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더 유닛'(왼쪽), JTBC '믹스나인' 공식 포스터
올 하반기 방송계와 가요계 화두는 단연 아이돌 서바이벌이다.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을 탄생시킨 엠넷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대박을 지켜본 방송사들, 그리고 가요 기획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KBS는 2TV를 통해 28일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이하 '더 유닛')'을, YG와 손잡은 JTBC는 29일 '믹스나인'을 선보인다. 각 기획사에 속한 데뷔 경력이 있는 아이돌 및 연습생들이 출연해 경쟁을 펼치고, 프로젝트 유닛으로 활동할 멤버를 선발한다는 점에서 두 프로그램의 포맷은 매우 흡사하다.
아울러 포맷은 다르지만 현재 엠넷에선 JYP의 새 보이그룹 선발 과정을 그리는 '스트레이 키즈'가 방영되고 있으며, MBC 역시 아이돌 서바이벌 기획을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돌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 같은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 "저희에겐 새로운 기회라고 봐요"
'프로듀스101'을 통해 결성된 그룹 워너원(위)과 아이오아이(자료사진)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자사 아이돌 그룹을 출격시킨 한 중소 기획사 대표 A 씨는 고심 끝에 출연 결정을 내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저희 회사에 속한 팀의 경우, 이미 데뷔를 하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친구들이라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 사실상 나머지 활동은 '올스톱'할 수밖에 없거든요. 앨범 준비만 해도 최소 몇 개월 이상이 걸리니까요. 하지만 중소 기획사 입장에서는 방송 출연 기회가 적어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하게 된 거죠."
흔히 '정글'로 비유되는 가요계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 속 주목받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대형 기획사 중심인 현 방송계와 가요계에서 중소 기획사 소속 아이돌이 설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여러 기획사들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일종의 '도박'을 건 이유다.
"우려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누구나 최종 유닛 멤버로 선발되길 바라지만 그렇게 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큰 결심을 하고 출연했는데 화제도 안 되고 최종 멤버도 안 된다면 안 한 것만 못한 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일단 출연을 결정했으니 희망을 가지고 지켜봐야죠."
# "워너원 보고 자극 받은 친구들이 많아요"사실 '프로듀스101'의 성공 이후 KBS와 JTBC 등 방송사들이 비슷한 포맷으로 아이돌 서바이벌 제작에 나선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관계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고 회의적이었다.
"괜히 출연시켜서 '망한 아이돌' 취급받는 거 아닐까 걱정했었죠". 한 중소 기획사 매니지먼트 이사 B 씨의 말이다. 그런데 이후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고 출연을 결정하는 기획사들이 점차 늘어났다. '더유닛'에 참여한 기획사만 해도 무려 90여 곳에 이른다.
"기획사 관계자들은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며 분위기를 살펴요. 그런데 아이돌 서바이벌에 대한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핫'하더라고요. 그런 반응을 보며 처음에는 망설이던 기획사들이 하나둘 출연을 결정했고, 다들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한 거죠. '망한 아이돌 출연시키는 프로그램이 절대 아니다'라는 제작진의 설득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고요."
실제로 서바이벌이라는 쉽지 않은 판에 뛰어들어야 하는 입장인 아이돌들의 '의지'도 어느 부분 영향을 미쳤다.
"사실 회사보다 애들이 더 욕심을 내는 분위기에요. 워너원 같은 팀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나 보더라고요. 가요계 후배였던, 회사 연습생이었던 친구들이 한순간에 스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허무함을 느낀 것 같기도 하고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생긴 거죠."
# "이러다간 가요계 생태계 다 무너집니다"
'더유닛'(사진=KBS 제공)
일단 출연을 결심한 기획사들은 기대감에 차 있는 분위기이지만 이 같은 흐름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 C씨는 "거대 방송사, 그리고 방송사와 손잡은 대형 기획사가 가요계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더욱 굳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출연을 결정한 팀들이 쓴소리를 하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강요라고 하긴 뭐하고 출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측면이 있었어요. '우리 방송사 음악프로그램 출연 안 하실 거예요?' 하는 식으로요. 결론적으로 당장 아쉬운 사람들은 다 출연했다고 보면 돼요. JYP 같은 대형 기획사들이야 '스트레이 키즈'처럼 방송사와 손잡고 자체 리얼리티를 만들면 되는데 중소 기획사들은 미디어 힘을 빌리는 일이 쉽지 않다보니 불리한 조건임에도 일단 출연할 수밖에 없던 거죠. 남들 다 하는데 혼자만 안 할 수도 없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간절한 상황이니까요. 방송사들은 그 간절함을 이용하는 거죠."
방송사들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기획사와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팀의 매니지먼트 권한을 단기적으로 독점해 수익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시스템이 고착화될 경우, "불공정한 구조의 확장으로 음악 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유통으로 따지면 대형 마트가 소상공인들에게 '상품 가져와 봐' 하는 식이에요. 그런데 그 상품을 가져다 팔아서 돈은 대형 마트가 벌어가는 구조고요. 물론 그 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기획사들도 있겠지만 넓게, 그리고 멀리 보면 프로젝트 그룹을 만드는 포맷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건 절대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