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 93일째를 맞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노조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비리이사 해임 촉구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고대영 사장 퇴진 및 방송 정상화를 내건 새노조의 파업이 벌써 93일을 맞았다. 이틀 후면 2012년 당시 김인규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외쳤던 총파업 기록(95일)을 넘기게 될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한 날 한 시 파업에 들어갔던 이웃 MBC는 지난달 13일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면서 파업이 잠정 중단됐다. 정권교체를 통해, 현 야권이 다수였던 이사회 구성이 달라진 이후 약 3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KBS도 이 같은 '재편'을 기대하고 있다. 감사원이 현 KBS이사회 이사 전원(보궐이사 조용환 이사 제외)이 업무추진비를 사적용도로 썼거나 사적용도가 의심되는 곳에 썼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해임건의'를 포함한 인사조치를 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새노조는 '인사혁신처 내규'와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금품 관련 사건에서 KBS 이사는 공무원으로 준용되기에, 사적사용 금액 300만 원을 넘긴 차기환·강규형 이사는 즉각 해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체감온도 영하 7도의 추운 날씨에 바람마저 매서운 5일 낮,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오언종 KBS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의 필리버스터의 문을 여는 아나운서구역의 첫 주자였다.
새노조는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왜 일손을 놓고 파업을 하는지, 왜 '비리이사 해임'과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지 시민들에게 직접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윤인구 KBS아나운서협회장(왼쪽)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
윤인구 KBS아나운서협회장은 필리버스터 돌입에 앞서 열린 집회에서 "자리를 박차고 여러분들과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제가 협회장이어서도, '아침마당' 진행자여서도 아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기한 말하기라는 방법이 옳은지 얼마나 파급효과가 있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가장 먼저 나서기까지 결정이 쉽진 않았지만 많은 아나운서들이 지원했다"며 "추위는 견딜 수 있지만 공정방송을 가로막는 세력과 함께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말하기'로 왜 파업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낮 12시에 오언종 아나운서가 시작한 필리버스터는 오후 4시 50분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저희 딸이 고대영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사장님, KBS는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라고. 사장님, 이사장님, 방통위 관계자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단순하게 생각하십시오. 8살 어린이도 아는 이 단순한 해답을 왜 우리 어른들은 고민에 빠져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인가." _ 이승연 아나운서"아나운서들도 저희가 새롭게 바뀐 KBS에서 저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생각하겠다. 바뀐 KBS, 새롭게 다시 태어난 KBS에서 뭘 할지. '역시 방송사는 KBS지!', 'KBS를 봐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방송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_ 이선영 아나운서
KBS 아나운서들은 오는 6일 자정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한다. 현재 이승연 아나운서 이후에는 김지원, 최원정, 장웅, 전인석, 김홍성, 김태규, 오승원, 이광용, 한상헌, 강승화, 배창복, 이상협, 이재후, 윤인구, 정지원, 조항리, 백승주, 최승돈 아나운서가 차례로 마이크를 잡는다.
새노조의 '필리버스터'는 취재·시사편집·경영·보도영상·영상제작·교양기제·드라마·네트워크기술·방송전문·편성심의·예능·제작기술·뉴미디어아카이브·라디오·정책연구기술·스포츠·지역국 등 전 부문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오언종, 이선영 KBS 아나운서가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