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북미간 감정싸움으로 한반도 위기지수가 높아지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법도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지난 5월10일 출범한 새 정부는 한 달 남짓만에 찾아온 6·15 공동성명 17주년 기념식을 남북 공동행사로 치르려 했지만, 시간 부족과 북측의 급작스런 장소 변경 요구 그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면서 끝내 불발됐다.
하지만 6월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재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7월 초 독일에서 '신베를린 구상'을 선언하며 남북 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을 시도했다.
또 새 정부 첫 8·15 기념식을 남북 민족공동행사로 열고, 올해 10·4 남북정상회담 10주년 행사 역시 공동 개최하는 등 한반도 평화 무드를 이어가려 했지만 북한의 도발로 번번이 좌초되거나 불발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이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이 평소와 달리 참모진들에게 크게 화를 내며 북한을 비판했던 것도 새 정부 초반의 남북관계 개선 프로세스가 꼬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대통령 취임사),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6월30일 한미정상회담), "여건이 갖춰진다면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7월6일 독일),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인은 우리 자신"(8월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식) 등 기회가 될 때마다 남북관계 복원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이어 급기야 이달 초 6차 핵실험까지 감행되면서 문 대통령의 대북 스탠스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북한 도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6차 핵실험 직후 NSC), "차원이 다른 그리고 절감할 수 있는 대북 제재가 필요하다"(9월4일 트럼프 대통령 통화) 등 강경 일변도로 바뀌었다.
"민간교류의 확대는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어갈 소중한 힘"(7월6일 독일),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 예외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때였다"(8·15 경축사) 등 이전의 대북 유화 메시지 톤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대신 북미간에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19일 트럼프 대통령 유엔총회 기조연설), "트럼프는 늙다리 미치광이,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신중히 고려"(21일 김정은 위원장 성명) 등의 말폭탄이 난무했다.
결국 지난 23일 새벽 미군 B-1B 전략폭격기와 F-16C 전투기 편대의 북한 공해상 무력 시위까지 벌어지면서 한반도 안보위기 지수가 일촉측발 상황으로 내몰렸다.
청와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와 대북 제재·압박 공조를 강화하면서 당분간 섣부른 남북관계 복원 시도는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접근법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나 "직접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기에는 현재의 안보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대신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 외에도 유럽 등 여러 나라들을 상대로 북한을 설득할 외교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남과 북에 동시에 대사관을 운영하는 몇몇 유럽 국가들은 한반도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을 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며 "이들 국가들과의 북핵 문제 해결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다만 한반도 긴장수위가 높아지면서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우발적 충돌이 국지전 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북 군사회담 제안 등의 조치는 계속 해나간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