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을 계기로 한국교회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종교개혁 500주년기념일인 지난 10월 31일은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지나갔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과제에 대해, 한국복음주의운동의 원로인 홍정길 목사에게 들어본다.
■ 방송 : CBS뉴스 파워인터뷰(CBS TV, 11월 1일(수) 밤 9시 50분)
■ 진행 : 권혁률 선임기자
■ 대담 : 홍정길 목사 (밀알복지재단 이사장)
종교개혁 500주년, 의미 없이 흘러가◇권혁률> 목사님, 반갑습니다.
◆홍정길> 네,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권혁률> 종교개혁 5백주년. 그동안 여러 가지 논의와 행사가 많았는데, 벌써 기념일이 지나갔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종교개혁 5백주년을 어떤 생각으로 맞이하셨습니까?
◆홍정길> 근심이 참 많았습니다. 마음에 깊은 응어리짐 속에서 개신교 5백주년을 어떻게 맞이하나 하고 마음에 침울함이 있었는데 이제 지나놓고 보니까 그저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의미 없이 흘러간 종교개혁 5백주년 기념 해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됩니다.
◇권혁률> 행사가 참 많았는데, 그런 행사들이 별다른 의미를 남기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홍정길> 네, 그렇죠. 그냥 이벤트로 참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미나 하고, 이제까지 안 가본 그 종교개혁 발원지나 역사적인 의미 있는 곳을 목사님들이 돌아보는 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이 두 개가 전부인 해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권혁률> 그럼 목사님께서는 이 종교개혁 5백주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좋았겠다 생각을 하시나요?
자아성찰 노력 없이 행사위주 진행◆홍정길> 종교개혁은 가장 중요한 그 슬로건이 ‘오직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오직 말씀이라는 뜻에 집중을 해서 우리를 돌아보는 것, 또 그 말씀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야 되는 것, 이것이 강조되어져야 되는데 세미나마다 일종의 담론이고, 그리고 자아성찰을 말씀으로 해야 되지 우리가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나를 보도록 만들어야 되는데, 그런 노력이 자아성찰 노력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신교는 정말로 소중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오직 말씀’.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지요. 그런데 말씀이라고 하면요. 세 가지 형태로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이라는 것은 대응실체가 없으면요, 소리입니다. 여기 탁자가 있는데, 탁자라는 우리 발음이 있고, 탁자라는 실물이 없으면 그 탁자라는 것은 소리입니다. 그래서 아마 기독교 본질을 말할 적에 소리 나는 구리하고 울리는 꽹과리, 기독교 본질인 사랑이 없을 때에 그렇다고 고린도전서 13장은 말하고 있죠.
두 번째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하고 우리 앞에 보여지는 것이 다른 것은 거짓입니다. 세 번째는 말씀이 있는데 만지고 볼 수 없는 것이 추상성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교회 속에 실제가 있는가. 예를 들면, ‘거룩’이라는 단어는 참 많습니다. 제가 카리스매틱한 형제들에게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성령이라는 말을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거기 거룩이 있는가? 성령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거든요. 그것뿐만 아니라 경건을 말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거룩이 있는가.
