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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수원 감독이 '유리정원'에서 벌인 실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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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신수원 감독이 '유리정원'에서 벌인 실험들

    공존이 사라진 사회 그리고 결핍된 인간들의 이야기

    영화 '유리정원'을 연출한 신수원 감독.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영화 '유리정원'의 과학도는 신수원 감독을 닮았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세계를 개척해나간다. 그것은 때로 무모해 보이지만 귀중한 결과물로 남았다. 한국 교육 현실을 비판한 영화 '명왕성'이 그러했고, 권력에 짓밟힌 여성들이 연대해 나가는 영화 '마돈나'가 그러했다.

    이번에 신수원 감독은 '나무가 된 인간'이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통해 순수한 생태계를 훼손하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편견에 가려 점점 공존의 개념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그가 보내는 메시지다.

    "'마돈나'에서 결핍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를 한다면 '유리정원'에서 소설가 지훈은
    과학도 재연의 공간을 파괴하고 돌이킬 수 없게 만든 다음에야 참회를 하죠. 예술가로서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창작이 어떤 도덕의 수위를 넘어서는 순간 범죄가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요. 우리가 믿는다고 생각하는 게 과연 무엇일까. 편견 안에서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고 한 것이 아니었나. 전 엽록체로 된 인공혈액을 연구하던 과학도 재연도 결국 그 피해자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의 주인공은 과학도 재연이다. 그는 어딘가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에 익숙하지 않아 그의 속성은 나무에 더 가깝다. 자신이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인간에게 상처받기 전, 재연은 언젠가 엽록체로 인공혈액을 만들겠다는 짙푸른 꿈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자연이 인간화한 것 같은 재연의 순수함이 훼손당하자 상처는 슬픈 광기로 변한다. 투병생활 끝에 돌아온 배우 문근영이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마지막 숲 장면을 먼저 찍었거든요. 그 이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촬영을 했는데 (문)
    근영 씨가 헤어 나오지를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소설가 지훈 역의 김태훈 씨 촬영을 먼저 했던 게 생각이 나네요. 문근영 씨는 굉장히 몰입이 잘 되는 배우거든요. 촬영을 하면 그 안으로 자기가 들어가는 게 느껴져요. 배우들 촬영할 때 제가 막 모니터를 보면서 즐거워한대요. 스태프들이 그게 다 티가 난다고 했어요. 아, 이제 감독님이 오케이를 하겠구나."

    영화 '유리정원' 스틸컷. (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나무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갖가지 나무줄기들, 재연의 벗이자 가족과도 같은 커다란 고목나무 그리고 나뭇잎들이 바람을 따라 흩어지는 소리까지도 마치 인간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 나무들이 함께 서식하는 숲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다.

    "고목나무는 CG로 만들었어요. 아무리 찾아다녀도 그런 게 없더라고요. 숲도 마찬가지였어요. 겨우 장소 헌팅을 하고 우리 제작부장이 거기 한 일주일 살았어요. 거기 주민들도 모르는 공간이었는데 굉장히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 장소가 공개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삶의 터전이니까요. 우포늪과 비슷한 습지였는데 유명해져서 개발이라도 되면 홍수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거든요. 다른 한 곳은 대학교의 학술림이었어요. 그렇게 장소를 옮겨서 찍으니까 배우들이 진짜 힘들었는데 다행히 걷는 장면밖에 없었죠. 그 나무들이 숲에 있었기 때문에 영화 전반에 흐르는 신비한 분위기가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신수원 감독은 영화의 후반부를 '미저리'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숲 속에서 재연이 거주하는 공간 자체를 유리온실처럼 설정했고,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내리면서도 최대한 '사이코패스적' 광기에서 멀어지도록 당부를 했다. 그래서 관객이 지켜보는 재연의 광기는 어딘가 처연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영화 '미저리'처럼 가면 안될 것 같아서 영화를 봤어요. '미저리'는 감금을 하고 학대를 하는 영화죠. 제 영화 스타일이 그렇지는 않고요. 만약 유리온실이 아니라 통나무집이었다면 굉장히 분위기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문근영 씨에게도 광기를 보여주되 사이코패스 같은 광기는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차이점은 그거 같아요. '미저리'가 자신의 욕망 때문에 남자를 감금한다면 재연의 욕망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험에 있죠. 100년이 걸려도 그걸 해내겠다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려지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신념대로 했던 연구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 분명히 있지만요. 김태훈 씨에게도 극단적으로 가면 안된다는 주문을 했어요. 중요한 건 일반인들도 우리가 충분히 저럴 수 있겠다는 걸 느껴야 됐거든요."

    영화 '유리정원' 촬영 현장. (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

     

    '마돈나'부터 '유리정원'까지 신수원 감독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결핍을 가진 인물들이다. 신체적 결핍, 경제적 결핍, 정서적 결핍. 소위 우리 사회에서 '루저'라고 하는 이들이 그의 영화를 이끌어간다. 신수원 감독이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재연도 '마돈나'의 미나처럼 어느 순간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루저'로 전락한 인물인 것은 맞아요.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소설가 지훈 캐릭터가 아닐까 하네요. 소설가는 불안한 직업이거든요. 그런 인물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생각했어요. '마돈나'에서처럼 절대 권력을 가진 악인이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다만 지훈 같은 보통사람도 얼마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거죠. 자신보다 더 약한 상황에 있는 여성의 삶을 훔치면서, 마치 숲의 약탈자라고 할까요. 스스로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가 되는 상황을 그리기 위해 그런 결핍 요소를 만들었어요."

    사회 고발 영화로 시작했던 그가 이제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까지 왔다. 신수원 감독의 다음 여정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건 '세대 갈등'이라는 소재다.

    "제가 나이가 좀 있잖아요. 저 같이 나이 많은 사람, 즉 기성세대 중 가부장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뭔가 새로운 세대와 갈등을 빚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대형 상업 영화 같은 건, 또 만약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데 그게 자본이 많이 필요해서 투자를 받는다면 하게 되겠죠."

    신수원 감독의 이력은 현재 국내 어떤 여성 감독들보다 화려하다. 이미 자신이 연출한 여러 영화들로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애초에 여성 감독이 별로 없는 국내 영화계에서는 주목받는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실 그런 수상을 해서 돈을 엄청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 전혀 아닙니다. 이번에 취재할 때 알게 된 건데 영화하는 감독들이나 연구생들이나 비슷하게 힘들더라고요. 정말 7년, 길게는 10년 정도 연구해도 교수가 못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국가 지원을 못 받으면 기업에서 지원을 끌어오기도 해요. 아니면 랩이 해체되고 거기에 있던 연구생들은 한 순간에 실직자가 되는 거죠. 그러다가 하고 싶은 연구 포기하고, 생계 때문에 기업체로 가는 친구들도 많고…. 영화하는 사람들이랑 비슷하더라고요. 보장된 삶이 아니잖아요. 한 연구생이 저한테 이렇게 물어봤어요. 감독님은 어떻게 영화를 찍고 있느냐고요. 부럽다고 하는 거예요. 불안감에 시달렸었고 오래 걸렸다고 이야기했어요. 저도 '유리정원' 만들기 전까지 시나리오 완성해 놓았는데 결국 투자 못 받고 엎어진 작품이 두 개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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