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화재가 발생한 대전 서구의 매입임대주택. (사진=주민 제공)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급하는 매입임대주택에서 불이 나 열 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불이 난 지 1년이 지났지만 부실한 안전망과 당국의 무관심 속에, 답답한 추석맞이를 앞두고 있다.
(관련기사 : CBS 노컷뉴스 17. 4. 18 "삽시간에 번졌다"…매입임대주택의 '예고된 피해')지난해 8월 불이 난 대전 서구의 한 다가구주택.
2층에 살던 윤선이(52)씨의 세간살이는 여전히 곳곳이 그을리고 재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다.
화재 이후 피해 보상은커녕, 쓰레기가 돼버린 가구와 전자제품을 치울 돈도 없어 임시거처로 몸만 옮긴 상태다.
윤씨는 "다 폐기처분해야 되는데 폐기처분 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들어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새로 장만할 여력도 안 되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윤씨는 "주변에서 얻은 집기와 도움으로 근근이 살고는 있지만 임시거처 생활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지는 몰랐다"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화재 당시 집안에 있었던 조금연(71)씨는 지금도 호흡기질환과 공포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화재 후유증이지만 치료비 한 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조씨는 "화기를 빼는 주사도 맞고 최근까지도 약을 먹었다"며 "아직도 생각하면 두근두근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그래도 살았으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화재 당시 이곳에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장애인가구 등 취약계층 열 가구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처한 상황은 윤씨나 조씨와 다르지 않다.
이들이 살던 다가구주택은 LH가 관리하는 '매입임대주택'이다. 생계용 차량까지 불에 타는 등 주민들은 수백에서 수천만원의 피해를 입었지만, 화재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서 LH는 주민들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매입임대주택이 안전에 취약한 데다 허술한 관리가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화재원인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불이 급격히 번진 이유로는 건물에 사용된 값싼 가연성 외장재가 지적됐다.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가 없었던 것도 피해를 키웠다. 건물 내 CCTV는 수년 전부터 관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LH가 이 같은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재발방지책 마련에는 눈을 감고 있다고 말했다.
윤선이씨는 "LH 본사에서는 '이전에도 그런 화재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는 식으로 말했다"며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바꿀 마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화재 이후 대전시의회에서 열린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LH 대전충남지역본부 관계자는 "우량주택을 매입해 취약계층에 보급해야 되지만, 할당된 물량을 한정된 재원으로 달성하려다 보면 우량주택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살았던 매입임대주택에서는 지난해에만 두 차례의 화재가 있었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취약계층이면 부실한 주택이어도 잠자코 살아야 되는 것이냐"며 "공공주택은 민간주택과 달라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안전도, 관리도 더 허술하다"고 꼬집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김동섭 대전시의회 의원은 "주택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공공임대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만 248건에 달한다"며 "LH공사는 물론 공공임대주택사업을 하는 대전도시공사, 대전시도 매입임대주택의 체계적인 관리방안과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