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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쌀값이 연일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농민들은 추가 상승을 기대해 아예 수확한 벼를 내놓지 않고 꽁꽁 쟁여두고 있다. 전국의 농협과 민간 RPC(미곡종합처리장)들은 벼 수매가를 지난해 보다 20% 이상 올리는 등 벼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이른바 명품 쌀로 인정받아 비싼 값에 판매됐던 브랜드 쌀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됐던 일반계통의 쌀값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결국,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이나 단체급식 업체 등에 들어가는 포장 쌀의 납품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어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래저래 서민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유명 브랜드 쌀, 벼 수매가 동결…소비자가격은 인상…대형마트 폭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쌀 브랜드는 전남의 ‘한눈에 반한 쌀’과 경기의 ‘임금님표 이천쌀’, 강원 ‘철원 오대쌀’ 등이 손꼽힌다.
이들 브랜드 쌀은 추청(아끼바리)과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 등 일본 품종이 주종을 이루고 국내 품종 가운데는 오대미가 있다,
‘임금님표 이천쌀’을 공급하는 이천지역 10개 농협은 올해 벼 40kg 수매가를 6만1천원(쌀 80kg으로 환산할 경우 18만원)으로 지난해 가격으로 동결했다.
또한, 철원 동송농협의 ‘철원 오대쌀’도 올해 벼 40kg 수매가가 지난해와 같은 5만4천원(쌀 80kg 기준 16만원)으로 결정됐다.
동송농협 관계자는 “작년에 벼 수매가를 워낙 높게 책정해 오히려 적자를 봤기 때문에 올해는 작년 가격에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해남 옥천농협은 ‘한눈에 반한 쌀’의 올해 벼 수매가격이 5만4천원에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4만6천원 보다 17% 가량 인상된 가격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국내에서 최고가에 판매되는 브랜드 쌀의 올해 벼 수매가가 동결됐거나 적정 가격으로 상향 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격은 크게 올랐다는 점이다.
지난 2일 A마트 매장에서 이른바 브랜드 포장 쌀의 소매가격은 10kg 한 포대에 3만5천~3만8천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임금님표 이천쌀’의 경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벼 수매가가 동결됐지만 쌀 10kg 소비자가격은 지난해 3만2천800원에서 올해는 3만4천800원으로 6.1% 인상됐다.
철원 오대쌀은 10kg 소비자가격이 지난해 2만9천800원에서 올해는 3만1천800원으로 6.7% 올랐다.
농협과 대형마트 등 유통 상인들이 포장비와 물류비 상승을 감안해도 중간에서 이윤을 그만큼 많이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이마트 관계자는 “쌀 소매가격이 전체적으로 10% 이상 오른 것은 올해 산지 쌀값이 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이는 결국 국내 쌀 시장이 올해 산지 쌀값 상승을 빌미로 중간 유통단계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일반계 품종의 중저가 쌀…소비자가격 20% 이상 인상…서민 부담 증가
(사진=전북CBS 이균형 기자/자료사진)
문제는 이들 명품 브랜드 쌀 보다 신동진과 삼광, 조명1호 등 그동안 서민들이 많이 찾았던 일반계 품종의 쌀이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조명1호 품종인 ‘해남 쌀이야기’의 경우 올해 벼 수매가격이 40kg에 4만6천원(쌀 80kg 환산가 13만8천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3만7천원(쌀 80kg 환산가 11만원)에 비해 24% 정도가 오른 가격이다.
이렇다 보니 이 쌀은 지난해 이맘때 대형 마트에서 10kg에 2만2천800원에 판매됐으나 올해는 22%나 급등한 2만7천8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전북 새만금 신동진쌀은 10kg 소매가격이 지난해 2만2천800원에서 올해는 2만8천800원으로 26% 폭등했다.
명품 브랜드 쌀의 가격 인상폭이 6~7%인 반면 서민들이 주로 구입했던 일반계 품종의 쌀은 가격 상승폭이 20~30%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기준 일반계 햅쌀(20kg)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4만1천949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만8천479원에 비해 9%나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일반계 햅쌀 가운데 최저가가 지난해 3만4천400원에서 올해는 3만9천원으로 13.4%나 급등했다. 가격이 저렴한 저가미일수록 상승폭이 훨씬 크다는 얘기다.
곡물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김진석(62세) 대표는 “고품질 브랜드 쌀의 경우는 그동안 소비자 가격이 10kg 한 포대에 3만원 초중반대에 판매돼 소득 상위계층이 주로 소비했던 게 사실이다”며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도 시장의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임금님표 이천쌀의 경우 연간 판매물량이 10kg 한 포대 기준으로 320만 포대, 청원 생명쌀은 70만 포대, 해남 한눈에 반한 쌀은 45만 포대 정도로, 판매 수량이 한정돼 있다.
김 대표는 “하지만, 일반계 품종의 쌀은 지금까지 10kg 한 포대에 2만원 초반 대에 판매돼 중산층 서민들이 주로 구입했는데 이 게 브랜드 쌀과 별 차이가 없는 2만원 후반대까지 오른다면 아무래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국내 쌀 소매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의 중저가 쌀이 사라지고 값비싼 고가미만 존재하면서 서민들의 가계부담이 그만큼 커지게 됐다는 얘기다.
◇ 영세식당, 단체급식소 쌀 구입원가 상승…공깃밥 인상 불가피그동안 일반계 품종의 중저가 쌀은 식당이나 학교, 군부대 등 단체급식소에서 주로 소비됐다.
그런데, 이런 중저가 쌀마저 가격이 오르면 식당이나 단체급식소 등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식당에선 밥값을 올리고 단체급식소는 급식비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농협 관계자는 “20kg 일반계 쌀의 경우 지금까지는 보통 3만5천원 정도에 대형마트 등 소매점에 납품했지만 수매가가 올랐기 때문에 이 가격으로는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납품가격을 지금보다 최소 2천원에서 4천원 정도는 올려야 한다”며 “그런데 대형마트와 급식업체들이 아직까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마트는 최근 백미를 제외한 찹쌀과 현미, 흑미 등 일반 곡류에 대한 납품입찰을 실시했다. 이에, 그동안 롯데마트와 거래해 왔던 납품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aT 기준가격의 70%가 조금 넘는 덤핑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aT가 공개하는 찹쌀 도매가격이 1톤에 200만원 이라면 70%인 140만원 보다 조금 웃도는 선에서 납품을 하겠다고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곡물유통업계 관계자는 “산지 쌀값이 오르면서 찹쌀이나 콩, 수수 등 다른 잡곡류 가격도 오르고 있다”며 “결국 롯데마트가 곡물가격이 오를 것에 대비해 미리 낮은 가격에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꼼수를 쓴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올해는 농민과 대형마트는 손해 볼게 전혀 없고, 농협이나 민간 중개인 등 중간 유통 상인들과 영세 식당, 애꿎은 서민들만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