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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방에 혜정이가 고이 자고 있으니 이렇게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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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옆방에 혜정이가 고이 자고 있으니 이렇게 좋네요”

    발달장애 여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사는 삶’ 택한 장혜영 씨

    - “세상엔 우리 동생 같은 삶이 있고, 같이 살 수도 있어요”
    - 중증 발달장애 갖고 있는 동생 혜정 씨와 함께 산 지 두 달 반
    - “나랑 사는 거 괜찮아?” 하면 “어 괜찮아 좋아..” 하는 동생
    - 당신은 18년 동안 ‘시설’에서 살 수 있나?
    - 장애인과 섞여사는 게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회
    -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 진행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8월 22일 (화)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장혜영


    ◇ 정관용> 장애인 문제 다시 한 번 생각을 나눠봅니다. 장애인 차별철폐연대가 벌써 5년째 광화문에서 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죠. 지난 주말에 광화문 농성 투쟁 5주년 문화제도 있었고요.

    이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요구하는 3대 요구사항이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그리고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입니다. 장애인 수용시설 이걸 없애고 장애인들도 가족들과 함께 사회 성원의 한 사람으로 더불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탈 시설’하자, 이런 주장인데요.

    오늘 그와 관련된 독특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계신 분을 한 분 모셨습니다. 20년 가까이 시설에 살던 발달장애인 동생에게 ‘나와서 우리 집으로 가자’, 이렇게 해서 지금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고 있어요.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계신 분입니다. 바로 장혜영 씨인데요.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장혜영> 안녕하세요.

    ◇ 정관용> 동생이 장애인이시죠? 동생 이름은?

    ◆ 장혜영> 장혜정입니다.

    ◇ 정관용> 몇 살 차이예요?

    ◆ 장혜영> 1살이요.

    ◇ 정관용> 동생 분은 어떤 장애를 갖고 있습니까?

    ◆ 장혜영> 중증발달장애라고 보통 말하는데 동생은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둘 다 굉장히 심하게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24시간,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사람이죠.

    ◇ 정관용>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 장혜영> 기억나는 과거 그 모든 순간에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그게 선천적인 건지 아니면 후천적인 건지 그거는 잘 몰라요. 부모님도 어떤 사고를 겪으면서 이제 그걸 계기로 동생이 그런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아셨기 때문에 그게 어떻게 시작된 건지는 저희도 명확하게는 몰라요.

    ◇ 정관용> 신체적으로는 문제 없는 거죠?

    ◆ 장혜영> 그렇죠.

    ◇ 정관용>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 장혜영> 네, 뇌의 어떤 부분의 발달이 이제 지연되거나 멈춰 있는. 그걸 통해서 다양한 어떤 일상생활의 불편을 겪고 있는 그런 사람이죠.

    ◇ 정관용> 언니는 알아봐요?

    ◆ 장혜영> 물론이죠. 인지는 있어요.

    ◇ 정관용> 인지는 되는데. 그런데 옆에서 돌보지 않으면 안전하게 못 지낸다는 건 예를 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진다는 겁니까?

    ◆ 장혜영> 그러니까 안전하다고 하는 게 다양한 상황으로 얘기될 수가 있지만 제 동생 같은 경우는 당연히 사람들도 보고 말도 하고 한글도 읽고 쓸 줄 알고 숫자도 조금 쓸 줄 알고 이제 이런데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시설에 오래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을 갈 때 차를 조심해야 한다든가 신호등을 봐야 한다든가 혹은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난 사람을 만지면 안 된다든가, 이런 것들을 모르는 거죠.

    ◇ 정관용> 남의 집에도 막 들어가고.

    ◆ 장혜영> 어렸을 때는 그랬어요.

    ◇ 정관용> 동생은 언제부터 시설에 있었습니까?

    ◆ 장혜영> 동생이 13살 때부터, 지금 30살이 됐는데 지금까지 열여덟 해를 시설에서 보냈어요.

    ◇ 정관용> 13살 되기 전에는?

    ◆ 장혜영> 집에서 같이 지냈죠.

    ◇ 정관용> 어떻게 하다가 시설을 가게 됐습니까?

    ◆ 장혜영> 저도 한 살 차이라서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동생이 시설로 보내졌는데요.

