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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北 소행, 전라도는 종북세력" 광장에서 펼쳐지는 역사왜곡

사회 일반

    "5·18은 北 소행, 전라도는 종북세력" 광장에서 펼쳐지는 역사왜곡

    지난 11일 서울역 광장.

    "5.18은 북한군이 침투해 저지른 폭동이다!"
    "청주 유골 400여구는 광주에 침투해 폭동을 일으켰다가 사살된 북한군의 유해다!"
    "전라도는 대한민국을 적으로 생각한다!"

    확성기를 통해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반복해 들려왔다. '국혼운동본부'라는 단체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린다며 천막을 치고 장기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이 단체는 '5·18은 광주시민이 아닌 북한군 600여명이 침투해 일으킨 폭동'이며 몇년 전 청주 공동묘지터에서 발견된 유골 400여구도 '5·18 당시 침투했던 북한군이 사살당한 동료를 가매장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어 '광주시민들과 전남도민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북한에 끌려 다니는 빨갱이들'이며 '여전히 대한민국을 적으로 생각하는 세력'이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단체는 "5·18을 진압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반란수괴가 아닌 애국자"이며 "5·18의 진상을 새롭게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6월부터 서울과 대전, 부산 등을 돌며 전국적인 홍보와 서명을 벌이고 있다.

    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마구잡이로 강경 진압하고 있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5·18 북한군 개입설'은 근거가 전혀 없다. 5·18 당시 시민군과 최근 북한 수뇌부의 사진을 비교해 얼굴 모습이 비슷하다거나 시민군의 총메는 방식이 북한군과 똑같다며 '북한군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주장 이외에 합리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근거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등 보수정권도 '5·18 북한군 개입설'을 부인해왔다. 지난 2013년 6월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 과정에서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5·18을 무력진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5·18 왜곡현상이 우려스러운 점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혼운동본부는 '5·18 유공자 가산점 제도가 다른 국가유공자와 달리 특혜를 받으며 젊은이들의 공정한 기회를 빼앗아 가고 있다'며 고시생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 등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5·18을 청년 취업난과 연결시키며 '5·18 북한군 개입설'을 확대재생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이 단체의 움직임은 보수 정치권의 반향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지난 5월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은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도 '북한군 개입의혹 등도 함께 조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최근 발간된 '회고록'에서는 '금시초문'이라던 기존 입장을 바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역사왜곡에 가까운 5·18 폄하 현상에 대해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부쩍 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노골화된데에는 북한군 개입설을 초기부터 주장했던 지만원씨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판결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5·18 유공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지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2심과 대법원도 마찬가지로 무죄를 판결했다.

    법원은 '지씨가 5·18을 거론했을 뿐 특정인을 거명하지 않아 명예훼손의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워 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더 나아가 '5·18에 대한 비난보다는 지씨의 시각에서 재평가하려 했고 이로 인해 5·18에 대한 확립된 위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씨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국혼운동본부 등 보수단체들이 '5·18 북한군 개입설'은 물론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유발하는 '전라도 배제론'을 더욱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지씨에 대한 무죄 판결이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18 왜곡현상이 위험수위를 넘어서자 국회에서는 지난해 5·18 역사 왜곡행위를 처벌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잇따라 제출됐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명예훼손 등 현재 형법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했던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법적·사회적으로 (5·18의) 역사적 사실이 공고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법으로라도 이것을 공고화시키려는 의도가 보여 찬성할 수 없다"며 마치 5·18의 성격을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치즘의 광폭함을 경험했던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왜곡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나치당의 학살행위를 찬양하거나 부인,경시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형법에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도 2차 세계대전당시 저질러진 반인도범죄의 존재를 의문시하는 사람에게 형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5.18 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는 "5.18역사왜곡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은 정부의 진상조사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5.18 진상규명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5.18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며 "5.18 왜곡에 대해 재단도 법적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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