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아이를 더 낳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아이나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원합니다. 제 아이처럼 이렇게 허망하게 가는 아이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경사진 주차장에 허술하게 주차한 SUV가 덮쳐 3살 하준이 사망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달 1일 친정집을 찾은 하준이(3) 엄마 A(36)씨는 남편과 함께 하준이와 하준이 여동생을 데리고 인근에 있는 경기도 과천의 한 놀이공원을 찾았다.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남편은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는 중이었고, A 씨는 하준이의 손을 붙잡고 아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SUV 차량 한대가 10여m를 내려와 이들을 덮쳤다. A 씨는 차량을 밀며 소리를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준이는 차량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려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태어난지 46개월만이었다.
경사가 있는 주차장에 차량을 허술하게 주차한 게 문제였다. 변속기 기어를 'P' 위치가 아닌 'D'에 둔 채 시동을 껐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이드 브레이크도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 "제2의 하준이 없도록"…경사진 주차장 안전장치 의무화 국민청원이날의 충격 탓에 A 씨는 친정에 머물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하준이와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경남 창원의 집에는 도저히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경사진 주차장에 주차 방지 턱이라도 있었음 어땠을까?", "경사진 주차장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반드시 채우라는 안내문이나 안내방송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A씨는 하준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제2의 하준이가 생기지 않도록 경사진 주차장에 대한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법적 마련을 정부에게 요구하기로 했다.
A 씨는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경사진 주차장에 경고문구 의무화와 자동차 보조제동장치 의무화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청원 글을 올렸다.
A 씨는 "경사진 주차장 특히 아이들이 많이 있는 마트와 놀이동산등 다중이용시설 주차장에는 사이드 브레이크나 제동장치에 대한 안내문과 방송 등이 법으로 의무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자동차 사이드 브레이크나 제동장치로 인한 사고 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제동장치 풀린 차량에 숨지는 아이들…관련 법안은 계류하준이가 있는 납골당은 지난해 용인 어린이집 앞에서 제동장치가 풀려 미끄러져 내려오던 차량에 치여 숨진 5살 해인이도 영면해 있는 곳이다.
A 씨는 "지금 제 아이가 있는 납골당에는 사이드 브레이크로 인한 사고로 천국에 간 아이가 또 있다"며 "주행하는 차 말고도 주차되어 있는 차도 피해야 되는 세상이 정상입니까?"라고 호소했다.
최근 비탈길에 주차된 자동차가 제동자치를 하지 않았거나 풀리면서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관련 법안도 발의된 상태지만 계류중이다.
민홍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월 운전자가 비탈길에 차량을 주·정차 시 미끄럼 방지조치를 하도록 의무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운전자가 비탈길에 차량을 주·정차할 때 미끄럼 방지조치를 할 의무가 없는 현행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운전자가 안전 조치를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민 의원은 "현재 이 법안은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라며 "다음 주부터 법안 심사를 시작하니까 당 간사를 통해 통과가 되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핸들을 꺾어 놓는다던지 운전자 안전조치 의무화가 간단한 문제인데, 안타까운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A 씨의 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6517)은 14일 오후 3시 현재 3만 6천여 명이 서명을 한 상태다. 한 달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선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공식적인 답변을 하도록 돼 있다.
A 씨는 엄마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까페 등에 청원 서명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고 있으며, 거동이 힘들지만 소아과나 부모들이 많이 찾는 곳에서 서명 동참을 요청할 계획이다.
A 씨는 "어디선가 똑같은 사고가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제가 힘들어도 잊혀지기 전에 뭔가를 해 보는게 낫지 않나 생각이 들어 청원하게 됐다"고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