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세탁기 플렉스워시(왼쪽), LG 트롬 트윈워시 (사진=삼성, LG 홈페이지 화면 캡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과 LG전자 세탁기로 인해 "자국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정하면서, 긴급 수입 제한 조치인 '세이프가드' 압박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미국 ITC는 5일(현지시간) 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삼성과 LG를 겨냥해 제기한 세이프가드 청원을 심사한 결과, 위원 4명의 만장일치로 "수입 세탁기의 판매량 급증으로 인해 국내 산업 생산과 경쟁력이 심각한 피해 혹은 심각한 피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판정했다.
삼성과 LG는 한국과 중국, 태국, 베트남, 멕시코에서 세탁기를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월풀은 양사가 반덤핑 회피를 위해 중국 등으로 공장을 이전한 것이라며 세이프가드를 요청했다.
이번 ITC 결정이 곧바로 셰이프가드 발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판정은 수입 세탁기의 판매 급증으로 미국 산업 생산과 경쟁력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구제조치'(remedy)의 방법과 수준은 오는 19일 청문회와 내달 ITC 투표 등을 거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결정한다.
구제조치로는 관세 부과 및 인상, 수입량 제한, 저율관세할당(TRQ·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낮은 관세를 매기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 등이 포함된다. 이것이 나와야 실질적인 피해 수준과 범위가 추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 부활과 보호무역 기조를 일찌감치 천명한 만큼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경우 연간 삼성과 LG 세탁기의 미국 수출 규모가 1조 원이 넘는 만큼 타격도 상당할 전망이다.
삼성과 LG전자가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세탁기는 연간 물량으로는 200만대 이상, 금액으로는 10억 달러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대부분을 태국, 베트남에서 생산해 수출한다. LG전자는 태국, 베트남에서 약 80%를, 나머지 20%를 국내 창원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ITC가 이날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서는 세이프가드 조치 때 배제하도록 한 만큼, 삼성전자는 수출 물량 대부분이, LG전자는 동남아 수출분 전체가 세이프가드의 사정권에 들어가게 됐다.
다만 삼성·LG전자 모두 미국에 현지 공장을 건설 중이어서 세이프가드 조치가 발동되더라도 상당 부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와 테네시주에서 각각 진행 중인 현지 가전공장 건설 계획은 이번 ITC결정과 상관없이 당초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짓고 있는 가전공장은 내년 1월 중 가동한다는 목표여서 세이프가드 조치에 따른 충격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도 오는 2019년 상반기 중에는 테네시주에 가전공장을 가동해 미국 수출분의 상당량을 현지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더라도 생산이 안정화될 때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태국·베트남 등에서 생산 중인 물량도 생산량을 줄이거나 새로운 수출처를 찾아야 해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미국 내 삼성·LG전자 유통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오는 19일과 21일로 예정된 구제조치 관련 공청회 등에서 "자사 세탁기에 대해 수입규제가 적용될 경우, 결국 현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기로 했다.
"세이프가드가 발동될 경우 결과적으로 미국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제품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면서 미국 정부를 최대한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두 회사는 지난달 7일 미국 워싱턴DC의 ITC 사무소에서 열린 세이프가드 조사 공청회에서도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참석해 부당함을 강조하는 한편 이와 관련한 의견서도 공동 제출한 바 있다.
아울러 삼성·LG전자는 세탁기 수출로 인해 월풀이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소명할 계획이다.
이번 ITC 결정은 향후 국내 세탁기뿐 아니라 다른 품목에 대해서도 언제든 비슷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세탁기 외에 냉장고나 TV 등 다른 제품으로도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면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더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