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계단에서 KBS PD협회가 제작거부 출정식을 열었다. 참석자들이 'KBS 망친 고대영 퇴진'이라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KBS PD들이 "방송을 멈춰 방송을 구하겠다"며 오늘(30일) 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추적60분' 결방 등 '정상방송'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KBS PD협회(협회장 류지열)는 30일 오전 7시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이들은 '방송을 멈춰 방송을 구하겠습니다'라는 성명을 내어 '새로운 KBS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9년 무도한 저들은 요구했다. 받아 적는 PD가 되어라, 질문하지 않는 언론이 되어라, 복종하는 KBS가 되어라, 정의에 눈감는 공영방송이 되어라, 그리하여 마침내 KBS의 DNA를 비열하게 바꾸어라! 이제는 그 모든 구체제를 청산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우리의 꿈은 완전히 새로운 KBS를 만드는 것이다. PD 각자의 창의력이 들끓고, 프로그램의 자유 의지가 충만하며, 조직 안의 정의가 공고한 KBS를 만드는 것이다. 권력이 언감생심 넘보거나 탐하지 못하는 강한 공영방송을 만드는 것이다.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가장 완벽한 공영방송, 그것이 우리의 꿈"이라며 "고대영 사장, 물러나십시오"라고 요구했다.
◇ 오늘 '추적60분' 결방… '다큐3일'도 제작 않기로KBS PD협회는 30일 낮 12시 기준으로 제작거부 중인 인원이 총 675명이라고 밝혔다. 평PD 586명과 팀장 등 보직간부 89명을 합친 숫자다. 89명은 팀장·부장 PD들의 95%를 차지한다.
스포츠국은 파견·해외근무 중이거나 국·부장급을 제외한 평PD들 대부분이, 라디오국은 7개 채널 중 의무적으로 방송해야 하는 3개 채널을 뺀 4개 채널 평PD들이 대부분 제작거부에 나서고 있다는 게 KBS PD협회의 설명이다. 현재 KBS 2라디오와 2FM 생방송은 부장급 PD 5명이 커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PD협회에 따르면 예능국은 팀장 8명 전원이 보직을 사퇴했고 드라마국은 팀장 4명 전원 보직 사퇴는 물론 각 드라마 메인PD 1명을 빼고 B팀 연출·조연출 등이 현장에서 철수했다.
KBS PD협회에 따르면 오늘(30일) '추적60분'과 9월 3일 '다큐3일'은 결방된다. (사진=KBS 홈페이지)
KBS PD협회가 밝힌 결방 확정 프로그램은 '추적60분', '세계는 지금', '다큐3일', 'KBS 스포츠 하이라이트', '우리들의 공교시 시즌2: 야자타임' 등이다. '추적60분' 결방에 따라 오늘 오후 11시 10분에는 특선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편성됐고, '다큐3일'은 재방송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드라마국은 2TV '드라마스페셜'과 1TV 저녁 일일드라마를 제외한 모든 드라마가 외주제작이고, 예능국 역시 사전 촬영분과 외주제작, 프리랜서 PD들과의 협업이 많아 당장 결방이 잇따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다수의 평PD들이 속해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의 총파업이 시작되는 오는 9월 4일 이후에야, 보다 정확한 방송 차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신나게 일 좀 하자, 고대영은 집에 가라!"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계단에서 열린 KBS PD협회 제작거부 출정식에는 PD협회원 500여 명이 참석했다. 류지열 협회장은 고대영 사장 퇴진을 촉구하며 제작거부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류 협회장은 "고대영이 왜 나가야 되느냐. 단순하다. 고대영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국민을 우롱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저런 자를 어떻게 공영방송 수장으로 모시겠나. 그 이상 이유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일각에서 주저하고 고민하는 것 잘 알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단호해져야 한다. 타협은 없다"며 "한 명이 제작거부에서 이탈하면 고대영 (임기가) 하루 연장된다. 10명이 이탈하면 10일, 100명이 이탈하면 3개월 연장된다. 500명이 단결하면 고대영이 이번달에 나가고, 600명이 제작거부하면 열흘 안에, 700명이 제작거부하면 내일 나간다. 확실하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류지열 KBS PD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KBS 쿨FM '정재형 문희준의 즐거운 생활'을 담당하는 윤성현 PD는 지난 9년 간 KBS라디오가 어떤 방송을 해 왔는지를 털어놨다.
