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넉 달 가까이 멈춰 있던 금융권 주요 직책들에 대한 인사가 금융감독원장 인선으로 본격 시작될 전망이다.
그동안 금융감독원장 자리를 비롯해 주요 금융 기관장 후보로 많은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데 비춰 보면 인사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엄격한 인사 기준을 공약한 데 따라 후보 검증 과정이 상대적으로 길어졌고, "(낙하산 인사나 보은 인사를 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통령이 약속한데다 금융 적폐 청산이라는 과제에 어울리는 인사를 찾아야 하고, 시민단체나 각 금융기관 노동조합의 요구, 여론의 향배 등을 살피다 보니 과거 정권에 비해 상당히 늦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어쨋든 금융위원회와 손발을 맞춰야 할 금융감독원장에 관료 출신이 아닌 최흥식 전 하나금융지주 사장이 낙점되면서 시작된 인사 태풍이 과연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지 금융계 전반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금감원장에 최 전 사장이 내정된 배경은 그가 지난 2000년 다른 학자들과 함께 금융감독기구 개편안을 마련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 정책과 감독, 금융소비자 보호의 세 기능을 각각 분리하겠다는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를 최 내정자는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강력한 천거가 있었다는 소문이 금융계에 돌고 있긴 하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나 금융당국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이 '금융 적폐'로 '관치 금융'을 지적하면서 고위 경제 관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온 데 따라 최 전 사장이 낙점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의 후속 인사에서 통상적으로 경제 관료들이 차지해온 주요 금융기관장 자리들에 의외의 인물이 또 등장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는 정찬우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과 함께 금융계의 대표적 '친박' 인사로 지목돼온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물러나고 동명이인인 이동걸 전 동국대 초빙 교수가 그 자리에 임명될 지 주목된다.
이동걸 교수는 참여 정부 시절의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부위원장을 지냈고 경제학자로는 진보적 또는 개혁적 성향을 가진 인사로 평가받는다.
산업은행 노동조합이 최근 이동걸 교수 내정설과 관련해 "전형적인 특제 낙하산 인사"라는 성명을 냈으나 실제 이 노조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 원론적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며 이동걸 교수 개인에 대해 노조가 공식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또 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에 대해선 "기업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해낸 공은 있지만 2012년 대선 당시 금융계 인사를 모아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 그 자리에 오른 것 아니냐"며 "정권이 교체됐으니 시기가 문제일 뿐 퇴진은 기정 사실로 내부에선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그러나 금융 적폐 청산은 기관장을 민간 출신으로만 채운다고 성공이 담보되는 일도 아니어서 과거 정권에서 관치 금융의 핵심으로 지목받지 않는 경제 관료들은 여전히 하마평에 오르 내리고 있다.
그동안 금감원장 후보로는 꾸준히 이름이 나오던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은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기재부 관료 출신인 은성수 한국투자공사 사장, 퇴임한 금융위원회 정은보 전 부위원장, 금감원 서태종 수석 부원장은 수출입은행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내부에선 원장이 내정된 데 따라 임원에 해당하는 5명의 부원장과 9명의 부원장보가 일괄 사의를 표명하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물러난 뒤 다른 금융회사들로 자리를 옮길 수 있어서 금융권 연쇄 인사의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도 1급들이 자리 이동을 하면서 역시 연쇄 인사의 한 축으로 작동할 수 있다.
공석인 사무처장에는 손병두 금감위 상임 위원이 유력하고, 유광열 증선위 상임위원이 금감원 수석 부원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금융위에선 도규상 전 금융정책국장이 기획재정부의 핵심 자리인 경제정책국장으로 옮길 예정이어서 눈길을 모은다.
정부 부처내 국장급 간부의 인사 교류는 참여 정부 시절 인사 혁신을 위해 도입된 제도였으나 최근 몇 년간은 사실상 유명무실했기 때문에 정부내 인사혁신제도가 다시 활성화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금융계 일각에선 금융감독기구 개편이 추진되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이 합쳐져야 하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인사교류를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