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대 ‘신(新) 적폐청산’의 프레임 대결로 여야간 격전이 예상됐던 2017년도 국정감사가 예상보다 맥이 빠진 채 진행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이 공언했던 '신적폐'가 나오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12일과 13일 양일간 벌어진 국감에서 법제사법위원회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등 파행이 빚어졌던 상임위도 있었지만 야당이 ‘신 적폐,원조 적폐’를 들춰내겠다고 각오했던 것과는 달리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들춰낼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적폐청산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야 모두 칼날을 세우며 별렀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번 국감은 국정농단의 잔재와 적폐를 청산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한데 맞서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신적폐, 원조적폐 등을 심판하기 위한 총력체제를 가동하겠다. 이번 국감을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쟁터라고 생각한다”며 강한 공세를 예고했다.
하지만 9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탓인지 여야 모두 아직 공수가 뒤바뀐 상황이 어색하다. 야당이 된 한국당이 아직 여당의 물을 빼지 못하면서 예상했던 만큼의 전투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과 북한 해킹으로 군 기밀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됐던 국방위 국감도 여·야간 큰 정쟁 없이 조용히 진행됐다.
야당 입장에서는 괜히 대응했다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과오만 부각될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방위 국감에서 국방부 해킹 사건에 대해 야당 의원들이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대책도 미비하다”라는 질타를 이어갔지만 민주당 이철희 의원으로부터 “지난해 9월23일에 인지됐으면 신속하게 조치했어야 한다. 그 수정하는 작업도 올해 상반기에는 다 했었어야 했다”라는 반박을 들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 만에 치러지는데다 장관 인선 시기 등을 고려하면 실제 현 정부의 정책 효용성 등을 따지기에는 기간이 짧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책검증보다는 정치 쟁점화로 진행되는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공영방송 정상화’와 ‘정부의 신 방송장악’으로 설전이 예고됐던 과학기술방송위원회 국감에서는 초반 한국당 의원들이 이효성 방통위원장을 ‘적폐위원장’, ‘이효성 교수’ 라고 부르는 등 도를 넘은 행태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급기야 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해 ‘640만달러 수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다 검찰이 이미 2009년에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한 상태여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역풍만 맞을 가능성이 있다.
바른정당과 한국당의 보수통합, 바른정당과 국민의당과 교섭단체 설 등 바른정당의 분당 갈등이 정계개편 가능성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도 야당이 국감에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당과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내 통합파 의원들이 국감 기간 중인 26일을 탈당 시한으로 제시하는 등 국감에 집중할 여력이 없다.
또 국감 첫날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상황일지 조작이란 대형 이슈로 기선을 제압당한 점도 야당의 전투력을 잃게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