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6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범죄도시'에서 오동균 역을 맡은 배우 허동원. 허동원이 20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영화 '범죄도시'(감독 강윤성)의 기세가 무섭다. 추석연휴인 지난 3일 개봉한 '범죄도시'는 B급 영화를 표방하는 듯 다소 촌스러운 포스터와, 한국영화에서 이미 수백 번은 등장했을 '경찰의 범죄자 소탕'이라는 흔한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마동석, 윤계상, 조재윤, 최귀화라는 잘 알려진 배우들도 있었으나, 영화 곳곳에 이름도 얼굴도 생소한 배우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뭐든 뚜껑을 열어보라 했던가. 언론 시사회 당시부터 '너무 재밌다'며, 오락영화로서 받을 수 있는 기분 좋은 평을 들었던 '범죄도시'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초반에 배우들을 실망하게 했던 적은 관수는 차차 늘어났다. 아침과 밤에만 있던 상영시간은 이제 오전~심야를 아우를 만큼 늘었다.
'범죄도시'에서 마석도(마동석 분) 곁을 지키는 동료 형사 오동균 역을 맡아 맛깔난 부산사투리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 허동원에게도 이 영화는 '각별했다'. 오디션만 3번을 거치며 처음으로 상업 장편영화를 경험한 허동원은, 휴대폰이 뜨거워질 만큼 댓글을 달며 영화에 힘을 실었다.
20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배우 허동원을 만났다. 아직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는 허동원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1시간 15분이나 이어진 긴 인터뷰에도 그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무엇 하나 허투루 답하지 않았다.
◇ "시나리오부터 너무 재밌었다… 흥행 아직 실감 못해"허동원은 그동안 '열애', '감금의 시간', '죄 많은 소녀' 등의 영화에 출연했고, 상업영화에 주요 배역으로 나온 건 처음이었다. '국제시장'에도 나왔으나 얼굴을 비춘 정도였다. '범죄도시'가 어느덧 400만 관객(21일 기준 466만 8098명, 역대 95위)을 돌파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음에도, 그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허동원은 "장편 상업영화를 처음 한 거라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동석이 형이나 계상이 형이 '너무 잘 된 거야!' 하고 다들 잘 된다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전 아직 체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조금 느낀다"고 말했다.
처음에 어느 정도 관객수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도 "얼마가 되어야 잘 됐는지 수치를 몰랐다. 시사회 하면서부터 17년 만에 입봉하신 감독님이니 잘됐으면 좋겠다, 최소한 투자금은 회수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고 답했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범죄도시'는 돈이라면 뭐든 하는 잔인한 조직 흑룡파 무리와 이를 소탕하기 위한 경찰들이 한 판 붙는다는 범죄오락물이다. '마동석 슈퍼히어로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괴력을 지닌 독특한 형사 캐릭터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악역이 인상적이고, 조연과 단역까지도 연기를 잘하며, 일단 '재미있어서 몰입하게 되는' 영화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처음부터 영화가 이렇게까지 잘될 줄 알았을까. 허동원은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사실 처음 버전은 허동원이 봐도 "솔직히 너무 잔인"했다. 보자마자 19금(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나오리라고 예상할 만큼.
다방 여주인 안혜경 역으로 나오는 배우 유지연 부분이 많이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안혜경은 독사파였다가 흑룡파에 가게 되는 도승우(임형준 분)과 동거하는 사이인데, 장첸(윤계상 분)과 원치 않는 관계를 맺는다는 암시가 등장한다.
허동원은 "조선족들이 (지금보다) 엄청 날카로웠다. 여혐(여성혐오) 문제도 있고 잔인하기도 했다. 여자배우 부분이 많이 편집되면서 시나리오가 약해진 편"이라고 설명했다.
