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각종 국내 정치공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유성옥 전 심리전단장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유 전 단장의 변호인은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 등 손실) 등 사건의 첫 공판준비 절차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식 재판이 아닌 공판준비 절차에는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없지만 이날 유씨는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변호인은 "국정원 직원 내지 외곽팀(민간인 댓글 부대)을 통해 댓글을 게재하고 자금을 지급한 사실은 다투지 않는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정치관여 댓글이 게재되고 예산이 집행됐다는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 전 단장은 상급자가 부적법한 명령을 내렸을 때 이를 파기하고 부하에게 지시가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관여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직책을 박탈당하고 지방으로 좌천당한 후 퇴직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직원 등이 온라인 공간에서 댓글을 달고 이런 활동에 예산을 집행한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벌어지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취지다.
유 전 단장 측은 공소사실의 법리적인 문제점도 지적했다.
변호인은 댓글 활동과 관련해 "유 전 단장이 심리전단장으로 재직한 기간은 선거기간이 아니므로 정치관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또 국정원법 위반은 공소시효가 7년으로 2010년 11월 8일 이전 행위는 이를 넘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댓글 내용은 신문 사설, 칼럼, 기사를 그대로 복사한 것으로 국내 일간지에 적법하게 보도된 글을 게시한 행위 자체가 정치관여에 해당하는지 대단히 의문"이라며 "원세훈 당시 원장과의 공모관계 역시 직접 대면 보고하거나 지시받은 적이 없어 인정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서도 "횡령에는 불법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유 전 단장은 위법한 정치 활동 또는 정치관여 행위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며 "이런 점에서 국고손실을 사전에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은 외곽팀 활동 자체가 부적합해서 이를 지원한 금액 전체를 횡령액으로 본다"며 "그러나 외곽팀 존재 자체를 부적법하다고 보기 어렵고, 지원된 예산 가운데 문제가 된 댓글 규모의 비중을 따져 횡령액을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전 단장은 민간인 댓글 부대인 '사이버 외곽팀' 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의 전임자다.
그는 대북 심리전 기구인 심리전단을 활용해 정부와 여권을 지지하고 야권을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조직적으로 게시하도록 하고, 보수단체의 관제시위와 시국광고 등을 기획해 정치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국정원 예산 11억5천여만 원을 쓰도록 해 국고를 손실한 혐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