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사진=유튜브 캡처)
초대형 투자은행(IB)이 1년 짜리 어음을 발행해 대규모로 돈을 모을 수 있게 되고, 절반은 기업에게 쓰게 되면서 금융계 안팎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같은 초대형 IB를 육성하기 위해 '발행어음'을 취급할 수 있는 ‘단기금융업무’를 허용하기로 하고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KB증권을 대상자로 인가절차를 진행중이다.
이 중 한국투자증권이 먼저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거쳐 증권선물위원회를 통과한 뒤 오는 13일 금융위 최종 의결만 남겨 뒀고, 나머지 3개사에 대한 심사는 계속되고 있다.
삼성증권도 인가 신청을 냈지만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어 대주주 적격성을 따져 보기 어려운 데 따라 금융당국이 심사를 보류한 상태다.
초대형 IB가 인가를 받아 취급하게 되는 '발행어음'은 만기가 1년 이내인 어음으로 자산규모의 2배까지 자기 신용으로 발행하게 된다.
이 발행어음은 원리금을 보장해 주는 일종의 금융상품이고, IB는 신용등급 평가비용 등이 들어가는 회사채 보다 자금 조달 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은행권 등의 다른 금융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시할 수 있어 자금을 모으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초대형 IB들은 발행어음으로 모은 자금 가운데 절반은 기업에게 운용하고 나머지는 부동산(30%) 등에 운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투증권에 이어 3개사가 발행어음을 취급할 수 있게 되면 산술적으로 32조 원 규모(자산 4조*2배*4개사)의 발행어음 시장이 열리게 된다.
또 이 가운데 절반인 16조 원 가량이 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증권 인수, 펀드 투자, 코넥스 주식 취득 등으로 할용할 수 있는 기업금융의 재원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벤처·혁신 기업들로 풍부한 ‘모험 자본’이 흘러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골드만 삭스와 같은 초대형IB는 ‘우버’나 ‘배달의 민족’과 같은 혁신적이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한 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투자 수익 회수뿐 아니라 기업공개(IPO) 지원, 경영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익을 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초대형IB들도 이런 역할을 하도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금융연구원 김영도 자본연구실장은 최근 ‘금융브리프’에 쓴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의 역할 강화’라는 글에서 “초대형IB의 경우 신규 자금조달 수단 허용이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여신을 허용했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초대형IB 인가정책의 초점은 이미 성장한 기업이 아니라 사업초기의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활성화에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정책목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 및 재검토를 위해 ‘초대형IB 혁신성 평가’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으론 기업 금융 규모가 커지면 금융투자회사(증권사)들로서는 그만큼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에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윤석헌 위원장은 지난달 11일 금융위 혁신을 위한 1차 권고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초대형 IB에 기업 대출을 허용하는 것이 과연 IB육성에 도움이 될까 하는 게 기본적으로 위원들이 갖고 있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는 은행의 중요한 업무를 (금융투자회사에) 넘겨 주는 것”이라며 은행이 상대적으로 강한 자기자본 규제를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그러나 “위원회에서 굳이 이건 잘못됐다고까지 할 수는 없다”며 다만 “기업 금융이 갖고 있는 위험노출 가능성에 대해선 사전적으로 짚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초대형 IB 육성을 목표로 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자기자본 규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금융위는 초대형 IB 육성을 위해 단기금융업무 인가를 허용하기로 하면서 이미 관련 법규에 건전성 강화 방안을 충분히 반영해 둬 추가적인 조치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 5월 9일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감독 규정을 개정하면서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등 이번 단기금융업무 인가와 관련해 초대형 IB의 건전성 감독 강화 조치는 제도적으로 완비했다”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초대형IB들이 기업금융 규모가 확대되는데 따라 높아지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을 갖춰 나가야 하고, 우량 기업 발굴과 육성, 창업 지원,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등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