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DT, 우리나라엔 6.25 때 미군 통해 유입
- 2차 세계대전에선 전쟁의 성패 좌우하기도
- 처음에는 '혁신적' 제품, 지금은 전 세계서 사용 금지
- 1962년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위험성 제기
- '경제성과 효율' 따지다보니 부대비용도 발생
- 살충제 달걀, 매뉴얼은 있지만 현실성 떨어졌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08월 29일 (화)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고재열 (시사IN 편집기자)
◇ 정관용> 키워드 하나를 골라서 키워드로 읽는 세상입니다. 시사IN의 편집기획팀장 고재열 기자 어서 오세요.
◆ 고재열>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오늘 키워드는요?
◆ 고재열> '케미포비아'로 잡아왔습니다.
◇ 정관용> 이거 잡아오실 줄 알았어요. 화학제품공포증.
◆ 고재열> 그렇습니다. 최근에 살충제 달걀 문제도 그렇고 또 릴리안 생리대 부작용 문제, 거기다 또 생리대에서 이제 영아용 기저귀 문제까지 확장되는 양상인데요. 사실 화학제품에 대한 것은 원래부터 좀 부정적인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화학물질 아니면 유독성 화학물질, 발암성 화학물질. 안 좋은 수식어들이 많이 붙었었는데 이제는 이런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뀔 만큼 사례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화학제품 하나하나 새로 개발될 때마다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이랬었는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 문제들이 생겨서 그런 거 아닙니까?
◆ 고재열> 아무래도 청취자분들이 가장 심각한 사례로 기억하는 것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기업이 위험을 숨기고 있다, 이렇게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고 그리고 또 우리 정부가 그런 기업의 로비에 휘둘려서 외부 기준보다 낮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 정관용> 의심이 있죠.
(사진=자료사진)
◆ 고재열>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게 2006년인데 원인이 규명되는 데 5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관련 재판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최근에 관련 책임자들, 특히 대형마트 책임자들에 대한 2심이 있었는데 무더기로 감형이 돼서 이게 또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한참 전에 물수건에서도 이런 문제가 제기됐었잖아요?
◆ 고재열> 네. 그러니까 그때 물수건에서 문제가 된 거하고 이번에 문제가 된 게 좀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게 고분자흡수체 그 부분과 형광증백제인데.
◇ 정관용> 생리대에.
◆ 고재열> 네. 물수건이 문제됐을 때 당시도 형광증백제의 무리한 사용에 대해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들이 이번에 대비가 안 됐는지 그게 궁금하고요. 물수건 문제 자체도 2011년에도 15곳이 불법 운영한 곳이 적발이 됐었고 2012년에는 중금속 형광증백제 성분이 검출됐었는데 문제가 된 게 2016년이었거든요. 이렇게 문제가 됨에도 불구하고 어떤 규정이 정비는 되고 있지만 현실이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지금 물수건에 대한 규정은 어떻게 돼 있어요?
◆ 고재열> 올해 3월 30일에 위생용품 관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그전에는 물수건 같은 경우는 의약외품 그런 게 아니라 공산품이어서 이런 규제가 제대로 위생에 대해서 없었던 것 같은데 세제, 헹굼보조제, 위생물수건, 물티슈, 종이 냅킨, 일회용 컵, 일회용 수저, 기저귀, 면봉, 화장지, 이런 17종 위생용품으로 분류가 돼서 성분, 제조방법, 용도 이런 것들을 잘 관리하고 안내할 수 있게 이렇게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그런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못 따라간다?
◆ 고재열> 네.
◇ 정관용>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요?
◆ 고재열> 이런 것 같습니다. 문제가 된 제품들을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원래 우리가 이용하던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식당에 가서도 손을 씻으면 되는 건데 물수건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생리대와 기저귀 같은 경우는 원래 천으로 된 것을 빨아서 사용하다가 편리를 위해서 일회용들을 사용하게 됐는데 또 살충제 달걀 같은 경우도 닭을 흙목욕시켜서 그런 진드기 같은 걸 떼어 내야 하는데 밀집사육하면서 이런 살충제를 쓰게 됐는데 경제성과 효율을 따지다 보니까 생긴 어떤 부대비용인 것 같습니다.