또 섬김이라는 단어하고 겸손이라는 단어는 로마시대에는 사실 노예들에게 사용되는 단어들이었습니다. 아가페라는 단어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실 적에 거듭난 단어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섬김이 있는가? 교회에서도 목사님들이 안 섬기니까 장로님들은 목사 다음으로 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든지, 안수집사만 되면 더 높은 섬김인 장로로 사역을 하기 위해서 교만부터 배우는 것 같아요. 실제가 있는가 말이에요. 교회 안에 정직이 있는가? 크리스천들에게 진실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갖는 것은 전부 소리고, 기독교 5백년 개신교가 내려오면서 담론의 종교로 변질이 됐어요. 이게 뭐, ‘아브라함 카이포가 무슨 말이었다’, ‘비류 옷 프리가 무슨 말이었다’ 계속 담론이에요. 그 담론이 있으면, 그 담론의 실체가 있느냔 말이에요. 그러니까 열심히 따라갔던 사람들이 말은 멋있는데, 실제가 없으니까 누가 제일 먼저 아냐면 교회 중직자 자녀들이 가장 먼저 압니다. 실체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서부터 부모들 때문에 떠나가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실체가 없기 때문에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그러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개신교 5백주년에도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논의해본적도 없이 이전 신학자들, 또 루터, 칼빈으로, ‘그 온전한 사람이 무슨 말 했는가’로 돌아가 버리는 퇴보를 했습니다. 실제로 칼빈이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이론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칼빈이 그 시대에 그 생각 했다면,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하는 고민이 없어요. 그래서 개신교 5백주년 그냥 기념은 기념식으로 끝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돼서 마음에 좀 비감한 생각이 듭니다.
◇권혁률>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하셨는데요. 교회 안에 좋은 말들은 많은데 실제가 없고, 5백주년이 그냥 기념식으로 끝났다. 정말 뼈아픈 지적이신 것 같고, 그럼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좀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홍정길>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붙잡은 이 말씀이 실제로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야 되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말씀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3절에 그렇게 나옵니다. 히브리서 11장인 믿음 장에요. 이 말은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말씀의 실상을 보여줘야 되고, 믿음으로. 또 이제까지 못 만져봤던 것의 증거를 만들어내는 것이 믿음이에요, 말씀의 실질적인 증거죠. 이것은 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가령 ‘우리가 오직 구원을 믿음으로 얻지, 행위로 얻지 않는다’는 이것하고,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이 믿음’이 동시에 100% 다 있어야 되죠. 이것 어느 것 할 수 있는 것 아니거든요. 평면논리에는 이게 안 됩니다. 그것 가지고 지금 장로교하고 감리교가 죽어라고 싸우는데, 서양 역사에서는 먼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강조되고, 그래서 이제 문제가 되니까 사람이 책임이 강조된 것이 그 다음에 2백년 이후에 존 웨슬리거든요. 그렇게 역사 단계로 봐야 되는데, 우리는 이게 하나가 돼서 들어왔어요. 그래서 대립개념으로 되어졌는데, 계속 발전해야 것에 대한 논의가 특별히 한국교회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정말 단어 하나, 하나, 우리가 그대로 살고 있는가? 그래서 실제를 찾아내야 돼요. 성리학처럼 떠들다가 또 우리 개신교도 이 땅에서 없어질 종교가 되어지면 안 됩니다.
거짓말 하지 말고 본을 보여야◇권혁률> 네, 중요한 지적 해주셨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좀 바꿔야 될 구체적인 내용을 지적해주신다면?
◆홍정길> 거짓말 안 해야죠. 어린 애도 거짓말 하는 것 잘못인 줄 알아요. 이 마땅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예요. 말씀이 말할 적에 마땅한 지, 그 마땅한 상궤를 벗어나는 일들을 실제로 목사님들이 하면서, 가령 섬기라고 호통치고 그리고 목사님들이 섬기는 사람 숫자가 적어요. 보물은 하늘에 쌓으라고 그러고, 마음속에 탐욕은 감추고 있습니다. 거기서 변화가 되어져야 돼요. 그런데 교인들이 알더라고요. 목사가 돈에 취해 있는지, 술에 취해 있는지, 혼미한 것에 취해 있는지 정상적인 크리스천들은 알아요. 교회 수뇌부부터 한 사람 한 사람 알면, 그걸 보면서 실제로 배우죠. 본이 없단 말이에요.
◇권혁률> 얼마 전에 목사님께서 ‘사랑과 섬김이 없으면 한국교회가 사라질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취지의 말씀이신가요?
