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 이틀째인 8일 국회를 찾아 연설을 마친 뒤 여야의원들의 박수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화답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1993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이후 24년만이다. (사진=윤창원 기자)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국회에서 한 연설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 그리고 전세계에 위협이 되는 핵.미사일 개발에 나선 북한에 대한 비판 두 가지로 요약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확대 정상회담에서와 마찬가지로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며 한국을 치켜세우고 북한을 맹비난하는데 연설 시간 대부분을 사용했고, 특히 '비즈니스맨' 특유의 미국 우선주의도 노출하지 않으면서 한국 의회 존중 의사를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초반 6·25 전쟁터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에 엄중대응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6·25 전쟁 이후 문민정부 출범과 금모으기를 통한 외환위기 극복, 전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졸업율 등 한국의 역사를 꼼꼼하게 짚으며 한국이 전세계 강국의 반열에 오른 것을 축하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분의 손으로 이룩한 나라가 금융위기에 처했을 때 여러분들은 수백만명씩 줄을 지어 가장 값나가는 물건들을 기꺼이 내놨다"며 "소중한 반지와 가구, 황금, 행운의 열쇠를 내놓으며 미래를 담보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극찬했다.
또 "여러분의 부는 단순한 금전적 가치 이상"이라며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과학자와 공학자들도 너무나 많은 훌륭한 것들을 발견해냈다"고 추어올렸다.
한국 출신 여자 프로골프 선수들이 세계 4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고, 특히 박성현 선수가 올해 미 뉴저지에서 열린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한 곳이 '트럼프 골프코스'라고 말할 때는 익살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극찬은 북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악의 북한 인권 상황과 독재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한반도에는 하나의 민족, 두 개의 한국이 있고 한쪽에서는 자유와 정의, 문명과 성취의 미래를 선택했지만, 다른 한쪽은 부패한 지도자들의 압제 하에 자국민들을 감옥에 가두고 있다"고 비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한반도 주변에 전개된 핵추진항공모함과 최신예 미 전략자산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도발에 힘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위대한 동맹인 한국을 극찬하고 대신 북한의 반인권적 행태를 부각하면서 한국을 예우하는 모습을 연출한 셈이다.
(사진=윤창원 기자)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제이익을 강조하는 등의 돌출행동을 하지 않았다.
한국을 방문하기 전 일본을 먼저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미국산 무기 구매와 무역적자 해소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비즈니스맨'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지만, 이날 국회에서는 한미FTA와 방위비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 연설 초반에 "어젯밤 문재인 대통령 내외는 청와대의 멋진 연회에서 극진히 환대해줬다. 우리는 군사협력 증진과 공정성 및 호혜의 원칙 하에 양국 통상관계를 개선하는 부분에서 생산적 논의를 가졌다"고 언급한 게 전부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와는 달리 국회에서는 한미FTA를 비롯한 통상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한미 동맹에 대해 연설시간 대부분을 할애하면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현재 (한미간) 협정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미국에는 그렇게 좋은 협상은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 역시도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한 수준이어서 압박의 강도가 쎄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전날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핵추진잠수함과 정찰 자산 도입 등 미국의 중장기 무기 구매 계획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 등 민감한 부분 언급을 자제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