    제 생각에는 부모님이 이제 그전까지는 워낙 저랑 동생이랑 저희 언니도 있는데. 그러니까 저희 자매들의 삶이 동생을 돌보는 걸로 너무 많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저희들의 미래 이런 걸 생각을 하셔서 이제 마음이 아프지만 어쨌거나 동생을 동생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보내고 저희는 저희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려고 하셨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 정관용> 시설에 가 있는 동안에도 그래도 주기적으로 가서 만나고 했죠?

    ◆ 장혜영> 그렇죠. 18년 동안 늘 주기적이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랬었죠.

    ◇ 정관용> 그러다가 이제 나이도 삼십이 됐는데 18년이나 있었는데. 자, 시설 밖으로 나와서 집으로 가자. 왜요, 왜?

    ◆ 장혜영> 18년이라고 하는 시간이 되게 짧다면 짧지만 사실은 이제 갓난아기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 긴 시간이잖아요. 그 안에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런데 저는 처음에는 그 시설이 굉장히 좋은 곳을 부모님이 골라서 맨처음에는 보내셨었고 그리고 동생도 그렇게 지내는 게. 시설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서 거기서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저도 생각을 했었어요.

    ◇ 정관용> 또 그 시설에는 또 유사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전문가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보통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 장혜영>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환상이죠, 사실은.

    ◇ 정관용> 환상인가요?

    ◆ 장혜영> 대부분의 시설은 그렇게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회복지사들이 충분하게 존재하지는 않고요. 굉장히 적은 수의 그러니까 돌보는 인원에 비해서 돌보는 사람의 수는 현저히 적고 그리고 실제로 그런 발달장애인들 혹은 지체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적절하게 케어하는 방법을 명확히 알고 있는 분들은 정말 많이 안 계세요.

    그래서 동생의 시설을 가까이 보면 볼수록 점점 더 한계점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에 특히 이제 어떤 3년 전쯤에 동생이 있던 시설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그 내부의 교사 선생님의 어떤 양심고백 같은 걸로 불거지면서..

    ◇ 정관용> 어떤 종류의 인권침해예요?

    ◆ 장혜영> 굉장히 일상적인 것들이었는데요. 이렇게 누군가가 죽는다든가 크게 다친다든가 이런 거라기보다는 시설에서 가장 비일비재한 인권침해는 분명히 성인이고 나이를 먹었는데 성인 대접을 안 해 주는 거예요.

    늘 “야, 누구야, 뭐뭐해”, 절대 어른 대접을 해 주지 않는 것, 이건 경미하지만 사실은 이제 그 사람을 우리가 생각한 보통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전혀 다른, 특수한, “장애인이니까 이렇게 대해도 돼”, 하는 관점에서 대하는 것 같거든요.

    ◇ 정관용> 그리고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존대를 하는지 안 하는지.

    ◆ 장혜영> 모를 거야.

    ◇ 정관용> 알지도 못할 거야, 이렇게.

    ◆ 장혜영> 그렇죠. 그리고 나는 권위가 있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대해도 돼. 이렇게 해서 굉장히 체벌 같은 것도 있었고.

    ◇ 정관용> 체벌.

    ◆ 장혜영> 네. 그리고 약간 심했던 건 선생님들끼리 카톡방을 파서 그 안에서 거주인들 욕을 하고 이런 일들까지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이제 말씀을 하셔서.

    ◇ 정관용> 양심고백을 하신.

    ◆ 장혜영> 폭로가 되었었고 그래서 그걸 가지고 그 시설 안에서 자정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게 굉장히 큰 관성을 통해서 유야무야되는 걸 봤고 그걸로 본질적으로 시설이 제공하는 보호라고 하는 것은 환상일 수 있겠구나라고 하는 생각을 해서 그때부터 정말 동생을 시설 밖 사회로 데리고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러고서는 몇 년 만에 결행에 옮기신 거네요.

    ◆ 장혜영> 그런 셈이죠.

    ◇ 정관용> 그래서 딱 데리고 나와 보니까 헤어져 산 지 18년이잖아요.

    ◆ 장혜영> 그렇죠.

    ◇ 정관용> 막막했을 것 같은데요.

    ◆ 장혜영> 동생도 그렇겠죠? 그래도.

    ◇ 정관용> 어땠습니까? 지금 얼마나 지났어요?

    ◆ 장혜영> 실제로 나온 지는 두 달 반 정도 되어 가고 있는데 그런데 동생을 ‘꼬시는’ 데 공을 제가 많이 들였어요.

    ◇ 정관용> 나가자고? 안 나가겠다고 했어요?

