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도 험난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뿌리부터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부탁합니다."
학부모 대표 김수정 씨가 마이크를 잡자 선생님도, 다른 학부모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의 옹알대는 소리와 노랫소리가 겹쳐 밝고 활기차던 입학식 분위기가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 영·유아 특수학교인 효정학교가 지난 1일 문을 열었다.
서울에 특수학교가 생긴 것은 2002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서울 내 30번째 특수학교다.
앞으로 이곳에서 만 5세 이하 아동 26명이 수업을 받게 된다.
효정학교의 출발은 한빛맹학교에 만들려던 영·유아반이다.
한빛맹학교에는 유치원과 초·중·고등부, 직업훈련을 위한 전문반이 갖춰져 있지만 만 3세 이하가 다닐 수 있는 영·유아반은 없었다.
시각장애 발생률은 3% 미만으로 낮기 때문에 국내 특수학교 대부분은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한 학부모는 "여기저기를 다녀봐도 우리 아이를 받아줄 수 없다는 곳만 있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특수교육의 '사각지대'인 시각장애 영유아 반을 더 늘려달라는 학부모들의 요청이 쇄도하자 한빛맹학교는 1개반을 증설하려다 걸림돌을 만났다.
특수학교시설·설비기준령에 따라 학급당 부지 100㎡를 추가로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양수 한빛맹학교 교장(한빛재단 이사장)은 "서울에서 추가로 땅을 매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 사립 특수학교의 학급 증설은 사실상 막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일반학교에는 없고 특수학교에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김 교장과 학부모들이 정부에 법 개정을 요구했으나 좌절한 뒤 탄생한 게 효정학교다. 아예 따로 학교를 세우자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유치부만 운영하는 학교는 학급을 늘릴 때 추가 부지 확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김 교장은 "기존 유치부 2개반과 신설 영·유아반 1개로 총 3개반을 꾸리자던 계획이 7개반으로 확장됐다"며 "영·유아반을 꼭 만들어주겠다는 학부모들과의 약속을 지키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특수학교가 축복받으며 개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터에 특수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은 몇 년째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7월엔 개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마련한 지역주민 토론회가 고성이 오가는 소동 끝에 파행으로 끝나기도 했다. 지역주민들은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가 아닌 국립한방의료원이 들어서길 바란다.
한빛맹학교의 경우 1971년 개교한 이후 지역주민들과 오랜 기간 유대 관계를 쌓아온 덕분에 인근에 땅을 매입해 학교 건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대 목소리가 거의 없었다.
일단 재단이 땅을 사자 서울마주협회, 고려대경제인회,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서 도움의 손길이 잇따랐다.
입학식에서 제일 큰 언니·오빠인 만 5세 아동들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어린이로 자라겠습니다"는 입학 선서를 또박또박 읽었다.
엄마 품에 꼭 붙어있다가도 식이 끝나자 선생님 손을 잡고 의젓하게 교실로 들어갔다.
효정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제주에서, 경북에서, 충북 진천에서 서울로 모였다고 한다.
의정부에 산다는 학부모 김수정 씨는 "집 바로 앞에 특수학교가 있는 데도 시각장애 아동을 가르친 경험이 없어 입학이 어렵다는 얘길 들었다"며 "시각장애 아동도 당당하게 교육받고, 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양수 교장은 "독립적으로 시각장애 전문 영유아 학교를 만드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새 지평을 연다고 생각한다"며 "학급 증설은 실패로 끝났지만 결국 더 큰 선물이 생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