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 등 지도부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날 표결된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재석 293명 중 찬성 145표, 반대 145표, 기권 1표, 무효 2표로 출석 인원의 과반(147석)을 넘기지 못해 부결 처리됐다. (사진=윤창원 기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멘붕'에 빠졌다.
민주당은 김 후보자 부결 사태에 격분하며 비난의 화살을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에 퍼부었다.
추미애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헌법재판소장 인준 부결은 '탄핵 불복'이고, '정권교체 불인정'"이라며 "탄핵을 완수한 국민이 바라는 적폐청산을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함께 짓밟았다"고 두 정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박완주 수석대변인도 야권을 맹비난했다. 그는 논평을 통해 "자유한국당의 몽니와 바른정당의 공조, 국민의당의 야합에 따라 인준안이 부결됐다"고 했다.
이어 한국당을 향해 "이것은 명백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고, 정권교체에 대한 불복의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국회에 잔존해 있는 적폐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을 향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박 수석대변인은 "한국당과 보조를 맞춘 국민의당도 적폐연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엊그제 국민의당이 2박 3일 호남투어 일정을 마친 결과가 결국 헌재소장 부결이었다는 것에 동의할 호남 민심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의 책임을 야권으로 떠넘기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사실상 '멘붕'에 빠진 모양새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청와대는 다시 새로운 인물을 후보자로 지목하고 다시 청문절차를 거치는 등 문재인 정부에 적잖은 부담을 줬기 때문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민주당의 한 핵심 의원은 "정말 부결될 줄 몰랐다.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이 협조해주기로 했고, 이에 대해서 여러 경로를 통해 두세 번 이상 확인을 했었다"며 당황스러워했다.
민주당이 성급하게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도록 한 배경에는 200일 넘게 헌법재판소장직이 더이상 공석으로 놔둘 수 없다는 판단과 김 후보자가 점차 지치면서 자진 사퇴 분위기를 청와대와 민주당에 전달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원내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충분한 가운데 우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열린 대책회의에서 먼저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원내대표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면서 자진사퇴의 뜻을 밝혔다. 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의 '일자리 추경안' 처리 지연 사태에 이번 일까지 겹치자, 책임을 느끼고 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단 회의에 참석했던 의원들은 우 원내대표의 자진사퇴를 만류하면서 일단 향후 대책마련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로 '여소야대'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민주당 의원 120명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당과도 충분히 협의했다"면서 "국민께 송구스러운 마음이지만, 이번 일은 구조적인 문제이지 당의 전략적 판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원내 지도부가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내부 분열과 갈등보다는 힘을 합쳐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합심(合心)은 과거 당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대표직을 내려놓았다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겪었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5년 열린우리당 시절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법안 처리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이후 당은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민주당의 한 원외 인사는 "과거 내분이나 지도부 공백 상태로 인해 당이 곤란한 상황에 빠졌던 아픔이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충분히 공유된 것 같다"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대외적으로 갈등을 잠재우면서 조용히 대책을 마련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2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소속 의원들과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마련을 위한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