비교하자면 원자력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발전비용이 저렴해서 이용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방사성 폐기물 처리 비용이 갑자기 확 늘어서 그게 문제가 되듯이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이런 위험을 좀 사전에 미리 대처할 방법은 없을까요?
◆ 고재열> 살충제 달걀 사태를 보면 일단은 정했던 매뉴얼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성이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실제 농가가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또 그렇게 했을 경우에 효과도 크지 않고요. 이를 테면 닭 우리를 다 비우고 우리에 규정된 살충제들을 뿌리고 그다음에 닭을 다시 넣어야 되는데 이렇게 하면 또 품이 많이 드는데 간접 살포하는 것보다 닭에 직접 살포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이렇다 보니까 잘 따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또 방역당국의 관리감독도 잘 안 되고.
◆ 고재열> 네. 살충제 성분과 관련된 부분은 조금 방역당국에서 인정하는 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하는데요.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조류독감 감염이고 그다음이 항생제, 항생제에 대해서 관리하다가 마지막에 살충제였는데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가 이번에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 정관용> 그리고 최근에 DDT 성분까지 검출됐고 그것도 친환경 양계장, 닭목욕시키는 그런 양계장에서 발견됐다고 그래서 논란이 된 거 아닙니까?
◆ 고재열> 여기서 되게 청취자분들도 의아해할 것 같은데. 왜 그런 곳에서 DDT가 나왔나 그렇게 생각할 텐데 제가 봤을 때는 DDT를 저도 그래도 좀 찾아봤더니 DDT가 나중에 금지가 되는 살충제가 되는데 그때 여러 가지 연구자료들이 나오는데 처음에 문제가 됐던 게 닭의 산란율을 낮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친환경 양계장에서 DDT를 쓸 이유는 없었던 거죠.
◇ 정관용> 안 썼다는 말이 맞는 거군요.
◆ 고재열> 그래서 DDT의 문제로 그때 지적됐던 것이 토양에 잔류가 오래 돼서 그게 지적됐는데 그래서 양계장이 설명하기도 흙을 쪼는 과정에서 그 흙에 잔류했던 DDT가 온 것 아니냐 이렇게 보고 있고요. 이 DDT를 살펴보면 케미포비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 정관용> DDT가 케미포비아의 한 역사예요?
◆ 고재열> 네.
◇ 정관용> 어떻게 되는데요?
◆ 고재열> 우리나라에서도 DDT 이용했던 거 기억나실 겁니다. 6.25전쟁 때 미군을 통해서 유입됐는데 그래서 빈대나 이를 박멸하기 위해서 옷에 뿌리고 심지어 머리에다 뿌리기도 했는데. DDT가 발명은 1873년에 됐는데 1940년에 스위스의 파울 헤르만 뮐러가 살충제로서 효능이 있다, 기능을 발견해서 그때부터 살충제의 원료 대체재로 사용됐는데 실험을 통해서 모기와 이를 비롯해 수많은 해충을 박멸한 효과가 입증되고 강력하고 효과가 오래 가는데 싸서. 그랬는데 이 DDT가 나중에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쟁의 성패도 좌우했습니다.
◇ 정관용> 전쟁의 승패를 DDT가 갈라요? 어떻게요?
◆ 고재열> 조금 과잉해석일 수 있겠지만 태평양전쟁 당시에 미군을 말라리아로부터 막아낸 것이 일본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다, 이런 분석을 하거든요. 당시 태평양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거기에 살충제 방제 전문가를 불러서 호소하기를 언제나 3분의 1의 병사는 말라리아로 고통받고 있고 3분의 1은 회복 중이고 나머지 3분의 1만이 실제 전투가 가능하다, 이렇게 호소했었는데 그리고 그 전에 살충제를 쓸 수 있던 것들은 너무나 비싸고 그리고 주 단위로 살포를 해야 되는데 DDT는 한 번 쏘면 수 개월이 지속되니까 효과를 봤고요. 그래서 그 효과를 바탕으로 전쟁이 끝나고 농업분야에 사용되면서 농업생산량 증대에도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 정관용> 해충을 박멸하니까.
◆ 고재열> 네.
◇ 정관용> 그러니까 이게 처음에 널리 쓰일 때는 아주 혁신적인 제품이었죠?
