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에서 왕린 역을 맡은 배우 홍종현 (사진=이한형 기자)
지난 7월 17일 첫 방송한 '왕은 사랑한다'는 MBC의 기대작으로 꼽혔다. 임시완-임윤아-홍종현 세 사람의 캐스팅, 원작 소설이 있어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점, 송지나 작가가 각색을 맡았다는 점 등이 주요 포인트로 거론되곤 했다. 무엇보다 세 사람이 보여줄 '사랑과 우정'에 관심이 몰렸다.
고려 제1서열 왕족인 수사공 집안의 셋째아들로 지덕체를 갖춰 주변 신망이 높고, 세자 왕원(임시완 분)을 주군으로 모시는 왕린 역을 맡은 홍종현은 '린공자', '공자님' 등의 애칭을 얻으며 사랑받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주인공은 시완이 형이랑 윤아인데 좀 놀랐다"고 고백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홍종현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난 9월 19일 끝난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의 종영 겸, 그의 데뷔 10주년을 맞아 마련된 자리였다. 본격적인 로맨스 연기를 선보였던 최근작 이야기부터 물었다.
◇ 결국 '산'과 이루어진 '린'… "저랑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왕은 사랑한다' 원작 소설은 사랑의 화살표가 분명했다. 산(임윤아 분)과 린을 모두 사랑하는 원, 린을 사랑하는 산, 산을 사랑하는 린. 물론 린과 산도 각각 원을 좋은 벗이자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였지만, '쌍방 간 애정'은 린-산의 몫이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의도적으로 산의 감정을 오랫동안 숨김으로써, 누구와 맺어지는지에 대한 확답을 좀처럼 주지 않았다. 산은 원, 린 모두와 각별하고 소중한 인연으로 엮여, 누구와 이어진다고 해도 그 나름의 이유를 댈 수 있을 정도였다.
'왕은 사랑한다'에서 맺어진 은산(임윤아 분)과 왕린(홍종현 분) (사진=MBC 제공)
산 역을 맡았던 임윤아는 마지막회 대본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사랑의 대결에서 승자는 린이었다는 말에 홍종현은 "원작대로 가긴 했죠"라며 웃었다.
그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여쭤봤을 때 감독님이 '린이랑 될 거야'라고 하셨다. 나중에 물어봤을 때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궁금해 하라고. 그래서 저도 긴가민가하긴 했다. 그때 '어, 바뀌나? 에~ 설마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상은 했다. 저랑 되지 않을까 하고. 대본 한 부 한 부 나오고 끝을 향해 달려갈 때, 막판까지 (이야기가) 계속 왔다갔다 해서 확신은 못했다"면서도 "누구랑 연결되는지를 굳이 알지 않아도 충분히 연기할 만한 상황이어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서 속 깊고 다정한 왕린 역을 맡은 홍종현은 원래 본인도 다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임시완, 임윤아와 붙어 다니는 동안 극중에서처럼 잘해주었더니 임윤아가 "생각보다 되게 다정하게 잘 대해준다"고 하자, 그는 "(그런 다정함이) 없진 않았어"라고 답했다며 미소 지었다.
◇ 캐릭터 분석법은 '무조건 많이 적기'은산-왕원과의 러브라인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긴 했으나, 왕린은 일관되게 충직함을 유지하는 개인의 '특별함'도 부각되는 캐릭터였다. 자신이 모시는 군주가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애써 밀어내려고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의리남' 캐릭터를 연기하며 자신 안에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게 있느냐는 질문에 "원래 (그런 면을) 갖고 있어요. 의리 없지 않아요"라고 말해 주변을 폭소케 했다.
홍종현은 "외모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시니컬한 캐릭터들이 많이 들어와 이번 작품에 되게 애착이 많았다"며 "친구를 위해 희생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내던지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좋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차 "원래 의리 있어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왼쪽부터 홍종현, 임윤아, 임시완 (사진=MBC 제공)
뜻하지 않게 권력의 암투에 휘말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무술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깊은 신뢰를 받지만 누군가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되는 왕린. 복합적인 캐릭터였음에도, 제작발표회, 기자간담회, 이후 V앱 라이브 등에서 만난 홍종현은 본인의 캐릭터를 무척 잘 이해하는 듯 보였다.
대본에는 나와 있지 않은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와 상황을 스스로 채워 나가고자 했던 노력이 빛을 발한 덕이다. 그는 대본을 볼 때 한 발 떨어져서 보는 느낌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어떤 이야기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가는 캐릭터인지 파악한 후에는 '많이 적었다'.
인물 소개와 줄거리에 다 드러나지 않은 것을, 본인이 채워나가고 싶은 방향대로 설정한다는 설명이다. 홍종현은 "(제가 만든 설정이) 대사로 나가진 않지만 (캐릭터가) 조금은 풍부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모르겠는 부분은 같이 붙는 배우들이나 작가, 감독님께 많이 의지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작품을 들어가게 되면 100문 100답까지는 아니더라도 맡은 캐릭터를 심도 있게 고민해 보고, 본인이 파악한 캐릭터의 성향을 꼭 '적고 넘어간다'. 그는 "이건 경험해서 아는 건데 '얘는 성향이 이렇겠네' 하고 넘어가는 것과 적는 것은 확 다르다"며 "헷갈릴 때는 처음에 느꼈던 생각을 기록한 연습장을 보면 해답이 나올 때가 있다"고 전했다.
