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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어보'로 국민 속여온 문화재청…예견된 '촌극'



문화재/정책

    짝퉁 '어보'로 국민 속여온 문화재청…예견된 '촌극'

    "부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공로 과대포장한 탓…대국민 사과해야"

    '덕종어보' 진품이라며 수년간 홍보한 문화재청은 이번 특별전시회서는 재제작품이라고 말을 바꿨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보물급 유물로 꼽혀 온 '덕종어보' '예종어보' 등이 모조리 '짝퉁'으로 드러나면서 문화재청의 안일한 문화재 관리 행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문화재청은 이 사실을 알고도 쉬쉬해 온데다, 덕종어보의 경우 과도한 치적 쌓기가 부른 '거짓말 논란'까지 불거져 궁지에 몰렸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제자리찾기 등에 따르면, 1471년 제작된 덕종어보와 1469년 만들어진 예종어보를 비롯해 '예종비어보' '장순왕후어보' '예종계비어보'가 모둔 1924년 다시 제작된 모조품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이 사실을 지난해 말 파악했지만,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18일 "예종어보 등은 (모조품이라는 사실이 그동안) 묻혀 있던 것이니 이번에 발표하면 되는 것이고, 덕종어보는 그렇게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말문을 열었다.

    "덕종어보의 경우 문화재청장까지 직접 나서서 1471년 제작된 진품이라고 발표하고 보도자료도 돌리면서 온갖 대대적인 홍보를 했는데, 모조품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의 문제로, (모조품이라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던 예종어보 등과는 사건의 성격이 다르다."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014년 12월 미국 시애틀 박물관으로부터 덕종어보를 환수 받았다고 발표했다. 보도자료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태조사를 벌여 덕종어보가 진품인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고, 당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한 언론 기고문에서 "2014년 11월 시애틀 미술관 이사회가 반환을 승인하면서 성숙한 협상의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고 자찬했다. 하지만 해당 어보는 1924년 진품이 분실된 직후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가 지시해 만들어진 모조품이었다.

    문화재청은 18일,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지난달 돌아온 문정왕후어보와 함께 덕종어보 등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이튿날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시를 열 예정이다. 그간 공식석상에서 덕종어보가 1471년 제작된 진품이라 발표해 온 문화재청이지만, 이번 전시회 자료에는 '1924년 재제작품'으로 적어 말을 바꿨다.

    혜문 대표는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환수된) 문정왕후어보와 함께 덕정어보를 전시에 내놓는 이유가 무엇이겠나"라며 "(문정왕후어보 반환을 두고) 외신도 '시민운동의 승리'라고 쓰는 판에, 모두 자기(문화재청)의 치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재청이 자기 공로를 과대포장하다 보니 사실을 은폐하고 시민운동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부처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모두의 승리를 자기 이익으로 변질시키는 문화재청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라고 질타했다.

    ◇ "문화재청 실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국가 체면의 문제"

    '덕종어보' 진품이라며 수년간 홍보한 문화재청은 이번 특별전시회서는 재제작품이라고 말을 바꿨다. (사진=국립고궁박물관)

     

    관계 전문가들은 '짝퉁' 어보에 휘둘린 문화재청 감독·주연의 이번 촌극이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는 따끔한 비판을 내놓고 있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주수완 교수는 18일 "어보에 관한 국내 연구가 많이 안 돼 있는 환경에서 문화재청이 (일찌감치 진품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며 "진품이 분실된 경위, 다시 제작을 했다면 예전에 없어진 것을 왜 다시 만들었는지, 없어진 어보가 모두 다시 제작됐는지를 밝히는 연구가 우선됐어야 한다. (뒤늦게 모조품인 것을 알았다면) 사실 경위는 명확히 밝혔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주 교수는 특히 희귀 연구 분야에 대한 문화재청의 정책적 지원 부족을 근원적인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어보가 나왔다'고 하면 그 분야 전문가를 투입하면 될 텐데, 우리 학계의 연구 인력은 수요가 많은 특정 분야에 집중돼 있다보니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 분야 연구자를 찾기 어렵다"며 "물론 어보 연구자가 있기는 할 텐데, 대부분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갑작스레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 분야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전문 인력 육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희귀 연구 분야에 대해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에서 뒷받침해 준다면 이러한 문제를 보다 일찍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국미술사연구소 문명대 소장 역시 "현재 문화재 특정 전문가 육성에 대한 문화재청의 지원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며 "전문가를 양성하지 않고,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은 채 문화재 지정부터 모든 것을 진행하는 풍토에서는 이런 일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 소장은 "당해 각 분야별 최고 전문가로 구성돼야 할 중앙·지방 문화재위원회 위원들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로 꼽을 수 있다"며 "재발하지 않도록 문화재청의 이번 실수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우리나라 최고 문화재 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국가 체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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