    ◆ 장혜영> 네, 처음에는 당연히 열여덟 해를 거기서 살았는데 당연히 거기가 집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중간중간 밖으로 제가 데리고 나와서 이제 한 3~4일 지나면 언제 다시 시설에 가냐고 물어보고 이러던 게 동생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탈시설을 동생이 해야겠다고 사회에서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서 이제 동생 본인을 설득하는 것 그리고 이제 동생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설득하는 일들에 거의 1년, 1년 반 긴 시간을 두고, 계속 나와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왜냐하면 너무 나와 산 지 오래됐으니까 자주 나와서 집도 보여주고 방도 보여주고 너 여기서 살래? 언니랑 사는 거야 계속 얘기하고 부모님도 설득하고 그렇게 해서 왔기 때문에 18년이라고 하는 공백이 있지만 저희의 두 달은 나름대로 순조롭게 지금까지는 이어져왔던 것 같아요.

    ◇ 정관용> 돌발사고 없었어요?

    ◆ 장혜영> 돌발사고는 없었어요. 없었어요. 제 관점에서는 없었습니다.

    ◇ 정관용> 동생이 만족해하나요?

    ◆ 장혜영> 사실 제가 동생을 데리고 와서 제일 두려워했었던 말은 동생이 다시 시설로 돌아가겠다고 할까 봐.

    ◇ 정관용> 그러니까요.

    ◆ 장혜영> 그 말을 동생의 입에서 듣는 걸 제일 두려워했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말하지 않고 너 나랑 사는 거 괜찮아라고 제가 물어보거든요. 진짜 매번 물어볼 때마다 너무 긴장을 하고 물어보지만 다행히 “어, 괜찮아 좋아”라고 얘기를 해 줘서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 정관용> 그런데 언니는 삶이 좋아요?

    ◆ 장혜영> 저요? 너무 좋죠.

    ◇ 정관용> 정말이요?

    ◆ 장혜영> 네.

    ◇ 정관용> 왜요?

    장혜영 씨(사진=시사자키)

    ◆ 장혜영> 그러니까 어떤 환경적인 부분에서 이를테면 제 시간, 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사라지고 동생이랑 있어야 한다는 게 이제 힘든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전에 동생이 시설에 있을 때는 정말 하루하루를 넘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뭐가 힘드냐 하면 동생이 탈시설하기 직전에 시설에서의 매일매일은 정말 다른 거주인들하고 너무나 트러블이 심하고, 하지만 그 트러블을 말려줄 인원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매일 전화를 할 때마다 전화기 너머에서 고성이 들려오는 그런 날들을 보내서 정말 밤에 잠을 잘 때마다 혜정이는 잘 자고 있을까, 오늘은 별일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일매일을 지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옆방에 혜정이가 곤히 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게 주는 마음의 평화라고 하는 것은 정말 이렇게 삶의 질이 향상될 수가 제 입장에서는 없었습니다.

    ◇ 정관용> 하지만 냉정하게 안 물어볼 수가 없는 게 언니 장혜영 씨도 서른 한 살의 꽃다운 청춘이고 할 일이 태산 같은 사회인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일 못하잖아요.

    ◆ 장혜영> 저는 약간 생각이 다른데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거쳐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서른 한 살이고 이제 일찌감치 나름 일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이제 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사회생활조차도 저는 단 한 번도 정규직 내지는 어떤 계약직으로라도 꼭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어야 되는 일을 하지는 않았거든요.

    ◇ 정관용> 그러면 프리랜서로 활동을.

    ◆ 장혜영> 왜냐하면 언제 동생네 시설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그때 달려갈 수 없다면 그건 너무 비참할 테니까 그래서 늘 프리랜서로 살았고 그래서 뭐랄까. 세상에 맞춰사는 삶이 있지만 모두가 이렇게 세상에 맞춰 살고 있는 동안 제 동생은 전혀 이 세상하고는 완전히 격리된 상태로 그냥 방치돼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 두 세계가 이렇게 서로 격리된 채로 통하지 않는 이상 저는 진짜 내적인 행복감 이런 걸 느끼는 건 거의 기만스럽다는 감정을 나중에는 결국 느꼈어요. 아무리 개인적인 행복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단지 그게 내가 발달장애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리는 거라면 그건 너무 사실은 큰 거짓말이잖아요.

    그래서 동생과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 그걸 알리는 걸 저는 이제 저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기로 했고.

    ◇ 정관용> 지금 일을 하고 계신 거네요.