◇ 마동석 옆 그 능글맞은 형사 '오동균'을 만들어내기까지'범죄도시'의 성공 비결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연기 구멍'이 없다는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듯한 단역조차. 1200여 명을 직접 만나 꼼꼼한 오디션을 거친 덕이다. 허동원도 3단계에 이르는 오디션에서 선택 받아 영화에 합류했다. 오디션 대본으로 주어진 게 장첸의 오른팔 위성락(진선규) 역이었기에, 그 배역을 탐냈다고.
보자마자 위성락 역에 매력을 느낀 그는 위성락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얼굴도 좀 더 어둡게 분장을 하고, 거친 피부를 표현하고자 세수도 잘 하지 않고, 머리까지 눌린 모습으로 오디션장에 갔다. 당시 인물 조감독은 허동원이 형사 역에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했고, 그래서 지금의 오동균 역을 맡게 됐다.
오동균은 원래 시나리오 상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훨씬 더 가볍고 까불거리는 캐릭터였다. 허동원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오동균을 재창조했다. "네가 편한 사투리로 하라"는 감독 덕에 좀 더 편한 부산 사투리를 쓸 수 있었다.
허동원 '범죄도시'의 괴력형사 마석도의 동료 형사인 오동균 역으로 활약했다. 왼쪽부터 허동원, 마석도 역의 마동석, 박병식 역의 홍기준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감독님이 캐릭터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셨다. 저는 군대 느낌이라고 봤다. 동석이 형이랑 전반장(최귀화 분) 역할은 아예 배제해 놓고, 군대로 친다면 저는 일을 더 많이 하는 일병이나 상병 같은 느낌? 명확한 구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형사가 3명이니 (이미지가) 좀 더 보여야지 좋지 않을까 해서. 형사 역 캐스팅이 조금 늦어졌다. 지인들은 연락을 받았다는데 전 안 와서 불안했다. 알고 보니 감독님이 (잘 어울리는지) 앙상블을 봤던 것 같다. 어떤 캐릭터를 입히면 (세 사람이) 더 좋게 보일까 하고."
형사 역을 준비하면서 허동원은 '와일드카드'(2003)부터 우리나라 형사물은 거의 다 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인 형사만 보이고 주변 인물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형사로 그리지 않았기에, 감독은 현장에서 '일상적인 부분'을 많이 주문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악당 역인 장첸 쪽이 임팩트가 강하니까 형사들이 너무 튀지 않았으면 하는 가이드도 있었다고.
막내형사 강홍석은 더 많은 용기와 맷집을 필요로 하는 강력반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개인 서사'가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허동원이 맡은 오동균 역이나 단짝 형사인 박병식 역의 홍기준은 본인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개성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했다.
힌트는 실제 형사들과의 만남에서 얻을 수 있었다. 허동원은 "그분들의 표정이나 제스처를 많이 보려고 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어떤 표정이지, 그런 것들. 다양한 스타일의 형사들을 만났다"며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형사분들도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본인들도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너무 두렵다고 하더라. 그런데도 뚫고 들어가는 거라고"라고 말했다.
평소 우리가 잘 알아채지는 못하지만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경찰을 표현하기 위해 '튀는 것'을 자제했다는 허동원. "옆 부서에 있는 형사 같다"는 댓글을 봤을 때의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 혹시 어설프게 보여 "에~ 형사는 저런 게 아니지"라는 반응이 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고.
◇ "강윤성 감독 후속작 하면 너무 감사… 못 해도 서운하지 않다"'범죄도시'는 모두에게 절실한 영화였다. 이 영화로 17년 만에 입봉(감독으로 데뷔하는 것)한 강윤성 감독은 말할 것도 없다. 강 감독과 작업해 보니 어땠는지 묻자 긴 긴 이야기가 돌아왔다.