◆홍정길> 그렇죠. 그게 본질입니다. 주께서 사랑을 말씀하셨고요. 그리고 주께서 실제로 사랑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인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없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가 죄인 되었을 적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그랬는데, 의인을 위해서도 안 죽고, 선인을 위해서도 죽는 사람이 있을까말까 그러지만, 정말 죄인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있다고 그러면 그 이유는 사랑 때문이에요.
부모는 죄인인 자식을 대신해서 죽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게 사랑의 본이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섬김은 주께서 마지막으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내가 너희 주로, 너희 스승으로 이리 하였으니 너희도 이같이 하라 본을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기독교는 이 두 가지의 중요한 축을 놓쳐버리면요. 다 소리 나는 구리고,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남북문제, 근심걱정만 말고 할 수 있는 실천부터◇권혁률> 목사님 뵈니까 남북관계 문제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정말 너무 안타깝게 한반도 정세가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우리 기독교인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홍정길> 그 남북문제 얘기해서 많은 후배들이 저한테 와가지고, 큰 계획을 얘기합니다. 그러면요. 그건 나중에 하고, 지금 이 땅에 온 탈북자 사랑하는 것부터 하라고. 북하고 남이 지금 단절돼 있어서 아무 것도 못할 때,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니라 탈북자들이 이 땅에 와서 외로움 느낄 적에 옆에 같이 앉아 주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지, 내가 내 삶이 뒤따라 주지 않고 계속 중얼대는 것은 염불이지 기도가 아닙니다. 같이 가줘야 돼요. 그리고 크고 위대한 것 말고 지극히 적은 내 앞에 있는 것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죠. 그래서 아까도 말씀하시던데, 사실을 놓고 시작을 해야지 멋진 아이디어만 갖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이디어는 세금도 안 내고 고통이 없어요. 그러나 지극히 적은 것 하나할 때에는 언제든지 수고가 있고,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권혁률> 지금 국민들이 너무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니까 불안해하기도 하고, 그래서 ‘각국 정부들이 좀 제 역할을 잘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이제 희망들도 갖고 있는데, 그런 점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통일문제 전문가로서 목사님께서 좀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홍정길> 역사의 진행은 내가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뭔가?
지금 제가 가평 거기서 은퇴마을 지으면서 옆에 두 칸짜리 조그마한 집을 짓고 지금 살고 있습니다. 이제 밭이 이렇게 크거든요. 내 몸에 맞도록 형제들이 한 1천 평 정도 밭을 하나 옛날에 팔 1천만 원 주고 사놓은 것인데 형제들이 모두 돈을 내서. 그런데 내가 지금 거기 있기 때문에 풀 뽑는 것을 합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끝을 보면, 기가 차서 못하겠어요. 그런데 그날은 내가 뽑을 수 있는 것만 보고 맙니다. 며칠 지나면 다 뽑았더라고요. 그런데 전체를 보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보다 내가 눈앞에 뽑을 수 있는 걸 뽑아 가면 되는 걸 발 앞에 있는 잡초는 안 보고 멀리 있는 잡초 걱정해서 안 뽑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잡초를 뽑을 때마다 늘 기도하는 마음이 되는 것은 ‘주님, 내 마음의 잡초도 뽑을 수 있게 은혜 달라’고 기도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어야 돼요. 모두들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통일은 그렇습니다.
자, 이씨 왕조, 그 다음에 식민지, 그리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왕이 없는 시대 총통이 없는 시대에 새로운 국가 건설했습니다. 북은 북대로 자랐고, 남은 남대로 자라서 이념으로 갈렸습니다.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 외에는 합의점이 없습니다. 완전히 서로 단절된 두 섬으로 이렇게 자랐어요. 그러면 다리를 놔야 돼요. 그것을 이으려면.