◆ 고재열> 혁신적이고 사람들에게 친숙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다큐멘터리를 보면 한쪽에서 DDT를 살포하고 있는데 옆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피크닉을 즐기면서 도시락 먹는 그런 장면도 있고요. 한때 DDT를 칵테일에 넣어서 술을 빨리 취하게 한다고 해서 유행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 정관용>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에서 사용이 금지된 품목이지 않습니까?
◆ 고재열> 계기가 되었던 게 1962년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인데 이 책에서 DDT의 위험성을 제기했습니다. 레이첼 카슨이 처음 문제제기했던 것은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든요. 그때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고를 했는데 이후에 뉴요커에 정기기고한 걸 묶어낸 게 ‘침묵의 봄’이고 화제가 됐습니다. 관찰을 해 보면서 DDT를 살포한 지역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하고 대학 캠퍼스에 살포한 이후에 새나 다람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위험성에 대한 연구자료를 찾아보고 그것을 어떻게 보면 폭로한 것인데. 미국 역사가들은 이 침묵의 봄이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톰 아저씨 오두막이 미국 노예제에 미친 영향에 비교하는 듯합니다.
◇ 정관용> 그런데 1940년경에 이게 살충제 효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불과 5년 후인 1945년부터 레이첼 카슨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기는 했지만 너무 오래 걸린 거네요?
◆ 고재열> 그렇습니다. DDT의 특징이 여하의 살충제에 비해서 사실 독성 자체가 맹독성이 강한 것은 아닙니다. 중간 정도, 중약 정도라고 하는데. 그런데 독특한 위험성이 있는데 하나는 생물 축적이 돼서 상위포식자로 갈수록 계속 축적이 된다는 그런 위험성이 있고요.
◇ 정관용> 빠져나가지 않고 남는다는 거죠, 몸 안에?
◆ 고재열> 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화합물이라 자연 상태에서 분해가 되지 않아서 잔류된다는 것인데. 그래서 미국 정부가 다양한 실험을 거쳐서 레이첼 카슨이 쓴 1962년의 책에서 10년이 지난 1972년에 드디어 미국 환경보호청이 미국에서 살충제 DDT를 사용을 금지할 만한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다, 이런 식으로 최종 결론을 내리고 금지를 내렸습니다.
고재열 기자 (사진=시사자키)
◇ 정관용> 최종 결론이 1972년에 와서야?
◆ 고재열> 그런데 그 뒤에 꾸준히 레이첼 카슨이 오히려 살인자다, 이런 주장이 제기됩니다.
◇ 정관용> 왜요? 왜 살인자라는 거예요?
◆ 고재열> 이게 '케미포비아에 대한 포비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DDT를 이렇게 금지하니까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말라리아에 결려 죽었다. 이것을 주로 보수 성향 미국의 자유지상주의 싱크탱크들이 주장하는 내용인데 미국 기업연구소에서 얘기했던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DDT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합성된 역사상 가장 소중한 화학물질이다. 그리고 레이첼 카슨은 히스테리 환자다, 히틀러다’, 이렇게까지 비난하는 보수 논객들도 있었고요. 그리고 후보연구소의 토마스 소웰이라는 이 논객는 ‘레이첼 카슨만큼 많은 인명을 죽이고 처형되지 않는 대량학살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말까지 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미국 정부가 충분히 DDT는 금지시킬 만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다 확인됐다라고 했는데도 왜 이런 비난이 끊이지가 않을까요?
◆ 고재열> 그러니까 내용을 보면 조금 논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분해가 잘 되지 않는 살충제 유해성이 증명이나 입증되었거나 확실하다, 잘 파악됐다 이런 식으로 결론내린 게 아니라 증거의 비중을 따져볼 때 DDT를 제한하기 위한 정책적 행동이 필요하기에 충분하다. 조금 말이 꼬이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서 입증 책임을 잘 분해되지 않는 살충제를 만든 사람한테 지웠던 것. 그래서 제조업체들이 DDT의 안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안정성을 의심할 수 있다, 이런 식의 결론을 내렸거든요. 그래서 과학과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가 동시에 작동한 사례로도 꼽히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어쨌든 레이첼 카슨을 살인자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은 DDT를 금지시켜서 말라리아를 막지 못했다. 이거는 뭐예요?
◆ 고재열> 여기에 대해서도 사실은 그 뒤에 과학적으로 또 재반박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DDT 특징이 부분적 효과만 있고 그 효과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건데요.
