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이름으로 달린다' NC 노진혁이 11일 롯데와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후속 타자의 적시타 때 3루를 돌아 홈으로 쇄도하고 있다.(마산=NC)
경기장은 물론 TV로 지켜보던 모두가 놀랐을 겁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감독과 동료 선수들, 1만1000명 만원 관중까지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2012년 입단 후 5년 만에 '인생 경기'를 펼친 NC 내야수 노진혁(28). 그것도 교체 선수로 들어가 경기 MVP에 올랐으니 이른바 '미친 선수'가 된 겁니다. 더욱이 교체 대상이던 선수는 4년 몸값 96억 원의 정상급 내야수. 한 마디로 사고를 친 겁니다.
노진혁은 11일 경남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롯데와 준플레이오프(PO) 3차전에서 3회초 3루수 대수비로 출전했습니다. 3회말 공격부터 홈런을 리더니 4타수 4안타에 4득점 3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홈런과 안타, 타점, 득점 모두 멀티였습니다.
특히 3-2로 쫓긴 3회말 달아나는 천금의 2점 홈런을 날렸습니다. 사실 NC는 1회 재비어 스크럭스의 2점 홈런과 권희동의 적시타로 3-0으로 앞서갔습니다. 그러나 2회 3루수 박석민의 결정적 실책 속에 2점을 헌납하며 추격을 당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노진혁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홈런으로 NC의 분위기를 지킨 겁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7-4로 앞선 5회 2사에서 노진혁은 안타를 때려내며 추가 3점의 물꼬를 텄고, 6회도 안타와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9회는 1점 홈런까지 13-6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날 자칫 흐트러질 수 있던 NC의 분위기를 살린 노진혁은 당연히 경기 MVP에 올랐습니다.
'서영아, 아빠 MVP 먹었다' 노진혁이 준플레이오프 3차전 MVP에 선정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마산=NC)
경기 후 '인생 경기'를 펼친 소감을 묻자 노진혁은 "아무 생각도 없고 나도 좀 놀라서 얼떨떨하다"고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진혁은 팀이 1군에 진입한 2013시즌부터 정규리그 통산 212경기에서 홈런이 고작 4개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경기에서 2개의 홈런을 날렸으니 본인도 놀란 게 당연했습니다.
홈런이 이렇게 뜸하니 제대로 된 세리머니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노진혁은 "(상대 선발) 송승준 선배의 포크볼이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헛스윙을 해도 무조건 직구 타이밍에 치겠다고 생각했다"고 일단 3회 홈런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치는 순간 넘어갔다 느낌은 있었는데 홈런 타자가 아니다 보니 멋있는 세리머니를 못 해서 아쉽긴 하다"고 멋쩍게 웃었습니다.
사실 경기에 나갈지, 말지조차 긴가민가 했던 노진혁이었습니다. "(김경문) 감독님이 (출전을 위해) 팔을 풀고 있으라 했는데 설마 나갈까 했는데 나가더라고요"라면서 노진혁은 "중요한 경기니까 오늘은 좀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깜짝 활약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노진혁의 활약에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을 겁니다. 바로 아내와 딸, 그의 가족일 겁니다. 통산 타율 2할9리, 후보 선수였던 남편과 아빠가 이런 큰 경기에서 이처럼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을 줄은 물론 간절히 바랐겠지만 현실이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노진혁은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동안 누가 떠올랐느냐는 질문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딸"이라고 했습니다.
2014년 12월 결혼 당시 노진혁과 아내 손희령 씨.(사진=NC)
특히 아내 손희령 씨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넘쳤습니다. 노진혁은 "군대에 가 있던 2년 동안 아내가 혼자 딸을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미안했다"면서 "특히 생후 26개월, 3살인 딸이 남들보다 많이 뛰어다녀서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아내의 고단함을 언급했습니다.
노진혁은 지난 2014년 12월 1살 연상이던 손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25살의 많지 않은 나이, 게다가 입단 3년차에 가장이 된 겁니다. 이후 노진혁은 2015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했습니다. 아내와 딸을 남겨둔 채 말입니다. 본인의 말대로 아내는 2년 동안 '독박육아'에 매달려야 했을 겁니다.
그런 아내와 딸을 두고 온 노진혁은 상무에서 비지땀을 흘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어느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 팀에 어울릴 수 있는지 그런 생각 많이 하면서 잠도 설쳤다"는 노진혁입니다. 올해 노진혁은 퓨처스리그에서 84경기 타율 3할1푼5리 11홈런 68타점을 올렸습니다. 2루타도 29개, 3루타도 5개, 더 이상 물방망이가 아니었습니다.
노진혁은 "9회 두 번째 홈런은 넘어갈 줄 몰랐는데 생각지도 않게 홈런이 됐다"면서 "전역하면서 방망이도 잘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는데 상무에 잘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기뻐했습니다. "정신적, 육체적인 면 전체적으로 다 늘었다 생각한다"면서 "그만큼 감독, 코치님, 동기와 후배들 더 많이 도와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뜨거운 전우애를 드러냈습니다.
'상무에서 갈고 닦은 홈런 스윙' NC 노진혁이 11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3회 2점 홈런을 날린 뒤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마산=NC)
3년 전 결혼식 때 노진혁은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겠다"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2015시즌 노진혁은 65경기 타율 7푼9리(38타수 3안타) 2타점에 머물렀습니다. 그야말로 대수비 등 백업 선수, 성적은 사실 부끄러울 만했습니다.
하지만 올 가을 노진혁은 세상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가장이 됐습니다. 노진혁은 "그동안 아내에게 미안했는데 오늘 잘한 모습을 보여줘서 좋다"고 뿌듯하게 가슴을 폈습니다. 이런 노진혁을 두고 김경문 NC 감독은 "내년에 노진혁을 많이 보게 될 것이고 어느 자리든 많이 경기를 뛸 것"이라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이제 노진혁의 아내와 딸 서영이는 부끄럽지 않은 가장의 모습을 많이 볼 겁니다.
p.s-경기 MVP 인터뷰를 마친 뒤 노진혁에게 아내를 위한 영상 편지를 한번 띄워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라운드 인터뷰는 중계 및 TV 뉴스 방송 카메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홈런 세리머니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는 노진혁은 마치 영상 편지는 예상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여보 많이 고생했는데 앞으로 더 잘해서 꽃길 걷도록 해줄게, 사랑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준비된 가장 노진혁이었습니다.
'내 딸 서영아, 너도 꽃길만 걸으렴' 남편의 군 생활 동안 아내가 혼자 키워낸 딸 서영이가 아빠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마산구장을 찾았던 모습.(사진=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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