제가 김영삼정권부터 시작해서 박근혜정권까지 보면서 92년부터 남북 나눔을 했으니까 각 정권에 통일에 대한 관심들이나 또 통일에 대한 접근을 거의 봤습니다. 저는 이제 또 밖에서 보니까 아마 안에서는 더 절실하고 좋은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피상적으로 보는 내게 이게 딱 문제더라고요. 모두들 자기 시대에 통일대통령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또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봐도 이 근대사에 통일 성업을 이룬 대통령은 역사에 가장 큰 일 한 겁니다. 역사의 숙원을 해결했기 때문에 정치가로 욕심 낼만 합니다. 문제는 그 분들이 하는 일은 마지막 상판을 깔 생각하지, 어떤 사람은 상판도 말고 테이프 커팅하기 위해서 가위만 준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각을 세워야 돼요. 교각을 세우려면 그 밑에 그 교각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조약돌이 옆에 필요해요.
◇권혁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라?
◆홍정길> 그럼요.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권혁률> 긴장상황이라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들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홍정길> 안 보이죠. 마지막 상판 깔 생각하니까 거기에 매료돼가지고, 발 앞이 안 보여요.
◇권혁률>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 좀 해주시겠습니까?
'신학'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홍정길> 예수 잘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 안 믿는 것 같아요. 예수 믿으면, 어떻게 교회에서 비리가 이렇게 많습니까? 신학은 믿는지 모르겠어요. 예수님은 생명체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내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에요. 그분이 없는 예수교 안 됩니다. 그 말씀이라는 것도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 믿거든요. 예수 믿는다고 할 적에, 예수의 무얼 믿습니까. 예수님의 인격을 믿는 거예요. 인격을 믿는다는 구체적인 표현은 그 말을 믿는 겁니다. 이런 말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참 믿을만한데, 말을 못 믿겠다’ 아니에요. 인격자라 하면요. 자기 말에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권혁률> 실제로 말과 삶이 일치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정말 종교개혁 정신을 살리는 거다?
◆홍정길> 그거죠. 바로 그거죠. 나중에 얘기를 하자면요. 종교개혁은 개혁주의는 없습니다. 개혁은 무브먼트지, 무슨 주의가 있어요. 그런데 개혁을 시켰습니다. 가령 경제문제에 말씀이 실제화되는 것은 청지기 정신이에요 개혁자들이 청교도로서 살면서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고, 맡겨주신 선물이고, 우리는 청지기라고 그랬습니다. 이 말 한마디, 이것이 실제였습니다. 그 전에는 사실은 이 청지기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 얘기였어요. 그것을 개혁자들이 그 말씀을 실제화 시킨 것이 세계 경제 역사를 바꿨습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하고 자본주의는 그 맥락의 얘기라고 나는 그렇게 봤어요.
정치, 왕이 없는 시대가 됐단 말이에요. 그래서 미국에서 남북 전쟁할 때에 유럽의 지성인들은 걱정했습니다. 뭘 걱정했는가 하니 왕이 없는데, 어떻게 질서를 갖는가. 그럴 것이 크롬웰이 청교도혁명 했는데 그 아들이 총통됐다가 유야무야 사라졌고요. 또 프랑스혁명이 됐다가도 결국은 다시 그 왕정으로 바뀌어갔고. 실패합니다. 그래서 그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자란 더 유능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지 워싱턴이 농사꾼으로 있다가 전쟁에 능해서 장군 됐고 순박했던 그 사람이 자기 교회에서 살았던 삶을 정치에 인용을 했습니다. 그건 무엇인가 하면, 그 교회는 원래 개혁교회는요. 3년이라고 1년 안식년하고 재신임투표를 했습니다. 우리 한국만 안 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대로 했거든요. 처음에 그 미국사람들이 독립해서 마음으로 왕을 뽑았습니다. 왜냐면 대통령이라는 제도가 역사상 없었으니까. 그래서 왕이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나는 왕이 아니라’고 그래요. 그런데 자기 임기를 그렇게 했는데 자기 살았을 때는 총통하라니까 두 번하고 일어서버린 것이 민주주의 선거 제도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말하니까 쉽죠. 누구든지 권력 잡으면 죽어라고 안 놓으려는 인간 본능이 있는데, 그 사람은 순박하게 그 교회법 안에 순종해서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주민제의 토대가 돼 줬단 말이에요.
