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한 뒤 뇌종양이 발병해 숨진 노동자에게 "업무와 발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상당하다"며 재판을 다시 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퇴직한 지 7년이 지난 다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지만, 뇌종양은 발암물질 노출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흐른 뒤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까지 고려한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고 이윤정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요양을 불승인한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고3이던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온양사업장 반도체 조립라인의 검사공정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다 2003년 퇴사했다.
3교대 근무를 하며 인력이 부족하거나 생산물량이 늘어난 경우 하루 12시간씩 연장근무를 하기도 했다.
퇴직 후 자녀 2명을 낳아 기르던 이씨는 2010년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고, 뇌종양 제거수술 뒤 항암치료를 받다가 2년 만에 숨졌다.
1심은 이씨가 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고 당시 역학조사가 화학물질 일부에 대해서만 이뤄졌다며 산재를 인정했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받은 첫 판결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심은 "위험‧노출 정도가 높지 않고, 뇌종양은 몇 달 만에 급격한 성장을 하는 특성이 있는데 퇴사 후 7년이 지나 진단을 받은 점 등에 비춰 업무와 발병 사이 인과관계가 상당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1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씨가 6년 넘게 근무하면서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납, 비전리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발암물질의 측정수치가 노출기준 범위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장기간 노출되거나 주‧야간 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에는 건강상 장애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 이씨가 입사 전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뇌종양과 관련돈 유전적 요인이나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다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른 만 30세 무렵에 뇌종양이 발병된 점도 대법원 판단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산업현장에서 상시적으로 노출허용기준 이하의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노동자에게 희귀질환이 발병한 경우에는 보다 전향적으로 업무와의 관계를 인정해 산재요양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지난 8월 판결과 취지가 같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8월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을 얻은 노동자에게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지난 8월 사건과 달리 근로자가 회사를 퇴직한 뒤 7년이 지난 다음 뇌종양 진단을 받았는데도, 뇌종양의 경우 발암물질 노출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