◇ 정관용> 그래요?
◆ 고재열> DDT에 대해서 곤충들이 내성을 빨리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DDT를 통해서 박멸을 하는데 살아남은 모기, 그런 곤충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DDT에 약한 곤충들은 다 박멸이 됐는데 DDT에 강한 개체들이 살아남고 그 유전자만 후손에 전달되면 그러니까 열성이 박멸되고 이런 우성만 남으면 개체 전체가 DDT로부터의 적응력이 있어서 그 뒤에는 뿌려도 효과가 없는 거예요. 해 보니까 실제적으로 농사용 DDT를 살포한 다음에 7~10년 정도면 내성을 갖게 되고 그 뒤부터는 아무리 모기퇴치운동을 DDT로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결론이 났습니다.
◇ 정관용> 실제로 실패한 사례가 있어요?
◆ 고재열> 네, 대표적인 것이 스리랑카 사회인데요. 1948년에 스리랑카에 말라리아 환자가 무려 280만 명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DDT를 집중적으로 살포하면서 1963년에 17명. 불과 17명으로 줄어들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1969년에 250만 명에 육박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 미국의 보수 언론은 이거를 DDT를 그쳤기 때문이라고 공격을 하는데 그때도 마지막까지도 DDT를 살포했어요. 그랬는데 이미 내성이 갖춰져서 DDT를 더 넓은 지역에 더 빈번하게 살포했는데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이 사례가 DDT의 효능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 정관용> 1963년까지는 효과가 있었는데 그 이후는 효과가 없어졌다. 그걸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게 스리랑카다? 즉 DDT 효과와 DDT의 문제점, 이게 다 분석이 돼서 입증됐군요.
◆ 고재열>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극히 일부 나라에서 급한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DDT에 대해서는 끝난 것 같고요. 그리고 인간 자체에 대해서도 조산아, 저체중아 출산 또 선천적 이상 이런 데 대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특히 모유에 DDT가 가장 부정적이다, 그런 부분들이 충분히 됐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조사가 1940년대, 1950년대. 이때 DDT가 가장 많이 살포됐던 시기인데 그때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유방암 발병률이 5배가 증가된 것으로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 정관용> 이렇게 참 확실한 증거자료들이 다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보수 성향 연구소가 DDT를 옹호한다? 놀랍네요.
◆ 고재열> 그게 이제 어떻게 보면 그 기업들을 보호했겠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DDT가 기여했기 때문인데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내성이 생기기 전까지는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말라리아나 그런 게 팍팍팍 줄어드니까 저개발 국가에 미국의 증명되는데 DDT가 쓰여서. 그런데 이제 실제 사용해 보니까 외부 영향이 적은 섬나라나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DDT가 박멸에 성공했던 사례로 남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이런 해충은 없애되 환경에도, 토양에도, 인간에게도 해롭지 않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네요. 지금 DDT를 통해서 우리가 케미포비아의 역사를 들여다봤는데 생각할 게 참 많아요.
◆ 고재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또 화학제품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자연산을 많이 찾으시는데. 또 화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암 유발물질, 또 가장 강력한 유독성 물질 이거 다 자연계에 있다. 그래서 자연산은 순수하고 합성물은 순수하지 않다 이렇게 보는 이분법도 조금 잘못이 있다,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결국은 어떻게 우리가 활용하느냐, 화학제품을. 그 문제죠?
◆ 고재열> 그렇습니다. 중요한 화학물들을 보면 처음에는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나쁜 것인 경우도 있고 나쁜 것들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거기에서 잘 쓰면 좋게 쓸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는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과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DDT 발견한 파울 헤르만 뮐러가 1948년에 노벨생리학상을 받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뭔가 이런 화학제품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무엇보다 잘 알고 써야 해요. 잘 모르면서 그냥 제품 허가하고 이러는 거. 이게 문제죠.
◆ 고재열> 그렇습니다. 소비자들도 편리하고 경제적이지만 그 뒤에 나중에 어떤 위험이 밝혀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 케미포비아. 그렇다고 전혀 안 쓸 수도 없는 오늘의 세상. 참 답답합니다. 오늘 키워드로 읽는 세상은 여기까지 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 고재열> 감사합니다.
◇ 정관용> 시사IN의 편집기획팀장 고재열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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