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의 등장은 과세에도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전자담배는 전자담배인데 일반 담배를 피우듯 스틱을 물고 피우는 형태의 궐련형 전자담배도 그 중 하나다.
문제는 입법이 현실을 못 쫓아가고 있는 것. 세금 부과를 위한 입법 작업은 장기간 공백상태다.
담배에 붙는 여러 세금 중 지방세와 건강증진부담금은 일찌감치 정비가 완료됐다. 지난해 말 국회 안행위는 담배소비세법을 개정해 지방세 부과의 근거를 마련했다. 복지위 역시 올 1월 건강증진부담금 부과를 위한 근거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국세인 개별소비세법 개정작업은 차일피일 늦어져 필립모리스가 지난 6월 아이코스(IQOS), 브리티쉬 아메리칸(BAT) 코리아가 8월 글로(glo)를 출시한 이후에도 세금 부과를 위한 근거규정은 정비되지 못한 상태다.
입법 늦어지면 외국회사들만 신바람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업무를 방기한 셈이고, 입법작업이 지연될수록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혈세는 줄줄 새기 마련이다.
입법공백으로 신바람이 난 쪽은 궐련형 전자담배 제조업체들이다. 개소세 과세규정이 없자 업체들은 최저액인 파이프담배 기준(갑당 126원)으로 신고했다. 일반담배의 1갑당 개별소비세가 594원이니 4분의 1도 안되는 세금을 내고 있는 셈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가 지난 22일 국세인 개별소비세 부과 방침과 기준에 합의했는데도 조경태 위원장의 제동으로 전체회의는 28일로 연기된 바 있다.
당시 조세소위는 입법공백을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궐련형 전자담배 1갑(20개비)당 594원, 비궐련형 전자담배는 1그램당 51원의 개별소비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해 신형 전자담배에 일반담배와 같은 세율을 적용토록 했다.
그러나 28일 전체회의에서 처리된다해도 5일간의 법사위 숙려기간 등을 감안하면 31일 본회의 처리가 불투명한데, 전체회의에서 난항을 겪으면 전자담배 개소세 문제는 아예 정기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궐련형 전자담배 문제의 핵심 쟁점은 증세논란과 세금의 규모다.
증세 아니라 없던 기준 만드는 것조경태 국회 기재위원장은 지난 23일 전체회의 상정을 불발시킨 것과 관련해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해서 보류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도한 수준으로 빠르게 세율을 올리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부담을 늘리는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기재부를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같은 당 출신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 조차 증세론을 일축했다. 추 의원은 27일 “새로운 형태의 담배에 대해 과세규정이 없다보니 과세에 공백이 생기고 일반 담배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라며 “관련 입법이 늦어지면서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세금을 안내고 이득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증세는 세금을 늘리는 것인데, 궐련형 전자담배는 아예 과세규정이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도 증세론은 맞지 않다.
또 전자담배의 판매가 늘게 된다면 일반 담배의 대체제인 셈이기 때문에 일반담배와 같은 세율을 적용해도 전체 세수는 늘지 않는다. 일반담배에서 전자담배로 수요가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현행대로 둔다면 국가 세수는 감소하게 된다.
얼마나 올릴까...‘갑이냐, 그램이냐, 유해성이냐’개별소비세를 얼마나 부과할 것이냐도 핵심 쟁점이다. 지난번 기재위 조세소위는 시급히 과세 근거규정을 마련하자는데 의견 일치를 봤지만 얼마를 물릴 지를 놓고는 갑론을박이 있었다.
정부와 일부 의원들은 과세목적과 형평성을 감안해 갑당(20개비) 594원의 개소세를 물리자고 주장했고, 한쪽에서는 일반담배의 무게와 가격에 준해 1그램당 51원으로 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 경우 전자담배가 6그램이니 306원, 대략 일반담배의 절반 수준이다.
전자담배의 유해성이 낮으니 세금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위해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각종 연구자료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에서는 유해성이 아니라 과세정책상 세금을 매겨왔기 때문에 유해성을 따지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니코틴 함량이 많은 독한 담배나 함량이 적은 순한 담배나 같은 세금이 매겨지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궐련형 전자담배에만 유독 유해성 여부를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이런 주장을 확대해석하면 모든 음식이나 술에도 몸에 좋은 음식이냐, 아니냐의 정도를 파악해 세금을 달리 매기자는 주장과 마찬가지다.
또한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관한한 아직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자료가 확인된 바가 없어 향후 검증이 더 필요하다.
일반담배와 전자담배는 제로섬 게임...시급한 입법작업
국내 연간 담배판매 규모는 대략 43억갑으로, 최근 전자담배가 늘면서 일반담배와 전자담배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현행대로라면 궐련형 전자담배의 시장 잠식률이 1% 상승하면 세수는 5백억 줄게 된다고 한다.
외국계 전자담배 제조사들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원가와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입법 공백을 틈타 이들 회사의 마진율이 30%~40%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다.
반면 국내에서 판매중인 4,500원 짜리 일반담배의 경우 출고가는 1,182원(원가+마진 등)이고 나머지 3,318원은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국회가 입법을 늦추는 것은 의무를 방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시급히 과세공백을 메운 뒤 앞으로 필요에 따라 조정해도 늦지 않다.
한편, KT&G도 궐련형 전자담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KT&G 관계자는 “법이 정해지면 따라야 한다”며 “개별소비세와 관련한 법이 최종 정비되면 출시 시기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