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채용비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금융감독원에 대해 정부가 예산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금융당국이 반대 목소리를 일제히 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정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일 금감원이 금융회사들로부터 받고 있는 분담금을 부담금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내용의 '부담금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감사원은 금감원에 대한 감사 결과에서 분담금이 해마다 늘고 수입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늘고 있다며 금융위에 "분담금이 부담금관리기본법의 '부담금'으로 지정되도록 기재부 장관과 협의하라"고 통보했다.
금감원이 받고 있는 분담금은 전체 예산의 80% 가량을 차지하며 금감원 예산은 현재 금융위원회가 통제하고 있다.
이 분담금이 부담금으로 지정되면 예산 통제는 금융위에 더해서 기재부도 통제하게 된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 국회 정무위원회는 검토결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무위의 전상수 수석 전문위원은 지난 14일 김정우 의원의 '부담금 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검토한 결과 "금감원 예산에 대한 통제가 금융위만 아니라 기재부까지로 중복되고, 관치금융의 폐해 가능성에 대한 지적도 있다"고 밝혔다.
또 "이 법안은 정무위의 법안 심사 소위에 계류중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위한 법안들과도 연관된다"며 "기재위의 개정안 심사는 금융위 설치법이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처리 이후로 보류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브리핑실에서 ‘인사·조직문화 혁시 TF 쇄신 권고안을 발표하고 최근 드러난 채용비리 등 금감원 직원들의 비위행위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날 최흥식 금감원장은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금감원이 좀 더 제 역할을 다하고 권한에 맞는 책임을 다 하지 못해 나온 안건인 것 같다"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그러나 "이 문제는 그동안 여러 번 논의가 됐다"며 "금감원이 받는 분담금은 성격이나 방법, 운용 등이 부담금으로 보기 어렵지 않느냐는 의견이 종합됐던 것이다. 분담금이 유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영국과 호주, 캐나다 등 대부분의 해외 감독기구도 분담금으로 예산을 충당해 사용한다"며 이런 방식이 "금감원이 중립적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 자리에서 "기재위의 부담금 관리 기본법 개정은 정무위 수석 전문위원 검토 보고처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금감원 조직, 예산의 실질적 통제가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들로부터 받는 분담금에 대해 금융위나 금감원은 건전성 감독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고, 기재부는 준조세 성격의 부담금으로 봐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문재인 정부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각각 분리하겠다는 입장에서 감독체계개편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 경우 금융감독원은 현 금융위원회의 감독 기능까지 합쳐서 독립적 기구로 운용돼야 한다는 게 학자나 전문가들의 다수 의견이어서 감독기구개편이후에도 예산 통제가 정부에 의해 강도높게 이뤄지면 독립성이나 중립성 보장이라는 정책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