업계 등 관계자 모두가 알고 있던 사건이자 예견했던 결과다.
기온 상승으로 닭 진드기가 유난히 많이 발생했던 지난해부터 살충제 살포와 그 위험이 크다는 사실은 업계 관계자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던 일이다.
하지만 산란계 농장은 물론 정부조차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특히 정부는 법적, 제도적 대책 마련에 소홀했던 것이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눈길을 끄는 지점은 소비자들에게 청정계란으로 홍보하며 고가의 가격을 받고 판매되던 '친환경 인증' 농가의 계란에서 오히려 기준치를 초과한 살충제가 집중적으로 검출됐다는 점이다.
지난 17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 32곳 가운데 무려 28곳이 정부가 직접 보증한 '친환경인증' 농장으로 87.5%에 달한다.
이 때까지 조사를 마친 876개 농장 가운데 683곳으로 애초 조사대상 가운데 친환경인증 농장이 77.9%로 다수인 점을 감안해도, 일반 농가보다도 오히려 친환경 인증 농장에서 '살충제 계란' 농가가 더 많이 발생한 셈이다.
살충제가 유통기준치 이하만 검출되면 판매할 수 있는 일반 농가와 달리 친환경 인증 농가는 아예 살충제를 사용조차 할 수 없도록 제한되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의아한 결과다.
이러한 의문의 해답은 농장이 정부로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아 유지하는 과정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친환경 농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농장들이 친환경인증을 신청하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50일 안에 서류심사와 현장심사를 진행해 인증기준에 적합할 경우 인증서를 교부하고, 이후 1년 단위로 갱신한다.
인증 후 농관원은 매년 1회 이상 불시검사를 벌여 인증기준에 맞게 농장을 운영하는 지 약제사용 실태와 사료사용 실태, 시설, 면적 등을 검사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 인증을 취소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농관원은 직접 감독하는 대신 전국 64곳의 민간 인증심사기관을 지정, 위탁하고 있다.
애초에 이번 살충제 계란을 포함해 축산물 관련 사안은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이다. 살충제 계란이 적발되면 농관원이 지방자치단체와 식약처에 통보하고, 식약처가 부적합 판정을 받은 축산물을 회수, 폐기 조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친환경인증농장에 대한 관리감독 과정은 식약처가 농관원에 업무위탁을 통해 관리하고, 이를 다시 농관원이 민간 인증심사기관으로 위탁하는 '하청에 재하청'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어서 관리 감독이 제대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다.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인증기관들은 친환경 인증을 많이 발급할수록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리는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제대로 검사하지 않고 인증을 남발하는가 하면, 심지어 일부 농가와 결탁해 '짬짜미 인증'을 벌이는 사례가 적발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 친환경 인증 농가들은 오히려 일반 농장보다도 더 강한 살충제를, 더 많이 뿌려야 한다는 유혹에 시달린다.
여름철이 되면 더위와 진드기로 인해 닭이 스트레스를 받아 산란력이 평상시의 70%까지 떨어지고, 무항생제 사료를 먹는 친환경 인증 농가의 닭의 생산력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 허태웅 식품정책실장은 "면역력이 강해지도록 항생제를 먹이는데 무항생제 사료를 먹이다보면 자연환경의 공격에 약해질 수밖에 없고, 닭 진드기 등이 공격할 여건이 조성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동물복지 인증·유기사료 농가가 아닌 무항생제 농가는 일반 농가와 마찬가지로 철망우리(케이지)에 닭을 가두고 대규모로 사육하기 때문에 닭이 '흙 목욕'으로 직접 진드기를 떼어낼 수 없어 살충제를 살포할 수밖에 없다.
허 실장은 "실제 사육 농가 입장에서는 고충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천연물질 살충제는 고가인데 사용이 금지된 유기합성 살충제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농가로서는 항시 비치해둘 수밖에 없어 적발되기 쉬운 사료는 무항생제 사료를 쓰고, 대신 살충제를 살포한 뒤 관련 증거물들만 제 때 폐기해서 1년에 한번 있을 불시검사 당일만 잘 넘기면 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셈이다.
심지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닭 진드기 방제사업을 추진하면서 친환경 인증 농가에 살충제를 직접 공급하기까지 했다.
농식품부는 1억 5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방제사업을 시범 시행했고, 이에 각 지자체 역시 1억 5천만원을 더해 총 3억원 사업비로 각 농장에 방제약품을 공급했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들은 일반 농장뿐만 아니라 친환경 인증 농장에도 방제약품을 제공했고, 이들 농장은 "정부가 허락했다"며 살균제를 살포했다.
실제로 비펜트린이 기준치를 21배 초과해 검출된 전남 나주의 농가는 나주시청이 공급한 ‘와구 프리 블루’라는 살충제를 사용했다가 부적합 농가 판정을 받았다.
경남 창녕군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 9곳에 '와구 프리 옐로'라는 살충제를, 경기 용인시는 친환경 농가 5곳에 '아미트라즈'란 살충제를 각각 지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친환경 인증농가에서 (살충제 계란 농가가) 많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친환경 인증에 대한 절차 등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한다"며 "이번 일이 정리되는 대로 친환경 무항생제 계란에 대한 개선대책을 마련해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