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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보수혁신 '쇼'에 MB만한 제물 없다"

    [박정희세대 관찰 보고서 ②] 보수진영에 옮겨붙은 '두려움'의 실체

    다큐멘터리스트 김재환 감독은 시대의 관찰자로서 특별한 경험을 지녔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까지, 이른바 '박정희 세대' 곁에서 그들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다. 그 결과물은 최근 선보인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 담겼다. '틀딱'이라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인 박정희 세대는 어느덧 같은 시대를 사는 자녀·손주 세대에게 혐오의 존재로 전락했다. 그간 작품으로 권력자들의 민낯을 들춰내 온 김 감독은, 이들 박정희 세대가 '약자의 언어'를 쓴다는 데 주목했다. 약자인 그들은 어떻게 혐오의 대상이 됐을까. 김 감독의 관찰과 기록에 박정희 세대를 바로보고 포용 혹은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있다는 판단 아래, 최근 그와 가진 심층 인터뷰를 3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악마화 '틀딱'이 극복의 길일까"
    ② "보수혁신 '쇼'에 MB만한 제물 없다"
    ③ "청년 전원책도 박정희라면 이를 갈았다"
    <끝>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레인 방문을 마치고 지난 15일 오전 영종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차량으로 이동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노컷뉴스)

     

    김재환 감독은 "탄핵정국 당시 박정희 세대가 친박집회 현장에서 느꼈던, '우리 시대가 저물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 지금 보수정당에 그대로 옮겨붙은 형국"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촛불 이전과 촛불 과정, 그 이후 정상화·청산 흐름과 함께 최근 명성교회 세습 논란 등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직접 촛불을 들거나 마음속으로 촛불을 든 사람들 가운데 보수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제 주변 보수적인 크리스천 중에도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과거에는 '실용주의자'로 지지했지만, 지금은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드는 생각은 자유한국당이 앞으로도 굉장히 고전하겠다는 것으로 모아진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지도가 안 오르는 상황이 계속 되면서 자유한국당은 '어디에 그물을 던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와 맞닥뜨렸다. 과거에 보수정당을 지지했지만, 이제는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물을 던지면서 '우리가 이렇게 바뀌고 있다' '혁신하겠다'고 해야 지지도가 오르고 재건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유한국당이 보이는 행태는 가두리 양식장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그 안쪽에다 그물을 던지는 시늉만 하는 모양새다."

    김 감독은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소극적인 모습은 결국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뭔가 새로운 곳, 잃어버린 곳을 향해 과감하게 그물을 던져서 되찾아오려고 해야 하는데, 가두리 양식장 둑이 터져버린 암담한 현실에서 양식장 안 물고기마저 놓칠지 모른다는, 더는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서 시위에 평생 처음 나갔을 때 박정희 세대가 느꼈던 두려움을 지금 자유한국당이 그대로 안고 있는 셈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박근혜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뒀지만 박정희·육영수를 차마 버리지 못하는 박정희 세대를 향해 한 발 더 다가섰다"는 것이 김 감독의 분석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가 당사에 박정희 사진을 걸어둔 것도 그러한 포석으로 다가온다. 이를 보면 자유한국당 역시 박정희 세대 안에서 박정희와 박근혜의 분리가 이뤄졌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스타' '제물'이 필요한 현실 정치의 '쇼'(show)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하늘이시여, 여기 제물을 태우노니 한 번만 더 속아 주소서"

    김재환 감독(사진=김 감독 제공)

     

    김 감독은 "자유한국당이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려면 뭔가 제물을 바쳐야 할 텐데, 박근혜라는 제물로는 국민들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는 점을 홍준표 등이 잘 알면서도 일단 (박 전 대통령을 제물로) 던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상을 할 수도 있다. '하늘이시여, 여기 제물을 태우노니 노여움을 풀어 주소서' '한 번만 더 속아 주소서'라는 '혁신 쇼'를 하려면 이명박 이상의 제물은 없다. 물론 여기서 '하늘'은 국민이다. MB의 사람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모여드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상상일 수도 있지만, 자유한국당이 선봉에 서서 이명박을 제물로 바치는 쇼를 한다면 한 번쯤 더 속아 주지 않을까."