    ◆ 장혜영> 그렇죠. 일을 하면서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 정관용> 그래서 그렇게 18년 만에 시설 밖으로 나온 동생과 살아가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 그러니 제작비를 좀 보태주세요, 일종의 스토리펀딩 같은 것도 하셨죠?

    ◆ 장혜영> 크라우드 펀딩을 해서 성공했습니다.

    ◇ 정관용> 크라우드 펀딩. 목표된 모금액을 이미 다 달성을 하셨죠?

    ◆ 장혜영> 맞아요.

    ◇ 정관용> 그러면 이걸 왜 다큐로 찍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되겠다. 왜요?

    ◆ 장혜영> 일단은 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인터넷이 모든 곳에 있지 않았었고 저는 또 시골에서 살았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과 늘 함께 지내왔으니까 우리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런데 제가 접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여성이 행복해진 이야기가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행복해지는 건 고사하고 발달장애인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 자체를 서사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래서 당연히 탈시설 혹은 시설 밖에서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결코 생각하지 못했죠. 그냥 시설에 가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만약에 그때의 저에게, 7살, 8살 때의 지금의 저의 선택을 알려줄 수 있다면 분명히 저는 또 다른 삶을 조금은 더 희망적인 눈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그건 시초였고. 그러니까 저 같은 혹은 발달장애인 가족을 둔 다른 비장애인 형제들 혹은 가족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더 나아가서는 굳이 그런 가족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국 발달장애인이 나와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지금은 비장애인인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의식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잖아요.

    이런 분들한테 조금이라도 이 얘기를 전하고 싶다. 우리의 존재도 여기 있다, 이걸 전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도 하고 그리고 사실은 이제 유튜브에서 매주 V로그를 올리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요.

    ◇ 정관용> 저도 유튜브에서 좀 봤습니다.

    ◆ 장혜영> 그러셨어요.

    ◇ 정관용> 봄나들이 여행도 다니고.

    ◆ 장혜영> 네, 맞아요.

    ◇ 정관용> 해외여행도 다녀오셨더라고요.

    ◆ 장혜영> 작년 10월쯤에.

    ◇ 정관용> 비행기 타고 동생이 안 무서워하던가요?

    ◆ 장혜영> 처음에는 좀 무서워했는데 “하품해, 하품해” 이렇게 알려줬더니 귀 멍멍한 것도 잘 견뎌내고 아주 의젓했습니다.

    ◇ 정관용> 크라우드 펀딩에 주로 장애인 가족들이 많이 참여하셨나요? 꼭 그렇지도 않나요?

    ◆ 장혜영> 꼭 그렇지도 않아요. 1249명이라고 하는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 주셔서 그 가운데에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계셨었어요.

    ◇ 정관용> 이 방송을 이렇게 쭉 따라들으시면서 많은 분들이 참 훌륭하다 이런 생각은 한편에 하면서 그런데 그 동생분이 있었다는 시설이 3년 전에 인권침해 이런 게 벌어졌다는데 그런 인권침해 없도록 좋은 시설을 만들어서 정말 그런 분들을 전문적으로 돌볼 전문가들이 배치돼서 그렇게 사시는 게 더 좋은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 장혜영> 저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고 심지어 저는 그런 인권침해 문제가 있었을 때 그 시절의 학부모회장직을 맡고 있었어요.

    그 시설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선봉에 서 있던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이었었는데 탈시설을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건 좋은 시설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이유는 굉장히 간단한데요.

    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시설 안으로 들어간 장애인은 이를테면 제 동생은 혜정이로 살아갈 수 없고 시설장애인으로서 주어지는 삶에 만족해야만 해요. 그 이상의 삶을 상상하고 도전하고 누릴 자유라고 하는 것은 시설 안에서는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요.

    ◇ 정관용> 일단 세상으로부터 격리되는 거군요.

    ◆ 장혜영> 그렇죠. 그러니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삶이지 않겠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라고 하는 본인이 결정한 삶이 아니라 사회가 주는 시설장애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물론 좋은 옷을 입고 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안전한 집에서 잔다면 그것은 나쁘지 않은 환경이겠죠. 그런데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

    이 얘기를 듣고 계신 많은 비장애인 분들께서 만일 당신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할 테니까 18년 동안 산꼭대기에 있는 시설에서 누구도 당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야 한다면 과연 그 환경을 좋은 삶이라고 말씀하시겠는가 물어보고 싶어요.

