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 939호.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실로 의문의 '사과상자'가 배달됐다.
상자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 상자 안에는 '경북 영양 홍계리에서 재배한 사과'라는 편지와 함께 탐스러운 사과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날 이 의원은 하 의원뿐 아니라 환노위 소속 의원 15명과 환노위 행정실에 사과상자를 한 박스씩 보냈다.
해당 사과는 경북 영양 홍계리 박충락(61)씨의 농장에서 이 의원이 사비로 구매한 것. 박 씨는 영양군 양구리 풍력발전단지(3.45MW급 22기) 시공사인 한화건설에 맞서 환경파괴와 주민 피해를 주장하며 풍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다 지난달 업체측으로부터 5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손해배상 소송이 걸린 주민은 이씨를 포함해 총 5명. 한 명당 5억씩 총 25억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됐다. 주민들은 업체측이 저주파음 모니터링을 하지 않고 공사 지역이 산사태를 유발할 가능성도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공사국간인 홍계리 주산 일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가 서식하고 있지만 시행사인 영양에코파워가 환경영향평가서에 '법정보호종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불법 산림훼손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부터 양구리를 찾은 이 의원은 일주일에 두 세 차례씩 내려가 주민들의 고충을 들었다.
지난 10월에는 주민들의 도움으로 공사장 주변에서 수리부엉이 4마리의 사진을 찍는데 성공하며 수리부엉이의 존재를 '증명'했다.
경북 영양군 풍력발전단지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수리부엉이. (이상돈 의원실 제공)
◇ "산등성이 운동장처럼 만드는 풍력발전소…文 정부 신재생에너지 공약의 역설"
지난 환경부 국정감사에서도 풍력발전단지 문제를 지적한 이 의원은 산 정상을 고속도로를 낸 듯 깎아내는 무분별한 육상풍력사업을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 전력생산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공약이 거꾸로 환경을 파괴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
그는 "풍력사업은 산등성이를 수 십 미터 깎아내고 콘크리트 포장과 기초를 한 뒤 구조물을 세우는 것"이라며 "풍력발전소가 들어선 곳은 산이 운동장처럼 변하고 발전기 수명이 다한 20년 후에는 복구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영양군 맹동산의 경우 풍력단지 공사로 12km에 이르는 산 정상이 쑥대밭이 돼 100년이 지나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됐다고 강조했다.
주민들과 이 의원실의 노력으로 공사 구간에서 수리부엉이가 발견되자 대구지방환경청은 지난 7일 풍력발전단지 조성공사 중단 명령을 공사 승인기관인 영양군에 요청했다. 환경부가 자체적으로 공사중지명령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환노위 동료 의원들의 호응과 지지로 환경부의 공사중지 명령 결과를 얻어낸 것 같다"며 "현재 상황에서 사업 취소까지는 어렵겠지만 주민 소음 피해와 수리부엉이 보호 방안 등 후속 대책에 대한 감시도 철저히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4월에 영양군에 내려가니 주민들이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며 굉장히 반가워했다"며 "5억원이라는 큰 손해배상 소송이 걸린 주민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농장에서 사과를 구매했다"고 전했다.
수리부엉이 발견으로 환경부 최초 공사중지명령까지 이끌어낸 이 의원은 풍력발전 문제가 마무리되면 태백 폐광 부실 관리로 인한 낙동강 최상류 중금속 오염 문제를 집중 파헤칠 계획이다.