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갈 길이 만만치 않다. 현장에서는 권고안이 엄격히 제한한 채증이 여전하고 변호인 참여 활성화 등의 조치에서도 미흡한 점이 발견된다.
1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항의 방문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10개 개신교 단체 소속 20명은 대치한 경찰들로부터 채증을 당했다.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이들은 지난 7일 경찰이 사드 반입에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기도소를 강제 철거했다며 기자회견과 기도회의 형식을 빌어 경찰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했을 뿐이다.
폭력행위가 없는 기자회견과 기도회 형식의 집회였지만, 경찰은 채증 카메라를 동원했다.
줄곧 비판의 대상이었던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은 지난 7일 경찰이 집회시위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취지의 권고를 수용하기로 밝히면서 변화가 기대되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평화적 집회에 채증 카메라를 동원한 데 대해 경찰은 "경찰청이 국가 주요 시설인데, 안내실을 통하지 않고 정문을 통해 서한을 전달한다고 하니 채증이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도 '평화적 집회'였다고 인정한 해당 기자회견에, 채증의 근거를 제공할 마땅한 명분은 없다. 더욱이 경찰이 수용 의사를 밝힌 경찰개혁위의 권고안은 ①과격한 폭력행위 등이 임박했거나 ②폭력 등 불법행위가 있을 때 ③범죄수사 목적의 증거보전 필요성·긴급성이 있는 경우에만 채증을 하도록 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권고안이 나오기 전에도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집회와 시위에 대응해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채증을 당한 종교인들의 경우를 보면, 경찰은 권고안이 엄격히 규정한 조건을 명백히 무시했다. 경찰은 "아직 권고안의 세부 이행사항이 나오지 않다보니 현장이 완벽히 통제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10월쯤 관련 내용이 정리되고 일선에서 숙지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인권친화적 수사환경 조성을 위한 변호인 참여 실질화 조치 면에서 역시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변호인 참여 실질화 시범운영 지침'을 보면, 이미 운영되고 있는 변호인 참여 환경에서 진전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 현장 변호사들의 의견이다.
경찰서의 변호인 참여 안내문
당장 변호인은 경찰관과 조사 참여 일시·장소를 '협의할 수 있다'고 안내된 부분은 신문일시를 '협의해야 한다'고 정한 경찰청 훈령보다 후퇴한 표현이다. 또 조사사항을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지침 전달의 시차 등으로 노트북 사용이 제한되는 경우가 있다. 간단한 메모만을 허락한 대통령령과의 충돌도 조정해야 한다.
특히 일부 경찰서의 경우 변호인에게 차량번호와 소지품 목록을 적게하고 심지어 개인정보수집에 대한 동의까지 받고 있어 문제다. 이는 아예 근거 자체가 없다. 최근 경찰서에 다녀온 한 변호인은 "신분증을 맡기는 정도면 되는데, 굳이 불필요한 정보까지 요구하는 절차"라고 말했다.
경찰개혁위 양홍석 인권개혁분과 위원은 "경찰이 개혁 요구에 못이겨 권고안의 내용을 형식적으로만 수용하겠다고 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문경란 분과위원장은 "조직 전체에 권고안의 취지와 구체적 내용이 전달되는 과정이라고 보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의 참여를 활성화하겠다고 천명한 시점에, 참여 변호인의 개인정보 요구까지 요구하는 일선 경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