    그는 "이명박과 한국 교회는 아주 닮은 데가 많다. 둘 다 건축을 사랑하고 숫자에 집착하며 빠른 성장을 추구한다"며 "촛불 이후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개혁 과제를 하나 꼽자면 'MB와의 결별'을 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제2, 제3의 MB'를 양산하는 교육·문화 시스템과의 결별을 가리킨다. 한국 사회와 교회는 둘 다 방향을 잘못 정해놓고 무척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을 하겠다'는 방향을 정한 뒤 열심히 삽질했다. 한국 교회의 경우 최근 명성교회 사태를 보면 김삼환 목사 역시 '세습을 하겠다'는 방향을 정하고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다. 제가 'MB의 추억'(2012) 다음 작품으로 (종교권력 문제를 파헤친) '쿼바디스'(2014)를 만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김 감독은 "지난 1960, 70년대 대형교회의 구호가 '예수 믿고 잘 살아보세'였는데, 2000년대 이후 교계의 시대정신은 '예수 믿고 이명박 되세'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을 지켰더니 현대건설 사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된, 돈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까지 오른 이명박을 우러러보던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조차 이제는 이명박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점은 뭔가 변곡점이 왔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 '탐욕의 결정체'가 된 이명박.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되기 위해 달려 왔지만, 이제는 부끄러워하는 이름 이명박. 이제는 그 이름과 결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명박과의 결별은 박정희 극복의 길로 가기 위한 전초전 격이다. 박정희는 여전히 거대한 숙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일단 넘을 수 있는 가장 큰 산부터 넘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을 듯하지만, 자유한국당의 혁신 쇼에 바칠 제물로 이명박을 추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대단한 '쇼 DNA' 지닌 자유한국당, 지금은 왜 헛발질만 할까"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 스틸컷(사진=단유필름 제공)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두고 김 감독은 "보수정당의 재건이나 집권은 생각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 보인다"고 평했다. "현재 당 안에서의 자기 영향력 강화와 입지만 따진다"는 이야기다.

    "홍준표는 자유한국당에 이명박 사람들이 헤쳐 모이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쾌제를 부르고 있을 테지만, 이것이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나 그에게는 소통 방식에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항상 첫 질문이 '너 좌파지?' 식이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전혀 정치적인 색깔로 규정하지 않아 온 젊은 사람들이 왜 자유한국당을 꺼리는가를 보면, 간판인 홍준표의 이러한 대화 방식이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홍준표의 이같은 물음에 '아저씨 우파죠? 그러면 저 좌파할래요'라고 답한다. 그런 식의 대화 방식 자체가 싫은 것이다. 이러한 취약점은 김무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들은 심정적으로 아직도 김기춘 씨가 왜 감옥에 갔는지를 이해 못할 것이다. 그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 시대가 그렇기 때문"이라며 지적을 이어갔다.

    "김기춘 씨가 그랬잖나. '쟤 좌파야, 우파야? 좌파면 지원 끊어'라고 말이다. 그러다가 지금 감옥에 가 있잖나. 홍준표 씨가 이것을 이어받은 셈인데, 정파 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반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소통 방식의 구태를 떨쳐내지 못하면 자유한국당은 점점 더 왜소해질 것이다. 이것이 결국 가두리양식장 안쪽을 향해 그물을 던지는 시늉만 하는 소극적인 쇼로 이어지는 것이다."

    김 감독은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을 향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했다. "적어도 혁신 쇼가 성공하려면 자기 논리를 자기가 뒤엎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분(류 위원장)은 스스로를 '박정희주의자'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보수 세력 사이에서 입지를 다지고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됐다. 제가 알기로 박정희주의자는 '애민'(愛民·백성을 사랑함)을 중요하게 여긴다는데, 이분은 혁신위원장이 되고나서 '일베 많이 하라'고 했다. 혐오를 부추기는 일베는 시민들을 향해 총질했던 전두환을 미화시키고 5·18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데 열심이다."

    그는 "결국 스스로를 '박정희주의자'라고 하면서 '일베 많이 하라'는 것은 두 가지 결론 가운데 하나"라며 "류석춘 위원장이 박정희주의자가 아니거나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이 애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결론이 나도 류 위원장에게는 큰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혁신 쇼가 성공하려면 최소한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안 그러니 안 먹히는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이 혁신 쇼를 제대로 하려면 혁신위원장부터 갈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지난 2004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이 이른바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괴멸 위기에 놓였을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한 달여 간 동행 취재했다. 그는 이 때를 두고 "보수정당이 쇼를 굉장히 잘했던 시기"라고 복기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쇼는 당사 팔아 국고에 귀속시키고 천막 당사 쓰면서 정쟁을 멀리하는 등의 노력으로 성공했다. 그리고 2007년 대선 당시 실용주의자로 포장한 이명박의 쇼는 선수들이 봐도 넘어갈 정도로 훌륭했다. 두 차례 엄청나게 쇼를 잘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처럼 대단한 '쇼 DNA'를 가진 자유한국당이 지금 왜 이렇게 헛발질만 할까를 들여다보면, 결국 박근혜 세대에게서 전이된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다"며 "지나고 보니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유지했던 긍정적인 이미지는 2004년 혁신 쇼를 통해 싹텄다. 지금 보수 세력의 입지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중요한 변곡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③ "청년 전원책도 박정희라면 이를 갈았다"]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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