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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에 멈춰선 베트남 학살…공식사죄 언제쯤?



사건/사고

    '마음의 빚'에 멈춰선 베트남 학살…공식사죄 언제쯤?

    [베트남의 눈물④] "책임지지 않는 건 일본과 닮아"…시민법정 열어 학살 규명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 일부는 전쟁과정에서 대규모학살과 성폭행 등으로 민간인 수천 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후 50년이 흘렀으나 생존자들에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며 나아가 희생자 2세에까지 대물림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베평화재단과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가 주최한 '베트남 평화기행'에 동행해 피해의 흔적을 따라가며 가해자로서 한국의 책임 역시 여전하다는 것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움푹 팬 눈에서 눈물 뚝뚝…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그 이후
    ② "적군 핏줄 라이따이한" 한국군 성폭행 피해자의 주홍글씨
    ③ "죄악, 만대(萬代) 기억하리라"…베트남의 '한국군 증오비'
    ④ '마음의 빚'에 멈춰선 베트남 학살…공식사죄 언제쯤?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군 일부가 전쟁 과정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50년 넘도록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는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 한국 정부를 조만간 시민법정에 세울 계획이다.

    ◇ 정부는 어정쩡한 사과, 그리고 침묵

    문재인 대통령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저녁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호찌민-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 영상축사를 통해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며 "그렇지만 이제 베트남과 한국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고 밝혔다.

    1960~70년대 베트남에서 미국이 벌인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벌인 일 등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가해사실에 대한 책임 인정이나 조사·보상 방침 등은 나오지 않았다. 앞서 이날 오후 베트남 쩐 다이 공 수석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이와 관련해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50년 넘도록 구체적 언급을 피해왔다. 그나마 처음 거론한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2001년 방한한 쩐 득 르엉 베트남 국가 주석에게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4년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우리 국민은 마음의 빚이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침묵했고 문 대통령은 이번 발언으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이어갔다.

    ◇ "이건 사과 아냐" vs "그나마 다행"

    지난 6일 밀라이 전쟁박물관 근처에서 '미안해요 베트남' 등의 피켓을 든 평화기행단(사진=김광일 기자)

     

    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공식 사죄' 요구를 이어온 시민사회단체 측은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다. 이번 기회에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로할 수 있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는 "진정한 사과는 인정과 함께 책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많다"며 "베트남을 떠난 뒤 전해진 메시지라 현지에서는 대부분 알지도 못하고, 그러니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베트남 친구가 '이건 사과가 아니다'라고 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돕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고통은 가해자들의 부정이다. 오늘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이, 베트남을 대하는 우리의 거울이 될 수 있다"라며 진전된 사과와 반성 등을 촉구했다.

    윤 대표는 다만 "피해국 정부도, 피해국 사회도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음의 빚'이라는 표현을 던진 건 그나마 다행"이라며 "책임을 인정하고 역사를 제대로 청산한 뒤에야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화기행 참가자 회사원 김모 씨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조직적 체계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에 일단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가해의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건 우리나 일본이나 닮았다"고 일갈했다.

    ◇ 스스로 인정 않는다면, 법정에 세운다

    지난 6월 시민평화법정을 준비하기 위해 베트남 꽝남성 퐁니마을을 찾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57) 씨와 응우옌 티 르엉(78) 씨를 만나 증언을 듣고 있는 준비위 변호사들(사진=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TF 제공)

     

    이런 모습들을 지켜봐 온 시민사회는 어정쩡한 입장을 고수하는 한국 정부에 역사적 참극의 책임을 지우기 위한 법적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30여 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려진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준비위)'는 2018년 4월 서울에서 '시민평화법정'을 개최할 예정이다. 시민법정에서는 하미학살이나 퐁니·퐁넛학살을 경험한 생존자나 희생자 유가족을 원고로, 대한민국을 피고로 심리를 벌인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7. 11. 15 움푹 팬 눈에서 눈물 뚝뚝…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그 이후 등)

    지난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여성 국제전범 법정' 역시 시민법정 형태였는데, 이 시민법정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그 자체로는 법적인 효력이 없지만 준비위 측은 시민법정에 제출된 증거를 바탕으로 실제 법원에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준비위 측은 "피해자들의 절규 앞에 가해자로 지목된 한국이 더 이상 귀 막고 눈 감을 수 없다"며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라 외치는 한국 사회라면, 베트남에 대한 책임 역시 마땅히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 사회가 이러한 책임을 다할 때,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견뎌온 고통에 대해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보상과 예우가 훨씬 무게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전거 지원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사진=1인미디어 '미디어몽구' 제공)

     

    이뿐 아니라 한국군의 학살이 알려진 지난 1999년 이래 민간차원에서는 진심 어린 사과와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 왔다. '나와 누리' 등 전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베트남전 진실위원회'에서 성금을 모금해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 등을 이어온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대표적이다.{RELNEWS:right}

    한베평화재단과 정대협 등은 평화기행 중이던 지난 4일부터 5일까지 베트남 중부에 있는 학교 4곳에 자전거 200대와 장학금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자전거는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꽝남성 하미마을과 빈호아사에 사는 학생들에게 각각 전달됐다. 자전거를 받은 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피해자의 직계 가족이다.

    이들은 또 하미에 설치된 위령비 개·보수 지원금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특히 베트남 중부에 태풍 '담레이'가 덮쳐 60여 명이 숨지고 수만 명이 대피하는 재난이 발생하자 평화기행단과 익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은 긴급 수해복구 지원금을 모아 자선단체에 건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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