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여고생의 자퇴 '학생회장 꿈 접고 검정고시 택한 이유'



전북

    여고생의 자퇴 '학생회장 꿈 접고 검정고시 택한 이유'

    학생회장은 학생이 뽑는 것일까, 학교와 교사가 승인하는 것일까

    (사진=자료사진)

     

    전북의 한 여고 2학년 A 양은 올해 학생회장 선거에 입후보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1학년인 지난해 부학생회장에 출마했다 낙선한 아픔이 있어 더 절치부심했다.

    이 학교 생활규정에는 학생회장에 입후보하려면 담임교사의 추천서와 학부모 동의서, 학년부장을 포함한 3인 이상 교사와 재학생 백 명 이상의 서명 추천을 받은 추천서가 필요하다.

    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 6월 30일 A 양은 학생 백 명의 추천서를 받았다. 그러나 학생회장 후보에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닷새 뒤인 7월 4일 A 양은 자퇴원을 냈고 일주일 뒤 즉시자퇴원을 제출해 학교를 떠났다.

    ◇ A 양은 왜 입후보도 못했을까

    후보등록 마감 일주일 전인 23일 A 양은 필수서류인 학년부장 추천서를 받으러 갔다.

    "너는 맨날 잠도 자고, 학습태도 때문에 해주기 싫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종례시간에 다시 찾아갔지만 담임교사는 "왜 왔어?"라고 물었고, 학년부장은 "다음 주에 와라"라고 했다.

    운명의 6월 30일. 다시 학년부장을 찾아갔다.

    "담임선생님하고 한 말이 있어서 못해주겠다. 너는 퇴학감이야."

    학년부장은 매몰찼다. 담임교사를 찾아갔다.

    "너희들이 잘못한 거는 아냐? 안 되는 건 안 된다."

    눈물을 꾹 참고 7교시 종이 칠 때까지 교무실 담임교사 옆에 있었다. 마감시각인 그날 오후 4시30분을 조금 앞둔 시각.

    "선생님 추천 안 받아도 되니까, 후보만 등록해도 되니까 허락만 해주세요."

    "너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에 스펙 쌓으려고 하는 거 아냐?"

    옥신각신하다가 담임교사 사인을 받지 못한 채 후보등록 서류를 내러 인성인권부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담임선생님이 못 나가게 해요. 사인을 하나 못 받았어요."

    인성인권부장은 담임교사와 전화를 한 뒤 "입후보 기간 늘려줄 테니까 담임하고 학부모하고 얘기하고 와라"고 말했다.

    울다가 웃다가 춤을 추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 A 양은 그날 학생회장 대신 자퇴를 마음먹었다.

    ◇ 추천 거부, 교사의 항변은 정당할까

    교사들은 A 양이 보충수업에 무단으로 빠지고 출석부를 조작, 폐기, 은폐하는 사건의 직접적 가담자이기 때문에 자숙하는 기간 동안 추천서를 써주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A 양의 반 34명 중 29명이 이같은 행동을 했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한 전북학생인권심의위원회는 "이에 대한 지도는 정당하다 할 수 있지만 다른 반의 출석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보충수업을 싫어하는 학생들의 일반적 특성이다"며 "보충수업을 강제적으로 진행했기에 발생된 문제로도 볼 수 있어 생활교육을 하면 되는 것이지, 학생의 자치활동을 제한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담임교사는 마감 30분 전에 A 양이 추천서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자세가 문제가 있어서 추천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심의위는 "담임교사로서 A 양이 학생회 선거 준비 중인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데 등록 마감 30분 전이었다는 이유로 추천서를 거부한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추천서를 쓰고 안 쓰고의 문제는 교사의 재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인권심의위는 "해당 학교는 담임교사와 학년부장교사가 허가하지 않으면 학생회 임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허가제 선거를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추천서는 교사 재량에 따라 작성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고 반박했다.

    ◇ 학교 손아귀에 놓인 학생회장 자격

    이 학교 생활규정은 학생회장 후보 등록 과정에서 교사의 개입을 당연시했을 뿐 아니라 당선 역시 학교의 승인 없으면 불가하게 돼 있다.

    생활규정은 학생회장과 부회장 등은 품행이 바르고 지도력이 있으며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품행 방정과 모범 학생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선거로 뽑은 학생 대표를 학교장 또는 교사의 잣대로 재단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이 학교 생활규정은 학생회장에 대해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 임명하게 돼 있다. 학교장이 승인하지 않는다면 불승인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입후보 과정에서부터 투표권이 없는 학년부장과 담임의 추천, 사실상 승인을 받아야만 하고 당선 뒤에도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야만 해 선출이 아닌 '허가제 학생회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라북도교육청. (사진=자료사진)

     

    전북학생인권심의위는 26일 전북교육감에게 해당 고교 담임교사와 부장교사가 특별인권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다른 학교의 규정을 점검해 자치활동 권리를 침해하는 규정이 있다면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또 해당 학교장에게 학교 구성원을 대상으로 인권감수성 향상과 학생자치활동 이해를 높이기 위한 인권교육을 진행하고 특별 대책을 수립할 것과 학교생활규정을 인권우호적인 방향으로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전북학생인권위 관계자는 "교사들에 의한 학생의 자치활동 권리 제한이 자퇴 결정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학생의 학습권과 자기운명결정권 등을 침해했다"며 "학생인권을 제한할 때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스스로 학교를 떠난 A 양은 부모와 여행을 다녀온 뒤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A 양은 학교와 학생회장 대신 검정고시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