홍종현은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전에는 그날 있었던 일을 노트에 적었는데 요즘은 핸드폰으로 옮겼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과 감정을 대략적으로라도 적으려고 한다. 그는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고 우울한 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 하루이틀 지나면 까먹지 않나. 그게 어느 순간 아까워지더라. 어떤 선배님이 배우 직업 가진 사람은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면서. (쓰는 게) 제 자산이 될 수도 있어서 나름의 기록을 한다"고 말했다.
◇ "응원 받을 수 있을 만한 캐릭터였구나"커플 경쟁에서도 원산파와 린산파가 팽팽히 갈렸을 뿐 아니라, 왕린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드라마 팬들이 꽤 많았다. '공자님'이라는 애칭이 생겼고 '린의 멋짐'에 찬사를 보내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홍종현은 인기를 실감했을까.
그는 "따지고 보면 우리 드라마 주인공은 시완이 형이랑 윤아인데, 방송 나가면 린과 산 응원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더라. 팬분들 반응을 볼 때도 원산이야, 린산이야 하는 걸 보면"이라며 "응원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캐릭터를 받고 연기하고 있구나 싶었다. 작가님이 린이를 너무 멋있게 써 주셔서 진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은 사랑한다'는 최고 시청률이 8.1%이었고 대개 5~7%대의 시청률을 유지했다. 그리 높다고 볼 수는 없는 시청률이었다. 홍종현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주관을 밝혔다.
배우 홍종현 (사진=이한형 기자)
"몇 년 전과 지금을 보면 시청률이라는 것에 대해 시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은 시청률도 중요하긴 하지만, 제 시간에 TV 앞에 앉아서 방송을 보는 게 잘 없지 않나. 근데 사실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크다. 작품이 잘 되는 상황에서 제가 연기력 논란이 나는 것보다는, 작품이 히트를 치지 못하더라도 제가 제 역할을 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정말 잘하시는 분들이 나와도 요즘은 흥행에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이상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 있는 것 같고 (웃음) 열심히 하다 보면 잘 되는 작품도 안 되는 작품도 있는데 그런 걸 연연해하고 아쉬워하는 시기는 지난 거 같다.
그런 것에 스트레스 받았던 때도 있었는데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과 더 즐겁게 뭔가를 만들까 하는 그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촬영하는 작품들은 시청률을 많이 안 나와도 다 너무 좋게 기억해 주시니까.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게는 못 해드려도 보시는 분들이 잘 볼 수 있게 하는 게 더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요즘은."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시청률에 대해 조금 덤덤해진 데에는 그간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제작진이 누군지, 배우가 누군지도 중요하지만 일단 캐스팅된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해도 그게 누구에게는 언제나 부족해 보일 수 있다"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 홍종현의 '왕사' 배우들 자랑
'왕은 사랑한다' 배우들은 지난 9월 군 복무 중인 임시완 면회를 갔다. (사진=홍종현 인스타그램)
'왕은 사랑한다'에는 다양한 연령과 경력을 가진 배우들이 출연했다. 배우들과 함께 연기한 소감을 묻자,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장영남 선배님은 되게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하시거나 정말 마음 아픈 어머니 역을 하셔서 어떤 분일까 했는데 조용하고 되게 소녀 같으셨다. (웃음) 예를 들어 제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드리면 '어 종현아 안녕'하고 쑥스러워하신다. (웃음)
이기영 선배님은 카리스마 있으세요. 현장에서 후배들이 (연기하면서) 뭐가 문제지 하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한 마디 툭 던져주시는데 그게 도움이 됐을 때가 많았다. (김)호진 선배님은 아버지 역인데도 너무 젊어 보이셨고 나이차도 크게 나는 것 같지 않았다. 절 예뻐해주시는 형님 같았다.
정보석 선배님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되게 아프신 적도 있었고. (촬영하면서) 얼굴 쪽을 다치신 적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NG 내시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본을 정말 많이 보신다고 들었거든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준비해 온 것들을 놓치지 않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멋있기도 하고. 굉장히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죠.
(최)종환 선배님은 '마마' 때도 뵀었는데 그렇게 연기로 반전을 주실지 몰랐다. 어떻게 보면 전에 비해서는 망가지는 역할이었다. 근데 망가지는데도 사람이 멋있게 보였다. 배우로서나, 선배로서나. 또 저를 되게 이뻐해 주신다. 술 한 잔 할 때 '나는 무조건 네 편이다. 힘든 것 있으면 다 얘기해'라고 해 주시고. 현장에서도 뒤에서 항상 챙겨주시고… 선배님한테는 특히나 감사한 게 많다."
'왕은 사랑한다' 배우들은 끈끈한 친분으로 유명하다. 현재 군 복무 중인 임시완 면회를 위해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동한 건 이미 잘 알려진 일화다. 홍종현은 인터뷰 당시 내일(10일)도 또래 배우들과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만난다는 단순한 규칙이지만, 다들 열정이 대단했다. 면회 갈 때 10명 넘는 인원이 모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말 시간이 안 되는 사람만 빠졌고, 심지어 아침에 잠시 얼굴만 봤다가 중간에 빨리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20인승 버스를 직접 빌려 운전까지 도맡았던 홍종현은 임시완 면회 날에 대해 "소풍 가듯이 갔다 오자는 마음이었다"며 "다 같이 신나게 다녀왔다"고 전했다.
(노컷 인터뷰 ② '데뷔 10년' 홍종현이 밝힌 30대가 더 기대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