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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현대화' 혈세 7조원 '살충제 계란'으로 돌아왔다

경제정책

    '축사 현대화' 혈세 7조원 '살충제 계란'으로 돌아왔다

    2008년부터 축산 경쟁력 강화사업 폈지만 병해충 창궐

    '살충제 계란'에 대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전수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16일 경기도 양주 한 산란계 농장에서 직원들이 계란 출하 전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살충제 계란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수급의 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의 계란을 원하고, 공급자들은 이에 맞추기 위해 생산성이 좋은 공장식 밀집사육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FTA(자유무역협정)에 대비해 지난 2008년부터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이 이 같은 공장식 밀집사육을 오히려 부추긴 것으로 드러났다.

    축산물의 품질 개선보다는 생산비용 절감을 통해 수입축산물과의 가격 경쟁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결국 외양간을 고치고도 소를 잃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FTA 가격 경쟁력 높여라" 7조5천억 투입

    농촌경제연구원 지인배 연구원은 “소비자는 늘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특정 재화의 가격 상승은 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계란이 생활필수재적인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를 경우 소비자는 소비를 줄일 것”이라며 “특히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은 소비자의 외면을 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계란이 됐든 돼지고기가 됐든 공급가격을 낮춰서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소비할 수 있는 유통구조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미국과 중국, 호주 등 농업 강국과의 FTA가 발효되면서 값싼 수입 농축산물에 대응하기 위해선 국내산 농축산물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선택한 정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이다. 축사시설을 개선해 인건비와 유통비용 등을 낮추면 생산비가 줄어서 소비자가격도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 2008년부터 지난 2015년까지 7조5천억 원을 투입했다. 이를 바탕으로 급이(먹이)시설과 급수시설, 전기시설, 환기시설, 조명시설 등 축사시설을 개선했다.

    특히, 가금류의 경우 계란.종란 보관창고와 집란기, 계란세척기, 선별기, 포장기 등 축사시설을 보조하는 역할의 축산시설을 대폭 확충했다.

    '살충제 계란'에 대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전수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16일 경기도 양주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양적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질적성장 제자리…계란 품질 관리 못해

    그러나, 이 같은 축사시설현대화사업이 국내 축산물의 생산비는 낮췄을지 몰라도 품질을 기대 만큼 높이지는 못했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정부 사업 목적에 생산성 향상이라는 단어는 명기돼 있지 않지만, 시설을 개선해서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고 말했다. 품질 개선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는 얘기다.

    특히, 산란계 농장은 오히려 공장식 밀집사육을 더욱 부채질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정부 자금을 지원받은 산란계 농장은 모두 322곳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농장은 무창계사(창이 없는 축사)를 짓거나 케이지(철재우리)를 확대 설치해 사육 마릿수를 늘리는 등 계란 공급물량을 늘리는데 주력했다.

    또, 계란 보관창고와 집란기, 포장기 등 축산시설을 설치해 인건비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결과는 조류인플루엔자(AI)와 닭 진드기 등 병.해충 발생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만 키우고 살충제 계란 파동을 불러 오고 말았다.

    실제로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와 관련해 무창계사 농장들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무창계사는 인공조명과 환풍기, 온도조절기 등을 갖춰 닭 진드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산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가운데 서울 한 대형마트 계란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양계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시설현대화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보조금이나 융자금을 받기 위해 (농장주들이) 앞다투어 신청을 했다”며 “계란값을 떨어트리는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계란 품질이 크게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며 “시설이 좋아졌으니까 닭들이 알 낳는 환경은 좋아졌고 가격이 조금 내렸을지 몰라도 소비자들한테 무슨 도움이 됐겠냐”고 지적했다.

    동물복지농장을 운영하는 김기석(가명, 56)씨는 “정부가 7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서 축사시설을 개선했다지만 동물복지농장들은 혜택 받은 게 없다”며 “산란계 농장이 전국에 1400개가 넘는데 복지농장은 15개에 불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해 농촌경제연구원 지인배 박사는 “정부가 지금까지 축사시설현대화 사업 등을 통해서 양적 성장을 추구했다면 지금부터는 질적 성장을 통해 계란의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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