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발행된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노보 252호 (사진=SBS노보 캡처)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윤창현, 이하 SBS본부)가 5일 노보를 내어 윤세영 SBS미디어홀딩스 회장의 '보도지침' 내용을 폭로했다. 노조에 따르면 윤 회장은 "대통령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를 좀 도와줘야 한다" 등의 발언을 보도본부 간부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하기도 했다.
◇ 큰 방향성부터 클로징 멘트까지 개입
SBS본부는 보도본부 구성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2015년 초 윤 회장이 SBS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보도지침이 노골화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을 도우라"는 사실상의 보도지침이 담긴 'SBS 뉴스 혁신'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10일 보도본부 부장 보직자 오찬 때 등장한 이 문서는 비서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이 문서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며, 심각한 안보 환경을 직시하고 여론을 선도한다 △SBS의 생존과 발전에 보도본부도 주역이 돼야 한다(모든 부서에서 협찬과 정부광고 유치에 적극 나서라) 등이 공유가치로, △클로징과 앵커멘트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잘 모르면서 시니컬한 클로징을 하는 것은 비신사적 행위) 등이 행동규칙으로 나타나 있다.
SBS본부는 '보도지침'의 공유가치에 대해 "박근혜 정권이 정치적 반대 세력이나 비판적 시민사회, 노동운동 진영을 '종북좌파'로 여론몰이하는 과정에서 단골로 동원됐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견제, 정치적 중립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기자들에게 공공연히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광고를 따오라는 어처구니없는 지시"라고 비판했다.
클로징 멘트 언급에 대해서는 "윤 회장이 보도본부 기사 한 줄, 앵커의 클로징 멘트까지 개입해 통제한 명백한 물증"이라며 "당시 SBS 일부 앵커들이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앵커멘트로 사회적 관심을 끌자 이에 부담을 느낀 윤 회장이 앵커 멘트를 통한 박근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비판 없는 청와대 보도, 긍정적 의미 부각한 위안부 합의 보도
JTBC '태블릿PC' 특종이 나왔던 지난해 10월 24일, SBS '8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한 개헌 관련 보도를 톱부터 11꼭지 배치했다. (사진=SBS뉴스 홈페이지 캡처)
SBS본부는 "보도본부 간부들은 인사권을 포함한 SBS의 모든 권한을 틀어쥔 윤 회장의 말을 성경말씀처럼 여기고 말단기자들에게까지 이 지침을 전면적이고 무차별적으로 강요한다. 이때부터 SBS 보도에 그나마 남아있던 신뢰는 완전히 파산 지경으로 추락한다"고 말했다.
SBS본부는 청와대 관련 무비판적 보도를 그 근거로 들었다. SBS본부가 윤 회장 복귀 시점인 2015년 1월 1일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국정농단 사태 관련 JTBC 태블릿PC 보도가 나온 지난해 10월 24일까지 메인뉴스 '8뉴스'를 전수조사한 결과, 박 대통령과 청와대 관련 보도는 662일 간 532건 나갔다.
SBS본부는 "청와대 비판은 실종됐고 단순 동정보도와 일방적인 박근혜 입장 전달로 점철됐다"며 "거의 매일 1꼭지 이상씩 '땡박뉴스'를 쏟아냈음이 통계적으로 입증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SBS본부는 태블릿PC 단독보도가 나간 지난해 10월 24일에도 '8뉴스'에는 박 대통령이 주장한 개헌 제안이 11꼭지 보도된 것, 보도국 수뇌부가 이전에도 '최순실 특별취재팀 구성' 요구를 지속적으로 묵살해 온 것 등을 "박근혜 정권을 도우라"는 윤 회장의 보도지침을 이행한 사례로 들었다.
SBS본부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타결 보도도 윤 회장의 지시로 노골적인 '정부 띄우기' 보도가 됐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를 출고한 복수 정치부 조합원들의 항의에, 당시 정치부장이 "윤 회장이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로 '합의가 잘 된 것 아니냐'며 보도방향을 제시했고, 보도국장은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해설성 리포트 제작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타결된 2015년 12월 28일 SBS '8뉴스'에 나간 보도들 (사진=SBS '8뉴스' 캡처)
이날 '8뉴스'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 보도 9꼭지가 나갔다. [위안부 타결 한일관계 새 돌파구 열었다](1번째), [새 출발하는 한일, 더 큰 미래 열자](9번째) 등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SBS본부는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한국이 동북아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거나 투자와 한류 활성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아무런 근거 없이 합의의 부수적 효과를 부풀려 포장하는 데 급급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같은 날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 톱은 각각 [위안부 협상 타결…일본 정부 "책임 통감"], [위안부 문제 합의‥ "책임 통감"]으로 SBS 보도와 결을 달리 했다.
◇ 사측 "SBS 발전 위한 건강한 토론 과정" 해명또한 SBS본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지난해 4월 4일 보도본부 부장단 오찬 자리에서 "대통령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를 좀 도와줘야 한다", "나는 이런 말을 해도 된다"고 했고, 그해 9월에는 보도본부 일부 간부들에게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SBS본부는 이같은 '보도지침'이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윤 회장이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소유-경영 분리 약속을 내팽개치고 사익을 앞세운 지침을 전 조직에 강요했다면서, '미디어법 개정 과정 당시의 보도지침'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2009년 당시 윤 회장은 직원 조회 등에서 "미디어법(개정)은 SBS에도 산업적으로 도움이 된다. 반대하지 말라"는 뜻을 전했고, SBS는 미디어법 개정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SBS는 이에 대해 "노조의 주장은 SBS 발전을 위한 건강한 토론의 과정이라 생각한다"며 "더욱 더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윤창현 본부장은 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사측은 건강한 토론 과정이라고 하지만, (문건이 존재한다는) 사실관계를 전혀 부인하지 못한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대주주에 의해 벌어졌던 보도 통제·개입·지침은 전부 심각한 실정법(방송법) 위반이다. 분명히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본부장은 "구성원들이 방송 독립성을 마음껏 구현할 수 없는 환경과 조건을 끊임없이 강요받는다면 그건 심각한 근로조건 침해이자 공적 책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없는 부당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인적·제도적·구조적 틀을 완전히 새롭게 하지 않으면 SBS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밝혔다.
SBS본부는 지난달 22일 윤창현 본부장 직권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방송사유화 실태조사 특별위원회'를 설치, 조사된 방송사유화 사례를 노보를 통해 밝히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가 윤 회장으로부터 '4대강 사업 관련 부정적 취재보도를 하지 말 것'이라는 압박성 발언을 들었고, 그럼에도 4대강 사업 비판기사를 꾸준히 발제하자 논설위원실로 발령났다고 폭로한 바 있다.
SBS기자협회는 5일 성명을 내어 "SBS의 뉴스 제작 시스템이 그동안 무너져 있었다는 게 확인됐다"며 "보도의 독립성은 지켜져야 한다. 방송사가 아닌 언론사로서의 가치를 지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냉정한 뉴스 소비 환경에서 SBS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