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SBS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 의장직에서 사임한 윤세영 SBS 회장.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지난 6일 대의원회의에서 'SBS를 시청자와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한 총력 투쟁'을 결의한 상태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노보)
"저는 오늘, SBS의 제2의 도약을 염원하며, SBS 회장과 SBS 미디어홀딩스 의장직을 사임하고 소유와 경영의 완전분리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윤석민 의장도 SBS 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하겠습니다. 또한 SBS 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 SBS 콘텐츠 허브와 SBS 플러스의 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도 모두 사임하고, 대주주로서 지주회사인 SBS 미디어홀딩스 비상무 이사 직위만 유지하겠습니다. 이런 조치는 대주주가 향후 SBS 방송, 경영과 관련하여 일체의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자 명실상부하게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분리하는 제도적인 완결입니다. 이로써 SBS 대주주는 상법에 따른 이사 임면권만 행사하고 경영은 SBS 이사회에 위임하여 독립적인 책임경영을 수행하도록 할 것입니다."_ 9월 11일 윤세영 SBS 회장 담화문"SBS를 창업하시고 이끌어 오신 윤세영 회장님의 갑작스런 퇴임을 접하고 비통한 마음과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음의 후속 조치를 발표합니다. 윤석민 의장도 소유경영 분리를 분명히 하고,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방송사로 거듭나길 바라는 여러분의 염원에 부응하기 위해, 사임과 동시에 SBS와 SBS 프리즘타워 집무실을 없애고, 사무실이나 회의실로 전환하여 사원들의 부족한 업무공간을 확충할 것과 비서팀도 해체하여 현업으로 복귀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_ 9월 11일 박정훈 SBS 사장 담화문
윤세영 SBS 회장이 또 다시 '사임'했다. "소유와 경영의 완전분리"를 말했다. 윤 회장이 '박근혜 정권을 도우라'는 기조 아래 SBS의 보도·제작자율성을 침해해왔다는 노조의 폭로 이후 6일 만이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7. 9. 11. '회장님 보도지침'에 들끓는 SBS… 노조, '끝장투쟁' 선언)그러나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윤창현, 이하 SBS본부)는 대주주의 사의표명이 '껍데기 선언'에 불과하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박정훈 사장을 비롯해 방송사유화와 경영농단 책임자들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 2004년부터 계속된 선언… "구성원 기만하는 것"SBS본부가 윤 회장의 사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몇 차례나 반복됐기 때문이다. '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이사 임면권을 실제로 누가 행사할 것인지' 여부가 '소유-경영 분리'의 핵심인데, 이번 윤 회장 사임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다는 의미다.
SBS본부가 지난 13일 발행한 노보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지난 2004년 2월 20일에도 "대주주는 상법과 관련 법규에서 부여한 권한에 따라 이사회를 중심으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이것을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해석해도 좋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SBS본부는 윤 회장이 사퇴 선언 1년 후 물러났지만 SBS이사회 의장을 맡아 그 뒤로도 SBS 경영을 좌우했다고 지적했다.
2004년 SBS 재허가 조건으로 '소유-경영 분리'가 제시되자, 윤 회장은 2008년 3월 SBS를 자회사로 한 SBS 미디어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출범시켰다. 대주주가 홀딩스의 지분을 갖지만 SBS는 전문경영인이 책임지고 양질의 콘텐츠 생산에 전념하겠다는 취지였다.
SBS본부는 "불과 1년 뒤 윤석민 부회장이 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해 실권을 장악하면서 '경영 세습'은 확실하게 진행됐고 홀딩스를 통한 SBS의 방송과 경영에 대한 개입과 간섭은 노골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윤 회장은 2011년 신년사에서도 "새로운 리더십을 위해 저는 2월 주총 이후 SBS 회장과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앞으로 SBS 그룹의 명예회장으로서 그룹 발전의 조력자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SBS본부는 윤 회장이 그로부터 3년 뒤인 2014년 11월 '명예'자를 떼고 복귀한 점, 지난해 3월에는 "제너럴리스트로서 경영의 최종 책임을 지고자 SBS 그룹 지주회사의 이사회 의장에 취임한다"며 과거 약속한 '소유와 경영 분리'를 완전 폐기한 점을 비판했다.
SBS본부는 "윤세영 회장과 윤석민 부회장의 사퇴를 선의로 바라볼 수 없는 건 바로 SBS의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상법에 따른 이사 임면권만 행사'한다는 담화문의 조건은 지주회사 출범 이후 불법적으로 SBS를 지배해왔던 걸 상황이 잠잠해지면 다시 되풀이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의원 투쟁 결의문에 담았듯 '소유와 경영의 완전하고 실질적이며 불가역적인 인적·제도적 분리'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 노조는 왜 박정훈 사장을 '사퇴 1순위'로 꼽았나SBS본부는 나아가 박정훈 현 사장의 퇴진도 요구하고 있다. 박 회장이 지난 몇 년 간 제작본부장, 부사장, 사장으로서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SBS와 구성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데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다.
