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8시쯤 청와대 인근 부속건물인 춘추관 외곽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흰색 승용차에서 급박하게 내린 30대 건장한 남성이 왼손에 시너가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생수병을 들고 오른손에는 라이터를 쥔 채 청와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202경비대 직원들이 급히 출동했고, 인근 관할 지구대에서도 경찰차 두 대가 들이닥쳐 해당 남성을 둘러쌌다.
소동이 벌어진 곳은 평소에도 시민들과 관람객들의 발길이 잦은 청와대 우측 카페 앞이었다.
남성은 "억울한 게 있어 대통령을 만나러 왔다", "가까이 오지마"라고 소리치며 시너병을 높이 쳐들었다.
202경비대 소속 직원들은 "흥분하지 말고 말로 하자", "일단 라이터를 내려놓시라"고 달랬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들은 발화가 되면 급히 덮어씌워 진화할 수 있는 방화담요와 소화기를 각각 꺼내들고 남성과 대치하며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이 연출됐다.
남성은 포위를 좁혀오는 경찰들을 상대로 당장이라도 불을 붙일 것처럼 위협하기도 했다.
남성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경찰들이 시너병을 뺏아들면서 해당 남성을 제압했고, 자칫 분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을 막아냈다.
사실 이 모든 장면은 청와대 경호처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파견된 청와대 외곽 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202경비대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진행한 FTX(Field Training eXercise) 야외기동훈련이었다.
지난 6월 49년만에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전면 개방되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청와대 경호처와 경비대의 경호·경비 업무 강도는 올라갔다.
특히 최근 새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인근에 대한 집회 신고가 대부분 접수되고, 청와대 분수대 광장 앞까지 1인 시위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응태세 점검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날 훈련 역시 각종 민원 등을 제기하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자 억울한 마음으로 청와대까지 찾아온 진정인이 혹시나 벌일 수 있는 자해소동을 막고 안전하게 귀가시키기 위한 상황 대비 훈련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억울하신 분들이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어 이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한 상황별 훈련이었다"며 "각 지역별로 어떤 훈련이 필요한 지 지정해 반복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경호처 주관 주 1회 군경 합동으로 이같은 FTX 훈련을 실시하고, 또 202경비대도 비슷한 기간 자체 FTX 매뉴얼을 설정해 훈련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 항목은 진정인의 돌발행동, 테러 시도, 단순 주취자의 행패 등 상황별로 준비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28일 밤 11시쯤 잦은 노점상 단속에 불만을 품은 50대 뻥튀기 장수 이모씨가 청와대 인근에서 분신을 시도하다 경찰에 제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린 이씨가 불을 붙이기 직전에 202경비대가 이를 제지해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