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이모(35)씨는 서울 양재역 사거리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 이씨와 피해자는 각각 보험사를 불렀다. 한 달 뒤 피해자는 보험사를 통해 이씨에게 합의금 150만 원을 제안했다.
이씨가 보험사에 물어보니, 피해자는 한의원과 한방병원 등 두 세 곳을 간 뒤 각종 진료를 해주는 한방병원에서 어혈 푸는 약 한 달치를 짓고 MRI(자기공명영상)와 한방 침 등을 맞은 금액이라고 전해들었다.
이씨는 "상대방 차는 물론 우리 차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는데 특정 한방병원에 가서 각종 치료를 다 받았다고 하더라"면서 "한방병원에서 과다 치료를 한 것으로 생각돼 어이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사진=보험개발원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한방진료 현황 분석 및 시사점')
이씨가 겪은 사례처럼 최근 한방병원 등이 자동차 사고 환자를 대상으로 과잉진료를 부추겨 전체 자동차보험료를 상승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방물리요법의 진료비가 병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험개발원이 손해보험사 11개사의 자동차보험 대인배상 통계를 분석한 결과, 자동차보험의 총 진료비는 지난해 1조 3천 54억원으로 전년대비 8.0% 증가했다. 최근 자동차보험 대인배상 사고율이 감소했는데도 진료비가 지속적으로 오른 것이다. 보험개발원은 "교통사고로 인해 많이 발생하는 목뼈(경추), 허리뼈(요추), 염좌 등 경상환자의 한방진료 이용이 증가됐기 때문"이라고 봤다.
또 양방진료 후 추가로 한방진료를 받는 등의 진료행위도 늘어나, 경상환자의 양·한방 의료기관 이중진료 비중도 2013년 9.0%에서 지난해 20.2%로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경상환자의 한방진료비는 3천 24억원으로 전년대비 34.3% 증가했다. 이는 전체 경상환자의 진료비 5천 4백 54억원의 55.4%를 차지하는 수치다. 양방진료비도 넘어섰다.
진료항목별로 살펴보면, 첩약이 29.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침술이 15.5%, 진찰료가 11.4%, 추나요법이 7.8%순이다. 특히 전년대비 진료비 비중이 가장 크게 증가한 항목은 '한방물리요법'으로 나타났다. 한방물리요법은 경피전기자극요법, 경근간섭저주파요법 등을 가리킨다. 이 한방물리요법이 병·의원별 진료비 편차가 가장 컸다. 첩약은 4.5배, 추나요법은 17.2배, 약침술은 15.5배 차이가 났는데 한방물리요법은 125.7배나 차이가 났다.
한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이 실손의료보험과 달리 본인 부담액이 없다보니,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진료항목별로 설정된 최대 보장금액까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이런 점을 한방병원 등이 이용해 자동차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과잉 진료를 하는 사례가 많다"고 토로했다.
보험개발원은 "최근의 진료비 증가가 경상환자의 한방 진료비 급증에 기인하고 있다"며 "환자의 충분한 진료는 보장하되 불필요한 진료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상환자의 한방진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 당국과 유관기관 등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표준 진료 지침을 마련해 한방 진료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