허동원은 강 감독을 "사람을 되게 편안하게 해 주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어떤 분인지 검색을 해도 별로 자료가 안 나오던 차에, 거친 느낌의 젊었을 적 사진이 나와 인상이 강렬하다고만 느꼈다. 막상 만나 보니 젠틀했다고. 배우를 꿈꾸다 방향을 틀어 감독을 꿈꾼 강 감독은 데뷔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배우 허동원 (사진=황진환 기자)
'범죄도시' 팀은 각지 무대인사를 돌 때 버스로 이동하며 서로의 사연을 나눴다. 허동원은 "감독님 얘기 들어보면 되게 짠하다"며 입봉 문턱까지 갔다가 수차례 엎어졌던 일화를 전했다. 이번에도 안 되면 다 접겠다고 마음먹었던 강 감독은 아내에게도 영화 촬영장 고사날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그럼에도 허동원은 강 감독을 "되게 긍정적인 분"으로 표현했다. 어려운 와중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고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된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 강 감독의 표현력이 너무 좋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벌써부터 속편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제의가 들어오면 출연할지 물었다. 허동원은 "감독님 작품을 한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다. 속편이 나오면 더 좋다. 아직 그런 얘기는 없지만"이라며 웃었다.
"(속편이 나오면) 또 저나 저희 같은 배우들이 나오지 않을까. 선규 형(위성락 역 진선규) 꽤 오래 전부터 대학로에서 알았던 형이다. 그 형에게도 첫 상업영화였는데 정말 힘들게 했고, 기준이 형(박병식 역 홍기준)은 학원에서 애들 가르치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안 될 정도였다. 제 밑에 하준(강홍석 역)이는 극장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이제 극장에서) 무대인사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았다. 속편이 만들어지면 또 저희와 같은 배우들이 쏟아져 나오진 않을까. (제의가 오면) 제가 하고 싶은데 다른 분들이 한다면 아쉬움은 남아도 섭섭하진 않을 것 같다."
◇ 누군가 '용기'를 낼 수 있는 시작이 되길
배우들에게도 '범죄도시'는 절실했다. 마동석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4년 가까이 힘을 보탰다. 윤계상은 아직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히트작이 부족했다. 조·단역배우들에게도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다. 캐릭터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연기력과 조화로움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1200여 명이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새로운 얼굴이 많다'는 평이 나온 배경이다.
허동원은 "마동석, 윤계상, 최귀화 등 (상업영화) 경험이 많은 분들은 현장을 편하게 만들었다. 큰 배역을 맡은 적이 별로 없는 배우들이 많아서"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동석, 최귀화는 단역 경험이 많아 바스트샷(상체까지만 보이는 화면)을 어색해 하는 배우들을 '케어'했고, 윤계상은 자기 대사도 조연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끈끈한 의리를 자랑했다는 게 허동원의 설명이다.
배우 허동원 (사진=황진환 기자)
"이번에 같이 한 저희 형사들, 장첸 쪽 두 명은 그래도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나누기는 그렇지만 좀 더 작은 역을 한 분들도 다 되게 절실한 분들이었다. 그저께 300만 파티를 했었다. 전 스태프들이 와서 축하해 주는데, 이 영화가 잘되면 잘될수록 그분들도 똑같이 고생을 했는데 주목을 덜 받는 것 같아서… 제가 뭐 휴머니즘 이런 게 있어서가 아니라 (웃음)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뛰어다녔으니까. 저는 회사가 있어서 낫지만 영화 들어가는 거 알아보고 직접 프로필 돌리는 분들도 많다.
(영화가 잘 돼서) 되게 기분이 좋지만, 이 영화가 혹시 안 될까봐 하는 두려움도 컸다. 감독님도 정말 연기를 잘하는지, 또 절실한지 이런 걸 보셨다고 하더라. 전 배우들이 이게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흥행까지도 생각 못하고, 이게 잘못되면 몇 년 동안 용기를 못 낼 것 같다, 누군가 이런 시도를 안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범죄도시'가 잘 돼서 다른 영화에도 용기를 주는 시작이 되면 좋지 않을까."
(노컷 인터뷰 ② 허동원 "'범죄도시', 관객분들 아니면 여기까지 못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