    ◇ 정관용> 그래요. 답이 된 것 같고. 또 하나 또 많은 분들이 질문할 것이 그러면 지금 서른한 살의 꽃다운 장혜영 씨는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동생과 그렇게 계속 살 거냐. 그러면 장혜영의 삶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 이런 질문은?

    ◆ 장혜영> 저는 그 질문은 우리 사회가 아직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그러니까 발달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섞여 사는 게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나오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일단은 당연히 평생 동생하고 살고 싶지는 않죠. 그리고 아마 제 동생도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매순간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참견하는 제가 같이 사는 사람이고 언니기는 하지만 걔도 귀찮겠죠.

    그래서 언젠가 저는 동생이 좀 더 사회에서 저를 통한 관계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관계망을 만들어서 독립하고 싶다라고 한다면 저는 얼마든지 독립을 지원할 생각이 있는 거고.

    ◇ 정관용> 그런데 그렇게 독립할 수 있나요? 그 발달장애 정도가 중증이면?

    ◆ 장혜영>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이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

    ◇ 정관용> 안 해 봤다, 한 번도?

    ◆ 장혜영> 아니요. 자립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또 있다. 사실 비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자립의 조건보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자립의 조건이 훨씬 더 까다롭다는 생각은 저는 많이 하거든요.

    이를테면 저 같은 경우도 이제 동생에게 자립을 묻는 많은 사람들이 네 동생이 그 모든 일들을 혼자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거든요. 그런데 그 질문을 제가 저 스스로에게 해 보면 저도 못해요. 저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매순간 필요하고 단지 저와 동생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저에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내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고요. 제 동생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동생에게도 자기의 욕구를 표현을 하고 필요한 도움을 용이하게 요청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의사소통의 경험들 이런 것이 쌓여나가다 보면 동생의 세계가, 동생의 삶의 세계가 또 만들어지지 않겠는가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 정관용> 미래는 열려 있군요.

    ◆ 장혜영> 그렇습니다.

    ◇ 정관용>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질문만 제가 계속 던졌군요.

    ◆ 장혜영> 아닙니다. 필요한 질문이죠. 왜냐하면 깨고 나아가야 하니까요.

    ◇ 정관용> 여태까지 제대로 된 시도가 없었고 그 시도를 국민들도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깨지지 않은 편견을 우리가 가지고 있을 수 있다..?

    ◆ 장혜영> 그렇습니다.

    ◇ 정관용> 거기에 한번 도전해 보겠다.

    ◆ 장혜영>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이 다큐는 영화로 만들어집니까?

    ◆ 장혜영> 네, 내년 2월 완성 예정이에요.

    ◇ 정관용> 개봉도 하게 될까요?

    ◆ 장혜영> 그건 다큐멘터리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잘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동생의 삶이 우선이기 때문에 동생의 삶을 잘 챙겨나가다 보면 다큐멘터리에도 분명히 좋은 장면들이 들어갈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정관용> 어떤 인터뷰를 보니까 그 다큐를 신파로 만들지는 않겠다라고 하던데. 무슨 뜻이에요?

    ◆ 장혜영> 그러니까 보통 장애인이 나오는 영상 혹은 글, 콘텐츠, 이런 것들 대부분이 그 이야기 자체가.

    ◇ 정관용> 눈물을 쥐어짜죠.

    ◆ 장혜영> 네, 이건 장애인 얘기야라고 하는 꼬리표를 처음부터 달고 들어가요. 그런데 저는 그런 작업을 전혀 할 생각이 없고 그냥 혜정이라고 하는 이름과 성격과 개인사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사회에 나와서 살아가는 얘기 그리고 그걸 주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얘기를 담을 예정이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뭐랄까,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건 그냥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격리의 벽, 그걸 통해서 쌓은 고정관념을 스스로 바라보는 경험일 거다. 저는 그런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

    ◇ 정관용> 장혜영 씨한테 오늘 제가 배워서 마지막 클로징은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우리 주변에 나와는 조금 다른 독특한 한 친구, 장혜정이 또 역시 같은 의미에서 독특한 한 친구인 장혜영과 둘이 살아가는 모습, 리얼 다큐.

    ◆ 장혜영> <어른이 되면>.

    ◇ 정관용> <어른이 되면>.. 기대하겠습니다.

    ◆ 장혜영> 감사합니다.

    ◇ 정관용> 고맙습니다. 장혜영 씨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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