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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유적서 가야 건물지·토기 수백점 출토



문화재/정책

    김해 봉황동 유적서 가야 건물지·토기 수백점 출토

    금관가야 추정 왕궁지로 알려진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가야 건물지와 토기 수백 점이 출토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는 올해 3월부터 시행한 2017년도 발굴조사에서 그동안 파악하지 못했던 ▲ 봉황동 유적(동쪽 지점)의 전체적인 층위 양상을 확인하였고, ▲ 가야 시기 대형 건물지군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또한, ▲ 화로형토기, 통형기대(筒形器臺, 긴 원통을 세워둔 모양의 그릇받침), 각배(角杯, 뿔 모양 잔), 토우 등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을 다수 발견하였다.

    연구소는 그동안 지금까지 70여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주거지, 고상건물지(기둥을 세워 높여 지은 건물 터), 토성, 접안시설 등 다양한 유구를 확인한 바 있다.

     

    층위 조사에서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4.5m 아래에서 기반층을 확인하였다. 문화층은 원삼국 시대 민무늬토기가 출토된 문화층, 가야 시기의 건물지와 소성유구(燒成遺構, 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는 시설물) 등이 중복된 문화층, 이후 통일신라 시기와 조선 시대까지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연구소는 "지금까지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시행한 수차례의 소규모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기반층부터 현 지표면까지의 전체 층위의 양상을 밝혀낸 것으로, 앞으로 유적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가야 시기 문화층 조사에서는 다수의 대형 건물지가 발견됐다. 건물지들은 대체로 지름 10m 이상으로, 일정 구역 내에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건물지는 3호 건물지인데 바닥은 타원형이며 이 일대에서 가장 크고 기둥자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벽주건물지이다.

    봉황대 진입로 개설구간의 46호 주거지(1999년, 부산대학교박물관 조사), 창원 신방리유적 5호 주거지(2005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대형 건물지군은 그동안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발견된 일반 생활유적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인 화로형토기, 통형기대, 각배, 토우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화로형토기는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김해 대성동고분군의 수장급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통형기대는 막대기 모양의 띠(봉상, 棒狀)가 부착되어 있고, 띠 전면에 일렬로 찍혀 있는 둥근 고리무늬(원권문, 圓圈文)와 몸체에 둘러진 물결무늬, 엇갈리게 뚫은 사각형 구멍(투창, 透窓) 등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독특한 형태이다.

    통형기대는 가야의 수장급 고분에서 주로 확인되는 유물로, 생활유적에서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 이 유물들은 전년도 발굴조사에 출토된 차륜형(車輪形, 수레 바퀴 모양)토기, 구슬‧곡옥 등의 장신구류와 함께, 봉황동 유적을 점유하고 있었던 유력 집단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다.

    이번 김해 봉황동 유적의 추정왕궁지 발굴조사에서는 당시 유력 계층의 흔적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가야의 왕궁’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상위 계층의 존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의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연구소는 발굴조사 성과를 오는 22일 오후 2시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발굴현장에서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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