자, 노예 제도. 노예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었던 때가 없던 당연화 된 시절, 그것이 에너지원의 대부분일 적에 윌버포스가 ‘히랍인이나 유태인이나 노예나 자유자나 차별이 없느니라’. 차별이 없다. 그 단어를 실제화 시킨 것이 노예제도 폐지입니다. 이것은 세계역사에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래서 이제 기계를 발달시키게 되고, 산업사회가 되어져서 그것 때문에 영국이 덕도 엄청 본 것이죠.
"노예 폐지주장이 믿음이고 개혁"그 전에는 노예 데려다가 일 시켰기 때문에 기계의 필요가 그렇게 절대적이지 않을 때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단어 한 마디가 실제가 되어져야 돼요. 그 실제가 안 돼도 무방했다고 증거가 되는 것은 그가 노예제도 폐지할 적에 매국노라 그랬습니다. 영국에서 그 사람처럼 욕을 많이 먹은 사람이 없어요. 암살 위협도 많이 당하고. 그런데 성경이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노예제도의 폐지는 아브라함 링컨이 아니라 윌버포스거든요. 윌버포스 없이 그 다음에 50년 후에 그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제도를 한 국가에서 정식으로 전쟁을 통해서 종식을 시킨 거죠.
또 사실은 코메니우스가 보헤미안 전쟁 때요. 그분들이 고아들이 많이 생기니까 코메니우스 목사가 고아들을 모아가지고 살면서 교육 문제가 대두됐어요. 그런데 그 분이 이 말씀을 그대로 붙잡습니다. 에베소서하고 골로새서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 전에는 세계 모든 나라가 유럽에서는 특별히 수도원에서 교육, 누구든지 공부하는 것 싫어하지 않아요? 귀족들의 아들을 데려다가 매를 때리면서 교육시켰습니다. 우리는 서당에서 매를 때리면서 교육 시켰고, 중국도 세계가 다 그랬어요.
그런데 이 분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했던 것이 현대교육의 효시입니다. 그걸 우리는 한국 사람은 페스탈로치라고 그러는데, 페스탈로치는 한참 뒤의 사람이에요. 그래서 말씀이 실제화 됐을 적에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한 가지 참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서 개혁해서 만들어진 개념들은 알고 있는 사람은 발전시켰는데, 교회는 거기에서 퇴보했습니다. 말씀 안 지켜요. 오직 말씀 해놓고, 개신교처럼 말씀 안 지키는 사람들. 그러니 이렇게 실제가 없으면 사라지지요. 그래서 가장 큰 반란은 자식들의 반란입니다. 우리 청년들의 반란이고. 그래서 기독교를요. 파리에서 어떤 분한테 들으니까 청년들 와서 같이 데리고 다니다가 같이 교회 가자고 그랬더니 ‘교회요? 그건 혐오집단입니다’ 딱 그러더래요. 실제가 없단 말이죠. 실제 찾아내지 않으면, 예배당 크게 짓고 아들에게 물려줘봐야 헛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실제로 성도들의 삶 속에서 가령 정치 분야에는 선거를 통해서, 또 경제 분야는 청지기라는 단어가, 또 교육은 노엽게 하지 않는 주의 교훈과 훈계의 양육, 그리고 사회 분야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느니라’ 그래서 노예제도 폐지, 사실은 여성과 남녀평등도 오랜 기간 동안에 교회에서 가장 먼저 주장한 거죠. 다시 이처럼 실제를 우리 삶의 현장에서 찾아갈 때에 역사의 엄청난 자양분이 돼 주고, 축복의 통로가 될 줄로 그렇게 믿습니다.
◇권혁률>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홍정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