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청와대 제공/자료사진)
한국과 중국은 31일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악화된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데 의견을 모으고, 그동안 경색된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해 나간다는데 전격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사드배치가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한다는 중국 측 주장에 대해 "사드 레이더는 제3국을 겨냥하지 않고, 사드 추가배치는 없으며, 한미일 동맹은 군사동맹이 아닌 안보동맹"이라며 중국을 달랬다.
이번 합의문은 지난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첫 정상회의를 가진 이후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최고위급 실무진에서 수차례 물밑협상을 거치며 도출됐다.
또 두 나라 정상은 다음 달 10∼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 정상회의에서 두 번째 양자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데도 전격 합의했다.
이번 합의문을 뜯어보면 한중 양국은 그간 갈등 현안으로 지목된 성주 사드 부대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한반도에 사드 추가 배치는 없다는 선에서 갈등을 봉합했다.
1955년 4월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총리가 아시아·아프리카 평화회의에서 강조한 전형적인 구동존이(求同存異) 원칙을 끌어온 것이다.
구동존이 원칙은 '큰 공통점에도 작은 차이점이 있고, 큰 차이점에도 작은 공통점이 있다'는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외교 철학을 담아 이후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가깝게는 지난 2011년 9월 일본이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국유화를 선언하자,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양제츠 중국 국무위원과 야치 쇼타로 일본 안전보장국장이 만나 댜오위다오에 대한 양국 갈등을 봉인한다는 내용의 4개항에 합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이같은 원칙에 기반해 한중관계 복원이라는 시급한 공동 이익을 위해 직접 물밑협상 보고를 받으며 합의문 도출에 공을 들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상적 방법이 아니라 정치적 타결이라는 점을 최고 결정권자들과 소통하면서 신속히 그 입장이 서로 조율될 수 있는 채널에서 소통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드 문제 해결을 통해 한중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며 "장애가 되는 문제를 서로에게 부담이 가지 않게 해결해야 된다는 데 공감을 가지고 협상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중국도 한중 관계 개선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한반도) 사드 문제가 중국 측이 원하는 대로 해결되기 어려운 여건으로 흐르는데다,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을 막기 위한 평화적 파트너로 한국이 필요하다는 중국의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과 북한 관계도 어려워지고 있다"며 "북 도발로 한미 관계가 긴밀해지는 등 여러 객관적 상황들이 (중국 입장에서) 사드 문제를 현 상태로 그대로 놓아둔 채 한중 관계 복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양국간에) '입장은 입장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생각이 작용했다"며 "입장을 각자 이야기할 것은 하고 한중 관계 개선이라는 현실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자는 것에 공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중 양국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성주에 배치된 사드 문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한중간 사드 갈등이 언제까지 발목을 잡을 수 없다는 양국의 현실적 판단과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한 중국 측의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다음달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두 번째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사드 관련 문제를 일체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또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일종의 봉인이라고 보면 된다"며 "사드 입장을 서로 철회했다거나 변화가 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더이상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봉인시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