"뉴스시사채널을 표방했던 1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은 순치되거나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바뀌었다. (중략) 라디오 만드는 데 국민의 의견과 관심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권력자가 심기 불편해하지 않는 방송 만드는 데 급급했다. (중략) 하루하루 아이템 가지고 투쟁하면서 라디오PD들은 지쳐갔다. 회사는 노동조건과 관계없는 파업은 불법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방송 제작하는 프로듀서들에게 자유롭게 비판할 자유, 자유롭게 토론할 자유 이런 것이야말로 필수불가결한 노동조건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우리들의 연출이 가능한 KBS에서 다시 한 번 방송 만들고 싶다. 하루하루 퇴사할까 하며 여러분과 같은 고민을 했지만 아직 이 자리에 있다. 이번 싸움은 꼭 마지막 싸움이 됐으면 좋겠다. KBS를 정상화해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프로 만들고 싶다."
드라마국 31기 한상우 PD는 "제가 입사했을 때가 사실상 KBS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미니시리즈 연출급 드라마PD 13명이 그만뒀다. 9년 동안의 퇴사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며 "정말로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경력 20여 년의 팀장급인 김형준 PD는 "지난 9년 동안 너무 많은 제작거부와 파업을 하면서 제 또래 팀장·부장들은 파업에 대해 전문가가 됐다"면서도 "박근혜가 쫓겨났는데 왜 우리가, 우리 후배들이 길바닥을 또 헤매야 하는가 싶어 너무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을 포함해 총 88명의 PD가 29일 오후 6시부로 보직을 내려놓는 결정을 한 것은, 싸움을 빨리 끝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나게 일 좀 하자, 고대영은 집에 가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오기현 한국PD연합회장은 "이번 제작거부 투쟁이 지난 세월의 오욕을 씻고 PD들의 자존심을 되살리는 씻김굿의 장이 되기 바란다"며 "공영방송의 PD들은 KBS, MBC의 적폐 청산은 물론 우리 방송 전체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주역이란 자부심으로 끝까지 투쟁하여 승리할 것"이라고 PD들을 독려했다.
30일 오후 열린 KBS PD협회 제작거부 출정식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 '제작거부' KBS 기자들, 489명으로 늘어앞서 KBS기자협회는 28일 0시, 본사를 제외한 지역기자들이 모인 KBS전국기자협회는 29일 0시부터 제작거부를 시작했다. 30일 오전 기준, 본사 314명 지역 175명 등 489명의 기자들이 제작거부 중이다.
이 중 김종명 순천방송국장, 유성식 청주방송총국 보도국장을 비롯해 앵커 5명, 부장 4명, 팀장 25명 등 총 36명은 보직을 사퇴한 상태다.
KBS기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1라디오 '뉴스중계탑'이 30분에서 10분으로 축소됐고 '경제투데이'는 재방송 편성됐으며 '아침종합뉴스'는 5분 축소됐다. 내일(31일부터는 '성공예감 김원장입니다'가 삭제되고 9월 1일부터는 '오전 5시뉴스'가 삭제된다.
2라디오의 아침·정오·저녁종합뉴스도 삭제됐다. 1FM 서울시향 연주회(30일)와 백건우 피아노 연주회(31일) 실황 중계도 취소됐다.
TV의 경우, 1TV '뉴스9' 로컬 뉴스가 12분에서 5분으로 단축됐고 '뉴스광장', '930뉴스'의 로컬 뉴스와 '뉴스광장' 경인방송센터 뉴스가 삭제됐다.
2TV에서는 '경제타임', '재난방송센터'가 삭제됐으며, 오는 31일부터 '아침뉴스타임' 진행자는 이영현 기자에서 김재홍 아나운서로 바뀌었다.
9월 3일부터는 1TV '새벽 5시뉴스'와 '마감뉴스'와 '취재파일K'가 결방된다. 1TV '시사기획 창'은 9월 12일까지 2회 방송 뒤 결방될 예정이다.
한편, KBS 경영진은 30일 오후 공식입장을 통해 "취업규칙 제4조에 따라 제작거부를 중단하고 8월 31일 (목) 09시까지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한다. 위 시점 이후 계속된 취업규칙 등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사규를 엄정하게 적용할 것임을 알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