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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느와르 '브이아이피'는 왜 '여혐' 영화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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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금 느와르 '브이아이피'는 왜 '여혐' 영화가 됐을까

    영화 '브이아이피'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간만에 느와르로 돌아온 박훈정 감독의 영화 '브이아이피'가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박훈정 감독이 2013년 개봉한 영화 '신세계' 속 브로맨스로 여성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논란은 영화 초반 5분간 북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인 장면에서 시작됐다. 영화는 사이코패스 김광일의 무리가 소녀를 납치해 아무 이유 없이 나체로 폭력을 가하고 살해하는 과정을 현실감 넘치게 표현한다. 영화 시사 이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 하더라도 성인 관객들까지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특히 여성 관객들로부터 거센 비판이 일었다.

    한 관객은(트위터 아이디: @plum_****) SNS에 '브이아이피'에 대한 경고를 남기면서 "성폭행 관련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분은 절대 보면 안 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여성은 모두 피해자이고 살인과 강간은 오로지 포르노로 소비된다"고 영화를 비판했다.

    또 다른 관객(아이디: @palin*******)은 "'브이아이피'의 여성에 대한 폭력적 표현이 논란이 된 건 영화를 보고 불쾌감과 혐오감 때문에 실제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겪은 여성들에 의해서였다. 자기가 겪은 일을 다른 여성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감상을 공유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브이아이피'만큼 혹은 그보다 더 여성 캐릭터를 잔혹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영화들은 많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시점에서 '브이아이피'가 뜨거운 논란을 몰고 온 것일까. 한 사회를 뒤흔든 사건은 구성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곤 한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지난해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 또한 그랬다.

    이안 영화평론가는 "이런 하드코어 장르에 대한 수위 논란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다만 '브이아이피'의 해당 장면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 사이에 촉발된 정신적 외상을 건드리는 측면이 있다. 고문받고 죽는 장면을 보면서 심리적인 동일시가 이뤄지고 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재현을 보는 순간에 정신적으로 고문을 받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고 현상을 진단했다.

    '브이아이피'가 충분히 관객에게 해당 장면의 필요성을 설득시키지 못한 점도 논란의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이 평론가는 "만약 서사 진행 과정에서 그 장면이 꼭 필요했다고 설득이 됐다면 이렇게 논란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다른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보면 '브이아이피'는 영화적으로 다르게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이런 재현을 통해 보여준 것에 거부감이 드는 거다. 결국 박훈정 감독은 여성 관객에 대한 배려 없이 여성 캐릭터를 상업적 관객 몰이를 위한 흥행 도구로 썼다"고 설명했다.

    극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력의 여지를 남기는 표현 방식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노골적인 장면을 관객들 앞에 펼쳐놓는 행위 자체가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평론가는 "해당 장면을 보면 어떤 연출의 기술이 느껴지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다. 그걸 그렇게 재현하지 않고도 공포와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극사실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없애면서 '다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날 것 그대로 들이미는 행위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 크게 뒤떨어진 영화계 내 여성인권 감수성 반증

    박훈정 감독 스스로가 인터뷰에서 인정한 것처럼 그의 영화에는 여성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나 이해 자체가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신세계'부터 '브이아이피'까지 박훈정 감독은 꾸준히 남성들만의 세계를 그려왔다.

    대다수 남성 중심 영화가 그렇듯이 그 세계에서 여성들은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한 도구적 존재에 그친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문제시되지 않고 그대로 영화화돼 대중 앞에 공개된 것만으로 이미 영화계 내 크게 뒤떨어진
    여성 인권 감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희아 대중문화평론가는 "'브이아이피'는 남성들의 서사를 만들기 위해서 여성을 잔혹하게 살인해 개연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여성 관객이 좋아할 만한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에 기용하고도 어떤 면을 여성 관객들에게 어필해야 했는지를 전혀 몰랐다는 느낌"이라며 "여성 관객들의 힘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성이라는 존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전혀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미 여성 캐릭터들이 이렇게 관습적으로 소비돼 온 상황에서는 남성 감독들이나 배우 또한 어떠한 문제 의식을 갖기 어렵다. 왜곡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접근법을 고민해 볼 계기 자체가 없는 것이다.

    박 평론가는 "아마 영화 시장에서 여성에 대한 접근법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 됐다면 이 시나리오의 해당 장면에 반발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이게 바로 영화계의 현실이다. 젊은 배우들에게도 이미 이런 문제를 고민할 여지는 제거돼 있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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