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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통상임금 논란, 언제까지 소송전으로 가야 하나



칼럼

    [논평] 통상임금 논란, 언제까지 소송전으로 가야 하나

    (사진=자료사진)

     

    6년간 끌어온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 1심이 결국 노조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재판부는 31일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사측은 근로자에게 3년치 밀린 임금 4천223억원을 추가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노조측이 청구한 1조926억원의 38.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번 판결에 크게 관심이 쏠린 것은 결과에 따라 기아차가 부담해야 할 액수가 조단위로 크다는 점 외에도 이번 판결의 상징성 때문에 다른 기업의 비슷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말 현재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곳은 115개로 집계되고 있다.

    여기에는 현대차와 두산중공업, LS산전, 효성 등 대기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고 중소기업도 82곳에 이른다.

    통상임금은 근로자가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받는 임금으로, 연장·야간·휴일 등 각종 초과근로수당과 퇴직금 산정에 기초로 쓰인다.

    예를 들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기초임금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초과 근로수당이나 퇴직금도 많아지게 된다.

    이것은 모두 기업의 부담으로 떨어지게 된다.

    노동계 주장이 모두 반영되면 기업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21조~38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전경련, 대한상의,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기업 부담 가중으로 산업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이유이다.

    문제는 통상임금의 정의와 범위가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에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해진 시간급금액, 임금금액, 주급금액, 월급금액 또는 도급금액'이라고 정의된 것이 전부다.

    어디까지가 통상임금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정기상여금 포함여부에 대한 논란이 계속 일었고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노조 쪽에서는 그동안 회사가 통상임금에서 정기상여금을 빼고 계산해 수당 등을 지급한 게 잘못됐으니 차액을 돌려달라고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한 모든 소송에서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는 판례는 지난 2013년 12월 대법원의 판결이다.

    이 판결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이라는 제한장치를 뒀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민법상의 원칙이다.

    대법원은 '건전한 재정이 기업의 생명줄'이라는 명분을 신의칙 적용의 근거로 내세웠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간 합의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무효지만 통상임금을 재산정해 청구하는 것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면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은 신의칙 적용과 관련해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이후 소송에서 재판부에 따라 판결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의 소송에서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린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번 기아차의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기아차측은 노조측의 청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기아차측이 주장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대해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봤다.

    기아차가 지난 2008년부터 2015년 사이에 매년 1조에서 16조원의 이익을 거뒀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근로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을 이제 지급하면서 중대위협이라고 보는 건 적절치 않다"며 "사측의 신의칙 위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기아차는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혔다.

    "청구금액 대비 부담액이 감액되긴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로 실 부담 잠정액이 1조원 내외에 이르고 항소한다고 해도 이를 충담금으로 적립해야 하기 때문에 3분기에 적자전환이 불가피하고 여기에 중국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인한 판매급감으로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전의 다른 소송처럼 2심에서 결과가 얼마든지 뒤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겠다.

    이처럼 수많은 기업이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소송으로 내몰리고, 오락가락하는 판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통상임금 문제가 제기된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선을 긋고 교통정리를 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통상임금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은 정부로서는 책임 방기에 가깝다.

    이 문제가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운 사안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노사와 함께 조속히 합의를 이뤄내고 그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야 말로 정부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상공회의소(암참)조차 "정부는 통상임금의 정의를 명확히 규정하고 한국의 사회, 경제적 구조의 현실에 기반한 법적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의 자성과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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