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이아이피'에서 북한 최고위층 자제이자 연쇄살인마 김광일 역을 연기한 배우 이종석.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현장에서 감독과 친하게 지내서 유일하게 약과를 얻어 먹었다는 청년의 얼굴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인 '브이아이피'를 보고 싶다는 팬의 SNS 쪽지에는 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보라는 답장을 해줬단다.
비록 약간은 조심스러워졌을지라도,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종석은 자신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즐겁게 공유하는 배우들 중 하나다. 그의 감정 표현은 엉뚱하리만치 진솔하고 꾸밈이 없다. 마치 연기할 때처럼 자신의 말을 듣는 상대에게 정보를 넘어 감정까지 전달한다.
이종석 또래의 배우들이 대다수 '구설수' 때문에 이렇게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그의 선택은 남다른 측면이 있다. 자신의 연기를 매일 캠코더로 찍어서 모니터링하는 노력파, '관상'부터 최근의 슬럼프까지 가감없이 되짚어 나가는 솔직함, 연기하다가 이해가 안되면 귀와 얼굴이 달아오르는 배우.
이 모든 것이 결국 지금의 이종석을 이루는 다양한 얼굴들이다. 다음은 이어지는 이종석과의 일문일답.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북한 최고위층 자제이자 연쇄살인마 김광일 역을 연기한 배우 이종석.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박훈정 감독이 현장에서 굉장히 아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현장에서 박훈정 감독에게는 의지를 많이 했었나.- 감독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그래서 감독님 간식인 수제 약과도 배우 중 유일하게 나만 3개나 얻어 먹었다. (웃음) 감독님이 굉장히 '마초남'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영민하고 샤프한 이미지다. 내가 '츤데레'(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대하지만 사실은 잘 챙겨주는 성격을 이르는 신조어) 매력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감독님이 딱 그렇다. 요즘에 살 빠져서 얼굴도 잘 생겨졌다. (웃음)
▶ 박훈정 감독은 본인 설계 속에서는 배우들 자유에 온전히 맡기는 스타일인데, 특별히 원하는 디렉션이 있었다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원래 연기하는 걸 따로 모니터링 하기 위해 개인 캠코더로 촬영을 한다. 그래서 다시 보면서 반성하고 그런다. 처음에는 감독님이 그걸 그냥 뒀는데 나중에는 못하게 했다. '나한테만 뭐라고 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고민을 너무 많이 하는 걸 알아서 못하게 한 거였다. 사실 너무 편했다. 원래 인물을 설계하고 계획해서 연기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머리가 덜 복잡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보려고 한다. 좀 더 자유로워지고, 상대방이 주는 대사를 그 때 그 순간에 받아서하는 재미가 있더라. 계산이나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재밌었다. 이래서 선배들과 작업을 해야 하는 것 같다.
▶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등 스타성이나 연기력으로 유명한 선배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관상' 때도 영화계를 대표하는 선배들과 작업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어떤 느낌이었나.- 일례로 김명민 선배가 담배를 피면서 대사를 하는 것과 내가 하는 건 연기 경력에 따라서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동건 선배가 걸어오는 뒷모습도
굉장히 멋있었는데 내가 했으면 달랐을 거다. 외적인 모습이 일단 다르기 때문에 연기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서 느와르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영화 '브이아이피'에서 북한 최고위층 자제이자 연쇄살인마 김광일 역을 연기한 배우 이종석.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관상' 때는 지금보다 더 연기 경력이 없었을 때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더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한데, 어땠는지 궁금하고 선배 배우들과 함께 하는 장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려달라.- 그 때는 선배님들한테 감히 여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원래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다. 지켜보면서 그냥 '저렇게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로 한 작품씩 해나가면서 성장을 했는데 정체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성장이 멈췄다고 생각한 순간에 선배들과 함께 작품을 하고 나면 다시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관상' 때는 연기적으로 많이 부족했고, 내가 중간에 대사를 하면 템포가 확 떨어졌었다. 그 이후에 자괴감에 빠져서 괴로워했었다. (웃음) 이번에도 그 때 기억이 있으니까 불안했었다. 그래도 '브이아이피'에서는 빈말로 잘했다고 하는 선배님들이 아닌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좀 놓였다.
▶ 또래 남자 배우들에 비해 쉼없이 드라마에서 만났다는 느낌이 강한데 정체기를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궁금하다.
- 지금에서야 이야기할 수 있는 건데 '닥터 이방인'이 끝난 후에 슬럼프가 심하게 왔다. 1~5회가 나가고 나서는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기본적인 내 성향과 자아가 캐릭터가 나아갈 방향과 부딪치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캐릭터가 원하는대로 묘사하고, 목소리는 냈는데 속으로는 괴롭기 시작했다. 굉장히 힘들었고, 쉬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 쉬면 공백이 길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결국 '너의 목소리가 들려' 팀과 같은 드라마를 한 편 더하고, 극복하지 못한 채로 1년 공백을 가졌다.
▶ 본인 생각과 캐릭터가 맞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우면 힘들어하는 타입인 것 같다. 그런게 현장에서 티가 나는 순간도 있나.- 원래 대본은 전부 허구인데 그냥 혼자 그게 너무 거짓말이라고 인식하고 나면 혼자
얼굴이나 귀가 빨개진다. 밖으로 드러나니까 더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방송에 내보내기 어려울 정도면 다시 한 번 가자고 말씀을 드린다. 아마 이번 영화에서도 영어 대사를 할 때 귀가 빨개져 있을 거다. 오히려 감정 연기할 때는 괜찮은데 잘생긴 척하면서 상황을 정리해주는 대사를 하거나 아무 감정도 필요 없이 가벼운 일상 연기를 할때 더 그런 것 같다.
▶ 팬 연령대가 상당히 어린 편이다. '브이아이피'를 보기 어려운 팬들도 많을텐데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한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이야기해달라.- 아무래도 어린 팬들이 보기가 어려운 것은 맞다. 얼마 전에 SNS에 쪽지가 왔다. '오빠, 저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요. 보려면 볼 수 있는데 어떡하죠'라는 내용이었다. 원래 내가 그러지 않는데 그 날은 이야기를 해줘야 될 거 같아서 쪽지를 보냈다. '응원해줘서 너무 너무 고맙고, 나중에 어른돼서 봐 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