SBS본부는 13일 발행된 노보에서 "태영건설 지분 승계 이후 태영의 경영 위기가 발생하자 SBS의 인적·물적 자원을 전방위로 동원해 사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주주와 경영진의 탈법적 행위가 SBS를 휘감았다"며 '인제스피디움 띄우기'와 '광명역세권 데시앙 분양사업' 등을 예로 들었다.
SBS본부는 태영건설이 경영권을 인수한 모터 스포츠 시설 인제스피디움의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SBS 프로그램이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관련 프로그램들의 총괄 책임자는 제작본부장이었던 박정훈 현 사장이라는 게 핵심이다.
윤 회장이 2015년 6월 '자동차 3천만 대 시대를 맞아 모터 스포츠 대중화' 기치를 내걸고 인제스피디움을 배경으로 한 각종 프로그램 제작·편성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모닝와이드', '런닝맨' 등에서 2015년 하반기에만 20차례나 인제스피디움이 촬영 장소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더 레이서', '더 랠리스트' 등 모터 스포츠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탄생한 시기도 이 때였다.
SBS본부는 또한 '더 레이서'가 '스타킹'의 3배가 넘는 회당 1억 8천만 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었음에도 평균 시청률 2.7%, 광고판매율 13%로 단 7회만 방송되고 종영해 SBS 경영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점, 태영이 SBS 미디어홀딩스를 통해 인제스피디움의 경영난 해소 명목으로 억대가 넘는 숙박권을 SBS 전체 계열사에 떠넘긴 점 등을 밝혔다.
태영건설이 모터 스포츠 시설 인제스피디움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SBS에서 제작·방송된 '더 레이서', '더 랠리스트' (사진=각 방송 캡처)
SBS본부는 14일 성명에서 "박 사장은 인제 스피디움과 광명 역세권 개발 사업 등 온갖 방송 사유화의 길목마다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SBS와 구성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데 적극 가담했다. 또한 SBS와 다른 홀딩스 계열사들 간의 갖은 불공정 거래 계약에 직접 서명한 핵심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사장은 회장이 물러나자마자 발표한 담화에서 '기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지만, 오히려 이는 스스로 배임을 시인한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이것만으로도 박 사장이 물러나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SBS본부는 불가역적 소유-경영 분리 등을 요구한 노조와의 면담에서 박 사장이 "책임지고 중재해 보겠으며, 안 되면 물러나겠다"고 한 점을 들어, "박 사장은 노동조합의 대표에게 약속한 자진 사퇴를 이행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내내 대주주의 일탈에 대해 직언하고 방송독립성과 자율성을 수호하고 SBS의 수익 유출을 막았어야 할 당신들이 자기 책임과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이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결정적 원인"이라며 이웅모 SBS 미디어홀딩스 사장, 우원길 회장 보좌역, 김진원 고문 등 전직 SBS 사장들의 사퇴도 함께 요구했다.
SBS본부는 윤 회장과 SBS 경영진이 많은 불·탈법 경영행위를 저질러 왔다며 방송법·형법·공정거래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 등 법리 검토를 마무리한 상태다.
◇ 박정훈 사장, 대주주 사임 진정성 강조… 노조엔 '전면 대화' 제안이에 박정훈 SBS 사장은 14일 오후 담화문을 발표, 윤세영 회장의 사임 진정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SBS본부에 전면적 대화를 제안했다.
박 사장은 "노조는 이미 SBS를 떠난 대주주를 향해 복귀 전례를 거론하며 '눈속임', '꼼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회장님은 벌써 미수를 바라보는 고령이고 과거와 달리 SBS에 있는 회장, 부회장 집무실도 모두 없애기로 했고 SBS '8뉴스'를 통해 회장, 부회장의 퇴임을 만천하에 공표까지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에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엔 시청자와 약속을 한 것이다. 대국민 약속까지 저버리고 다시 복귀한다면 요즘 세상에 누가 그 리더십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노조가 대국민 약속도, 대주주의 진정성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SBS본부가 법에 따른 대주주의 이사 임면권까지 포기하라며 사장추천제를 제안한 것에 대해서는 "사장추천제를 기 도입한 타 방송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외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민영방송 SBS를 정치판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방송의 독립성과 경쟁력을 해칠 우려가 매우 큰 제안"이라고 부정적 의사를 전했다.
박 사장은 노조의 법적대응 방침에 대해서도 "고발여부와 상관없이, 노사가 모여 회사의 미래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모든 걸 열어 놓고 대화할 것을 노조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연예인들에 대한 과거 정권의 부당한 퇴출요구를 그런 마음으로 단호히 거부했고, '그것이 알고 싶다'등 권력과 비리를 감시하는 제작 프로그램들을 총괄하면서도 사직할 각오로 부당한 압력에 단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다. 저와 같이 일해 본 분들은 저의 방송독립 의지가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며 "SBS 가족 여러분, 흔들리지 마시고 공정방송과 1등 콘텐츠 제작이라는 방송인의 사명에 매진해 주십시오. 저는 법과 양심에 따라 정도를 걷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